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는 산만 있을까
저 산에는 과연 산만 있을까
초록 머리칼을 날리며 뜻밖에도
천 살에 가까운 젊은이가 살고 있지는 않을까
그의 눈썹 위로
달이 떠오를 때면 짐승들이 상처난 무릎을 세우고 앉아
기도를 피워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계절마다 아이들이 새로 태어나고
시시각각 눈빛이 다른 투명 거울이 있어
그 앞에서 다투어 여자들이
연한 속옷을 갈아입는 것은 아닐까
내 안에도
나 말고 천둥과 벼락이 살고 있듯이
안개 속에 이마를 숨기고
남몰래 녹아가는 바위가 있듯이
저 산에도 천둥과 벼락이 살고 있을지도 몰라
거친 숨을 내뿜으며
더 높은 봉우리를 향해 이 순간에도
누군가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지도 몰라
고산병에 휘청거리며
이쯤에서 그만 산을 내려갈까 말까
산 중턱에서 나처럼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몰라
-문정희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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