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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나는글(2)

화장을 하며

작성자구정리|작성시간24.10.08|조회수12 목록 댓글 0

 

 

 

화장을 하며 

 

 

 

 

입술을 자주색으로 칠하고 나니

거울 속에 속국의 공주가 앉아 있다

내 작은 얼굴은 국제 자본의 각축장

거상들이 만든 허구의 드라마가

명실 공히 그 절정을 이룬다

좁은 영토에 만국기 펄럭인다

금년 가을 유행색은 섹시브라운

샤넬이 지시하는 대로 볼연지를 칠하고

예쁜 여자의 신화 속에

스스로를 가두니

이만하면 음모는 제법 완성된 셈

가끔 소스라치며

자신 속의 노예를 깨우치지만

매혹의 인공 향과 부드러운 색조가 만든

착시는 이미 저항을 잃은 지 오래다

시간을 손으로 막기 위해 육체란

이렇듯 슬픈 향을 찍어 발라야 하는 것일까

안간힘처럼 에스테 로더의 아이라이너로

검은 철책을 두르고

디올 한 방울을 귀밑에 살짝 뿌려 마무리한 후

드디어 외출 준비를 마친 속국의 여자는

비극 배우처럼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 문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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