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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소나타 Ho..stsonaten (Autumn Sonata)

작성자사라봉|작성시간08.03.13|조회수214 목록 댓글 0

어머니와 딸의 애증의 세월  

가을소나타 Ho..stsonaten (Autumn Sonata) 

[출처] 가을소나타 Ho..stsonaten (Autumn Sonata) |작성자 북촌

http://blog.naver.com/eastok7/80041042484

 

movie 5/ picture 3/ sound 3/ supplement 4 

감독; 잉마르 베리만/ 주연; 잉그리드 버그만, 리브 울만/ 제작 연도; 1978년/ 상영 시간; 99분/ 등급; 15세/ 화면; 1.66;1 와이드스크린/ 오디오; 영어와 스웨덴어 돌비 디지털 2.0 모노/ 자막; 영어, 한국어/ 서플먼트; csat  crew, 예고편, 하이라이트, 피터 코위 코멘터리/ 출시사; 스펙트럼 

잉마르 베리만 Ingmar Bergman (1918-2007)은 삶과 죽음, 신의 존재 여부와 영혼 구원 같은 형이상학적 주제를 다룸으로써, 소설이나 시에 비해 열등한 대접을 받았던 영화의 위상을 높인 현대 영화의 거장이다. 

베리만의 후기는 여성 탐구 시기라 할 수 있는데 <Persona 페르소나>1966), <The Passion of Anna 정열>(1969), <The Touch 접촉>(1971) <외침과 속삭임 Cries and Whisper>(1973), <가을 소나타>가 이에 속한다. 

 

<가을 소나타>는 유명하고 아름다운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와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딸의 오랜 애증 관계를 드러내는 실내극이다. <페르소나> <외침과 속삭임>에 이어 母性 不定의 테마, 가학적 피학적 행동, 역할 반전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도구로 얼굴과 손을 즐겨 클로즈업했던 베리만은, 이 세 작품에서 여성 얼굴의  매혹을 본격적으로 보여주었다. 자서전에 의하면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찍었다고 한다.  

 

<가을 소나타>는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감독 잉마르 베리만과 잉그리드 버그만(둘의 이름

이 Bergman으로 같아 혹자는 친척으로 알 정도다. 베리만은 스웨덴식 표기고, 버그만은 미국식 표기다.)이 함께 한 유일한 작품이자, 잉그리드 버그만의 遺作으로도 유명한데, 촬영 당시 버그만은 암에 걸린 상태였다. 조국 밖에서 더 많이 활동했던 이 대배우는 당당함에서부터 불쾌감, 당황, 수치, 슬픔, 위선, 절망, 안도까지 짧은 시간 동안 숱한 감정 변화를 연기하며 마지막 불꽃을 사른다. 

 

베리만 영화의 뮤즈이자 실생활의 연인인 리브 울만 역시, 버그만에 지지 않는 팽팽한 연기 대결을 벌인다. 쇼팽의 Prelude Nr 2a를 연주하는 모녀를 연기한 장면 등 클로즈업이 많아, 두 여배우의 미세한 얼굴 근육 떨림까지 확인할 수 있다. 버그만이 <가을 소나타>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두 여배우는 각종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수상 혹은 후보자로 거론되었다. 

잉마르 베리만의 오랜 영화 동료인 스벤 닉비스트의 촬영은 99분 중 40여분이 모녀의 대화인, 따라서 단조로울 수 있는 영화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주황 색조를 잘 살리고 있다. 호수가에 위치한 주택 주변의 가을 단풍, 잉그리드 버그만의 붉은 드레스는 모녀가 회상하는 우울한 과거 (원거리 촬영으로 상황만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와 대비된다. 쇼팽, 바흐, 헨델, 슈만의 아름다운 선율도 <가을 소나타>라는 제목을 돋보이게 해준다.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샬롯(잉글리드 버그만)에게 시골집을 방문해달라고 편지를 보낸 딸 에바(리브 울만)가 초조하게 어머니를 기다린다. 7년 만에 재회한 어머니와 딸은 반갑게 포옹을 한다. 샬롯은 숲과 호수로 둘러싸인 시골집을 칭찬하지만, 오랜 세월 병치레를 해온 차녀 헬레나(레나 니만)가 에바 집에 머물고 있단 사실을 알고 나선 몹시 불편해한다. 

에바는 어머니의 이런 태도를 보며, 동생의 병이 어머니의 무관심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다그친다. 어머니는 음악 활동과 가정생활을 병립할 수 없었던 과거를 변명하고, 그럴수록 에바는 가정과 남편, 자식에게 냉정했던 어머니의 이기심을 비난한다. 

 

<가을 소나타>는 표면적으로는 에바의 남편인 목사 빅토르(할바 비요르크)의 나레이션, 즉 관찰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액자 안에선 어머니와 딸의 회상과 현재를 오가며 격렬하게 감정 변화를 쫓고 또 다그친다. 이 연극 스타일의 심리 드라마는 흔히 운명 공동체로 미화되곤 하는 모녀의 실체를 신랄하고 적나라하게 까발리며, 딸의 사회적 성취를 위해 어머니가 희생한다는 상례를 뒤집는다. 

또한 샬롯과 에바는 감독 자신, 즉 예술가의 두 갈래 내면을 드러내는 캐릭터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사회생활과 가정을 양립할 수는 없었다는 샬롯의 고백, 혹은 변명에는 세금 문제로 조국을 떠나 노르웨이의 오슬로, 자르, 몰드에서 촬영해야했던, 베리만 감독의 당시 심경이 반영되었다. 샬롯에게선 배우와 마찬가지로 대중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감독의 불안을 읽을 수 있고, 에바의 분노 속에는 스웨덴 국세청의 조사와 감시로 수치심을 느꼈던 베리만의 울분이 녹아있다. 또한 <가을 소나타>의 시나리오엔 베리만 감독의 성장사와 가족사, 개인사가 들어있기도 하다. 잉마르 베리만은 <가을 소나타>가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Through a Glass Darkly)(1961)와 함께, 피아니스트였던 Kabi Laretei와의 결혼 생활(1959년-1969년)에 기초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유명 피아니스트 카비 라레티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피아노 연주 장면의 대역을 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딸의 폐부를 찌르는 대사로 인해, 편히 기대어 감상할 수 없게 만드는 <가을 소나타>. 

 

샬롯은 에바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오랜 연인이었던 레오나르도(게오르그 뤠케버그)의 병상을 지키다 임종까지 본 고통을 넋두리한다. 에바는 레오나르도의 사망 소식을 듣고 어머니를 초대하여 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지만, 어머니의 일방적 하소연에 삼년 째 헬레나를 집에서 돌보았다고 털어놓는다. 샬롯은 요양원에 있다고 여겼던 헬레나를 만난 충격으로 악몽을 꾼다. 

 

샬롯과 에바의 갈등은 에바가 쇼팽의 피아노곡을 연주한 후, 샬롯의 평가를 구하는 장면에서부터 본격화된다. 샬롯은 에바의 연주를 들으며, 딸에게로 향한 애정과 미안함으로 눈물을 글썽인다. 그러나 곧 “맥 빠진 아줌마처럼 연주했다”며 피아니스트로서의 위엄과 냉정을 되찾는다. 시범을 보이기 위해 연주에 몰두하는 샬롯의 당당한 표정. 이를 바라보는 딸 에바의 경의, 두려움, 분노에 찬 응시가 압권이다. 샬롯은 “45년간 이 지독한 곡을 쳐왔지만 아직도 모르는 비밀이 많다”고 말한다. 

에바는 네 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아들 에릭의 이야기를 하며, 강한 모성애와 죄책감을 드러낸다. 이는 헬레나와 자신에게 무심했던 어머니를 우회적으로 비난하는 것처럼 들린다. 

 

악몽을 꾼 샬롯이 한 밤 중에 깨어나는 바람에 샬롯과 에바의 본격 대화, 즉 갈등과 오해의 세월이 충돌한다. “너와 아빠 땜에 연주를 포기했었잖니” “등의 부상으로 연습을 못해 비난을 받고 잠시 연주 활동을 멈춘 거잖아요” “마틴과 사랑에 빠져 8개월을 나가있긴 했었지만, 네 아버지에겐 충실하려 했다” “그 때 아버지와 나는 서로 위로하며 지냈어요. 난 엄마가 시간 날 때만 갖고 노는 인형이었어요. 아프거나 말 안 들으면 유모에게 맡겼지요. 연습 때 방해해선 안되었구요. 어머니가 날 싫어할까봐 늘 걱정했어요. 어머니처럼 예뻐지고 싶었어요. 어머니가 오랜만에 돌아오면 난 너무 기뻐서 말을 못했고 그럼 어머니는 ‘얜 엄마가 반갑지 않은가봐' 했지요. 어머니는 말과 진심이 달랐어요. 내가 싫으면서도 ‘사랑하는 내 딸아’라고 했어요.“ ”나도 힘들었다. 함께 보낸 14살 여름은 가장 행복하다고 하지 않았니?“ ”행복하지 않았어요.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한 보상을 하려는 어머니 때문에 행복한척 했을 뿐이에요. 엄마 멋대로 내 머리를 자르고 이빨을 교정하고 치마를 입게 했지요. 엄마 맘에 들려고 참았어요. 18살에 스테판과 행복해질 기회가 왔는데 엄마가 갈라놓았어요. 타인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있나요?“ ”난 유산을 강요한적 없다“ ”어떻게 어머니를 거역해요. 어머니 같은 이는 위험하니 격리되어야 해요. 엄마와 딸의 관계는 감정과 혼란과 파괴로 이루어진 최악의 결합이에요. 사랑이란 미명 하에 정당화될 뿐. 어머니의 상처를 딸에게 물려주고, 딸들은 어머니의 실망에 보답해야하죠. 내 슬픔이 어머니의 기쁨인가요?” “내 부모의 감정 표현은 오직 음악을 통해서였다. 난 네가 날 돌봐주길 바랬다. 엄마 노릇하기가 싫었다. 나도 너만큼 무기력하다는 걸 알아주길 바랬다.” 

 

자아실현 욕구가 강한 어머니와 딸의 대화는 모두 이와 같지 않을까. 더구나 <가을 소나타>의 모녀 간 대화에선 헬레나와 레오나르도의 사랑과 이별, 이로 인해 헬레나의 병이 깊어졌으며, 샬롯은 전신마비의 헬레나를 어릴 때부터 외면했다는 사실이 폭로된다. “엄마 노릇하기가 싫었다.”는 샬롯의 고백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샬롯보다 에바에게 더 많은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샬롯이 떠난 후 에바는 어머니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자신을 반성하며,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이런 편지를 보낼 수 있는 딸이 현실에선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체념할 뿐이지, 어머니와 딸이 서로를 할퀸 상처 난 마음은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것이기에.         

dvd 화질은 윤곽선이 선명하지 않으나 색채는 잘 살리고 있다. <csat  crew>는 감독과 두 주연 배우, 촬영 감독의 간략한 이력과 작품을 소개한 한글 글 자료다. <하이라이트>에선 영화의 주요 장면을 볼 수 있다. 

 

영화 역사학자 피터 코위의 <코멘터리>엔 풍부한 해석과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담겨있다.   “클로즈업에 익숙하지 않고, 7년 동안 자식을 보지 않은 샬롯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잉그리드 버그만은 잉마르 베리만 감독과 뺨을 때리는 극한 상황까지 오가며, 시나리오 분석에 차이를 보였다. 

버그만과 공연하고 싶어 했던 리브 울만은 버그만을 잘 이해했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딸 피아를 버리고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에게로 달려가 세 아이를 낳았으며, 그 때문에 할리웃에서도 추방당했다. 리브 울만도 베리만 감독과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낳은 딸로 인해,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샬롯과 에바의 갈등에는 끝내 화해하지 못했던 감독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가, 헬레나에겐 중풍을 앓던 형을 만난 충격이 반영되었다“ 

그 외 베리만 영화가 우디 알렌 등에게 미친 영향, 영화 마지막 샬롯의 회의적인 표정 해석 등 흘려듣기 아까운 내용으로 가득 차있다.   

 

<추억> 

수정 주사위 같은 연기자 

잉그리드 버그만 Ingrid Bergman 

시드니 루멧의 1974년 작 <오리엔트 살인 특급 Murder on the Orient Express>은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 소설 영화 중, 최상의 캐스팅과 연출을 자랑한다. 한 장소에 모인 인물 모두에게 혐의를 두는 것이 크리스티 소설의 특징이다. 따라서 크리스티 소설 영화는 한정된 장소에서 최고 기량을 펼 수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해야 성공할 수 있다. <오리엔트 살인 특급>은 “이런 스타를 한 자리에 불러 모으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로 호화 캐스팅을 자랑한다. 

유럽과 할리웃의 우아한 스타들 속에서, 버그만은 가장 초라한 배역을 맡았다. 화려한 의상을 떨쳐입고 자신만만해하는 여느 배역과 달리, 버그만이 맡은 스웨덴인 올슨은 평범한 차림에 불안과 초조로 말까지 더듬는다. 기품 있는 상류층 여성을 주로 연기했던 버그만에게는 뜻밖의 배역이다. 그리고 버그만은 올슨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두 차례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과 네 차례 후보 지명에, 주연상과 조연상을 모두 받은 기록은 캐서린 헵번에 버금가는 위업이다. 

버그만은 단아한 아름다움 속에 그늘과 강인함을 드리웠던 여배우다. 비단을 찢는 것 같은 예민한 신경, 오똑한 콧날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당당함이 주된 이미지지만, <선인장꽃 Cactus Flower>(1969) 같은 코미디에서도 매혹적인 미소를 날렸다. 주사위처럼 모든 방위에서 연기가 가능했던 위대한 스타인데, 그 주사위는 수정처럼 투명하다.    

나는 <Intermezzo 인터메조>(1939)로 버그만의 젊은 시절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데이비드 O. 셀즈닉이 동명의 스웨덴 영화에 출연한 버그만을 할리웃으로 초대하여, 리메이크한 멜로드라마다. 버그만은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바이올리니스트 레슬리 하워드를 불륜에 빠뜨리는 피아니스트로 분했다. 피아노 앞에 앉은 청초한 버그만을 보고 어느 남자가 가정을 버리지 않을 수 있겠나. 

<카사블랑카 Casablanca>(1942)에서 수정 같은 눈물을 흘리며 안개 속으로 사라졌던 버그만은, 험프리 보가트보다 내 가슴을 더 많이 찢어놓았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1943)에서 게리 쿠퍼의 품에 안겨 “키스할 때 코는 어떻게 하나요?”라고 묻던 천진한 얼굴을 보며, 키스에 대한 환상을 키우기도 했다.  

<가스등 Gaslight>(1944)과 <오명 Notorious>(1946)에서 남편의 계략으로 서서히 무너져가는 버그만을 보며 어찌나 마음을 졸였던지. <The Bells of St. Mary's 성 메리의 종>(1945)에서 수녀로 분한 버그만과 <흑수선 Black Narcissus>의 수녀 데보라 카, <The Nun's Story 수녀이야기>의 오드리 헵번의 수녀 모습에 반해, 세례를 받기도 했다.   

<가을 소나타>(1978)를 버그만의 최고작으로 꼽는 평자가 많지만, 내가 꼽는 버그만의 최고작은 <The Arch of Triumph 개선문>(1948)이다.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에 나오는 술 칼바도스를 일본에서 주문하여, 크리스마스에 마신 추억이 있던 나로서는,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개선문>이 각별할 수밖에. 베레모를 쓴 퇴폐적인 모습의 버그만 때문에, 베레모를 삐딱하게 써보기도 했다. 반면 <잔다르크 Joan of Arc>(1948)는 가장 싫어하는 버그만 영화다. 쇠 그물을 뒤집어 쓴 맹신도는 버그만과 어울리지 않았다.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함께 한 영화들은 좋은 평을 듣지 못했지만, 버그만이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로셀리니를 택한 세기적 스캔들에 가리워진 측면이 크다고 생각한다. <Stromboli 스트롬볼리>(1950)와 <Europa 51 유로파 51>(1951)은 주제와 연출, 버그만의 원숙한 연기로 인해 로셀리니 연출작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버그만은 <아나스타샤 Anastasia>(1956)로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음으로써, 할리웃의 용서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아나스타샤>에서만큼은 버그만의 할머니로 분한 헬렌 헤이즈와 버그만을 훈련시키던 율 브린너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가 더욱 좋았다. 

버그만의 주요 작품 중, 아직 보지 못한 것은 TV 영화 <A Woman Called Golda 골다라고 불리운 여인>(1982)이다. 이스라엘 여수상 골다 메이어의 삶을 연기한 버그만은 에미상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지만, 트로피를 안아보지 못했다. 1982년 8월 29일, 몇몇 지인과 생일 파티 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옥선희 영화칼럼니스트 (‘내게 행복을 준 여성영화 53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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