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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시오노나나미 르네상스저작집 1)

작성자사라봉|작성시간08.11.13|조회수161 목록 댓글 0



차례
독자들에게

1. 피렌체에서 생각한다
2. 로마에서 생각한다
3. 키안티 지방의 그레베에서
4. 베네치아에서 생각한다

르네상스의 주역들
본문내용
"묻고 싶은 게 하도 많아서, 무엇부터 먼저 물어봐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군요. 그래서 눈을 질끈 감고 돌파하는 기분으로, 머리에 줄곧 달라붙어 떠나지 않는 것부터 묻겠습니다. 르네상스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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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로 리뷰

이 책엔 30년 넘게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 유적을 발로 쫓아다니면서 단순한 역사책 그 이상을 써낸 시오노의 도전적 역사해석과 역사적 상상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상 인터뷰를 통해 지은이의 핵심적 주장들을 재구성해 보았다.

당신은 왜 르네상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시오노: 저는 대학 졸업논문으로 15세기 피렌체의 미술을 선택했습니다. 그 당시엔 이해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의문들을 졸업논문 속에 집어넣었고, 그 의문들을 풀기 위해 이탈리아로 건너가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의 흔적들을 발로 쫓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제가 르네상스물(物)이라고 부르는 15권 남짓한 작품들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제 작품을 읽어준 분들에게는 기억을 되살리고, 아직 읽지 않은 분들에게는 제 작품을 좀더 이해시키기 위해 문답식 대화로 엮은 것입니다.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말은 제가 알기로 원래 종교적인 용어로 ‘생명을 잃었던 사람이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 즉 재생의 뜻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냥 르네상스 혹은 문예부흥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르네상스는 한마디로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시오노: 후세인들이 르네상스라고 부르게 된 정신운동의 본질은 보고 싶고,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의 분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는 요컨대 보고 싶고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인간이 그 이전 시대에 비하면 폭발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이 배출된 시대입니다. 문제는 그런 욕망을 기독교회가 1천 년 동안이나 억눌러 왔다는 것이고,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려 했던 사람들과 달리 르네상스의 사람들은 반대로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왜’를 연발한다면 당신에게도 이미 ‘르네상스 정신’이 갖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책에서 당신은 그 ‘왜’라는 의문을 가슴에 품은 최초의 인물로 시인 단테나 화가 조토가 아니라 성 프란체스코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꼽았습니다. 그들이 그 당시의 체제와는 맞지 않은 ‘이질적인 분자’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이질적 분자는 중세 시대에도 얼마든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시오노: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지만, 르네상스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르네상스라는 큰 꽃망울을 피우려면 먼저 비옥한 토양이 필요하고 충분한 물과 햇빛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 비옥한 토양과 충분한 물과 햇빛을 마련한 것은, 언뜻 예술과 무관해 보이는 종교인인 성 프란체스코와 정치인인 프리드리히 2세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당시 기독교 세계의 그 어디보다도 이질 분자의 유입이 왕성했던 이탈리아에 태어나 다양한 ‘문화적 충격’을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그들은 기성 개념에 의문을 가졌는데, 성 프란체스코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한 예수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청빈운동)이나 프리드리히 2세 역시 ‘신의 것은 신에게,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라고 말한 예수에게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정교분리)이 그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교권이 부여한 기존 질서에 의문을 품었고, 자신의 머리로 그것을 직접 풀려고 했다는 점에서 르네상스적이었습니다.

결국 당신은 ‘왜’라는 의문을 품고 그것을 행동으로 표현한 사람들, 즉, 종교계의 교황들, 메디치 가의 사람들, 단테, 보카치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그 외 항해·출판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한 사람들이 르네상스를 만들었다는 거군요. 하지만 왜 유독 이탈리아에서, 특히 피렌체와 로마와 베네치아 등의 도시국가에서 르네상스가 꽃을 피운 것일까요. 당신은 그것을 경제력과 연관짓는 것 같기도 한데…

시오노: 문화와 문명을 창조하려면 재력과 자유라는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로마와 피렌체, 베네치아는 모두 교황청의 재정을 운영하거나 활발한 무역활동으로 일찍부터 경제적 번영을 구가했습니다. 또 교황청과의 보이지 않는 대립 속에서도 도시국가로서의 자유를 상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대 로마와 그리스 문명의 훌륭한 유산들을 바로 곁에 두었다는 천혜의 입지조건도 한몫 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대담한 영혼과 냉철한 합리적 정신으로 표현되는 진취성이 없었다면, 주위에 널려 있는 로마 유물은 한낱 쓰레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카이사르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나 모든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밖에 보지 않으며, 그것이 곧 중세였습니다. 르네상스란 어쩌면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만 보는 게 아니라, 모든 사물을 ‘마음의 눈’으로 보기 시작한 시대가 아닐까요. (박정철/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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