구원의 확신은 어떻게 오는가?
요즘 금요성령집회 때, 교우들과 함께 믿음으로 사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할 때, 가장 먼저 해결해야 될 문제는 '믿음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한 유년부 교사가 믿음에 대하여 열심히 가르쳤더니, 한 남자 아이가 불쑥 “선생님, 믿음이 무엇이에요?" 라고 물었답니다. “믿음? 믿는 거지 뭐, 예수님을 믿는 거, 있잖아?’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어떤 거냐니까요?’ 당황한 선생님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대답해 줄 분명한 개념이 떠오르지 않았답니다 ‘얘, 네 할아버지가 장로님이시니 할아버지께 여쭤 봐, 잘 아실테니까!’ 그 아이는 집에 돌아와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믿음이 뭐예요?" “얘가 갑자기 왜 이러니? 믿음이란 믿는 것이지” 아들은 부엌으로 달려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믿음이 뭐예요?" “얘는 생뚱맞게 그린 질문을 하니? 믿음이 믿음이지 뭐긴 뭐야, 자세한 것은 목사님께 물어봐?”
많은 성도들이 '믿음’ ‘믿음’ 하지만 정작 믿음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애매한 대답만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심을 믿습니까?” 질문하면 “아멘” 하는 것이 믿음인 줄로 압니다. 안타깝지만 이런 믿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에는 죽은 믿음도 있고 가짜 믿음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진정 구원받는 믿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는 능력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 당국이 예수를 믿는 자를 출교시키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로마 시대인 초대교회 때는 예수님을 ‘주여’ 라고 부르는 것은 더욱 위험했습니다. 그것은 반역죄로 체포되고 처형당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라라도, 심지어 순교한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는 믿음이 구원받을 믿음인 것입니다.
마 7:22-23에서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능력을 행하고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불법을 행하는 사람은 구원받는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는 자입니다. “난 그런 복잡한 것은 모르구요, 지금 당장 죽어도 확실히 천국에 갈 것이라는 사실 하나는 분명히 압니다.”
대단한 확신이지만 이런 태도가 구원의 확신이 아닙니다.
정말 구원받은 사람은 오히려 ‘구원의 확신’ ‘구원의 확신’ 하지 않습니다.
아내에게, “나는 당신의 남편임을 확신하고 있어” 라고 말하면 오히려 부부관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입니다. 제가 만약 “저는 선한목자교회의 담임목사라고 확신합니다” 라고 말하면 교인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행함과 상관없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는 것은 구원파에서나 하는 말입니다.
무언가 불확실하니까, 자꾸 확신 확신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은 우리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입니다. (고후 13:5)
그래서 하니님의 말씀대로 살아지는 것을 통하여 더욱 확증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이란 전에는 아무리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해도 안되더니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다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지는 것을 보고 가져지는 담대함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