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준비
아주 추웠던날 낙원상가에 가게됐다.
전철을 타고
종로3가역에 내렸을때
승강장 풍경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정말
발 디딜틈도 없을만큼
많은
노인들로 가득차 있었다.
밖이 추우니
모두가 지하철역 승강장으로
내려와 앉아있는 것이다.
전철에서 내린
중년의 여자한분이
‘꼭 까마귀떼가 내려 앉은것 같다.’ 고 했는데
사실이 그러했다.
역무원들
역시 속수무책이었다.
어쩔것인가,
그 추위에 노인들을
밖으로 나가라고 할수도 없고,
나가라고 해서
나갈 사람들도 아니었다.
평소
종로3가 근처엔 노인들이 많다.
그들
모두가 마땅히 갈곳이 없으니
추위를 피해
지하철 승강장으로 자리를 옮긴것이다.
그 숫자가
너무 많아서 놀라울 뿐이었다.
정말
그건 보기드문 풍경이었다.
쪽방이라는게 있다.
그 사전적 풀이는,
‘극빈자들이 하루 또는 월단위로 세를 내고
거주하는 비좁은 방,
대도시
일부지역에 자리잡고 있으며
실직자와 가출청소년,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용한다.‘ 로 돼있다.
말이 방이지
한사람이 겨우 용신할수 있는
좁은면적이며 창문도 없다.
토끼장처럼 붙어있는
이 쪽방에는
극빈자에 속하는
독거노인들이 많이 살고있다.
그들에게 쪽방은
늙은몸-노구(老驅)를 눕힐수 있는
세상의 막장인 것이다.
그 공간에서는
정상적인 삶-일상이 있을수 없다.
모든 조건이
너무나 열악하기 때문이다.
서울을 기준할 때,
이런
쪽방촌은 아홉군데 있으며
약 3.200여명의 최빈곤층 독거노인들이
그 안에서 생존하고 있다.
이 숫자도
결코 적은것은 아니지만
행정력으로
파악이 안되는 숫자도 많을것이다.
수많은
노인들이 최빈곤층으로 전락,
쪽방 이라는
최악의 공간에서
그 생명을 부지 하고 있는것이다.
이제 범위를 좁혀
그중
한 지역의 형편을 가까이에서 살펴보자.
서울의 도봉구가 그곳이다.
독거노인들을 기준할 때
도봉동이 20가구,
쌍문동이 40가구,
방학동이 40가구다.
어떤 노인은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방안에 텐트를 치고 전기장판에 누워 있었고,
어떤 할머니는
냉방에서 옷을 네겹으로 껴입고
이불속에 누워 있었다.
그 방의 온도는 섭씨4도,
저체온증으로 죽을수 있는 온도다.
취재진이
100가구중 30개 가구에서
30명을 심층취재했다.
그중 28명, 즉 80%가
가족이 있는 노인들 이었으며
24명은 노인우울증이 있었다.
노인들을 버린 가족의 패륜
(悖倫-인간의 도리가 아닌것) 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았다.
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
노인지원센터에서 배달해 주는
밑반찬으로 살아가고 있었으며
서류상 으로는
가족이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될수도 없었다.
말하자면 쪽방에서
죽을때까지 방치되어 있는것이다.
사회안전망 으로서의 ‘복지’ 가 필요한건
바로 이런 경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이하가 되는것을 막는것,
그게 복지의 기본개념이다.
쓰레기통을
뒤지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러한 처지에 있는
노인들의 형편은 여러 가지지만
기본적인 공통점은
결국 하나다.
‘자기의 공간’ 이 없는것이 그것이다.
인간은
공간에서 자유스럽지 못하면
시간에서도 자유가 없다.
그만큼
자기집-제집-자기공간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현역에서 은퇴한후의 노후 생활에서
자기공간은 나머니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의 하나가 된다.
쪽방에서
비참하게 살고있는 독거노인들이
그렇게 된
사정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자기자신에게 있다.
‘가난구제는 나라도 못한다.’ 는 경구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쪽방에
지치고 병든 노구를 눕히는 독거노인들은
그래서
모두의 반면교사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똑같이
이 심각한 문제는
누구에게나
닥칠수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모두가
이 문제에서 외면할수 없는 이유다.
최근
베이비붐 세대 730만명중
앞줄에 있는
사람들이 은퇴를 시작했다.
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러 가지 설문조사를 종합해 보면
염려했던 대로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정상적인
노후생활준비를 100으로 했을때,
경제문제-돈과,
은퇴후의 자기일-취미생활이
40점대로 낙제점수로 나타나고 있다.
준비가 덜 된채
현역에서 밀려나고 있는것이다.
가정을 꾸리고
애들키워 교육시키고,
결혼까지 시키다 보니
정작
자신을 위한 준비를 못한것이며
매일매일을
노새처럼 일에 매달려 살다보니
제대로 된
취미 하나도 만들지 못한것이다.
‘늙어서 돈 없으면 죽은목숨이다.’
이 말은
겪어본 사람들이 뱉어낸 아픈 비명소리다.
그 죽은목숨이
갇히는 공간이 바로 쪽방인 것이다.
거기에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손에 쥔것없이 은퇴하면
기다리는건
검푸른바다 같은 차가운 현실이다.
이점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나도 이제는
은퇴후 노년생활 15년차의 베테랑 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긴 세월이다.
따라서
체험적으로 축적된 노하우도 많아졌고
현역일때 ‘은밀히 준비’ 해야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충고와 조언을 해 줄수있는
위치에 있게된것도 사실이다.
물론
한 개인의 체험이
전체를 얘기할수는 없다.
사람의 사정이 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것은 언제나 공통적이다.
노년을 사는 부부의 경우
대개는
여자쪽이 경제권을 쥔다.
사실
그건 자연스러운 것이고
서로에게 편한 일 이기도 하다.
그러나
남자쪽에서 본다면
아내에게 손을
내 밀어야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역일때는
수입이 있는 가장이었지만
은퇴하고 나면
젖은낙엽,
삼식이가 되는것은 기본이고
자칫
찬밥신세에
개밥의 도토리가 될수도 있다.
가족이 있는
독거노인들이 그런 경우다.
그때
가슴을 쳐봐야 뾰죽한 수가 없다.
막다른 골목인 것이다.
그래서
체험자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
현역일때
‘은밀한 준비’ 를 서둘러야 한다.
남자가
나이들어 용돈에 궁하면
그게바로 거지꼴이다.
천덕꾸러기가 되는 시작이 그렇다.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자그마한
지혜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은밀한 준비를 해야된다.
노후생활을 하고있는 내 경우,
가장많이
지출되는게 책값이다.
워낙
책을 많이 사기 때문이다.
다음이
악기교습을 위한 레슨비,
이 지출도 큰 편이다.
영화와 뮤직DVD도 자주 사게되고,
약간의
식도락을 즐기기 위해서도
적잖은 지출이 있어야 된다.
따라서
최소한 한달에 몇십만원은 있어야
품위있는 노후를 살수있다.
나는
이 용돈을
아내나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그 누구에게도
손을 내 밀지 않는다.
현역일때, 최선을 다해
‘은밀히 준비’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저축하는 방법도 다양해 졌고,
자기처지에 맞는
저축상품도 얼마든지 있다.
그점을 활용,
은퇴후 월 고정금액이 나오는
준비를 반드시 해야된다.
아무도 모르게,
정말
은밀히 준비할 일이다.
은퇴후
그렇게 준비한 돈이
매달 손에 들어올때
그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깊이 깨달을 것이다.
사람이 당당해 지고
생각과 자세에서 여유가 생긴다.
낙제점수의 하나가
‘취미의 준비없음’ 이다.
은퇴후
컴퓨터 앞에앉아 바둑을 두는것은
시간은 보낼수는 있지만
생산적인것은 못된다.
화투나 카드는 더 나쁘다.
정신도 건강도 나빠지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하는것,
늘 하고싶던것.
그게 무엇이든
남에게 폐를 끼치는것이 아니라면
현역일때
학원에 다니면서 라도
미리 익히고 배워두는게 옳다.
노인에게
무료-할일없음은 죽음같은 것이다.
이 문제도
용돈준비처럼 은밀히 준비할 일이다.
한편
젖은낙엽이 되어
찬밥신세가 되지않으려면
가족에게,
특히 아내에게 필요한
현실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게 ‘요리하기’ 다.
아내를 위해,
식구들을 위해 식탁을 준비해 보라
대접이 달라지고 위치가 달라진다.
그만큼
집안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되는것이다.
요리 잘하는 남자는
언제 어디서나 환영받는다.
은밀히
요리학원에 다니는것도 한 방법이다.
사실
자기자신을 위해서도
요리는 할줄 알아야 된다.
먹고싶은 음식을
스스로 만들어 먹는것도
노후생활의 즐거움중 하나다.
그리고
뜻밖에 요리에는
창의적인 구석이 많다.
이제
가장 중요한 얘기를 해보자.
거개의 직장인은
자기집에 ‘자기의 공간’이 없다.
주로
회사에 있기 때문에
사무실이
자기의 공간인 셈이다.
그러나 어느날
은퇴하고 집에 들어앉으면
그때야 비로서
자기몸 하나 기댈수 있는
‘자기의 공간’ 이 없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게 된다.
아내와 함께 쓰는 안방도,
식구들이
함께쓰는 거실도
자기의 공간은 아니다.
일단
은퇴하면 부부사이라 해도
구획된 공간이 있는게 서로 편하다.
공간구획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마찰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그래서
치밀한 작전을 세워야 한다.
애들이 떠난
작은방 하나를 차지하던지,
아니라면
그방은 아내에게 주고
안방을 차지해야 한다.
그렇게 하겠다는
결심을 자주 얘기하고
식구들이 알게 해야된다.
그다음, 안방에
자기전용의 책상을 갖다놓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소유권 선포가 그것이다.
그게 발전된게 곧 서재다.
그 공간안에
내것을 가득채우면
그 노년은 행복한것이 될수있다.
자기의 전용공간확보,
반드시
이루어내야 하는 필수 작업이다.
사람이
나이들어 가지게되는 서재는
이 세상에서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안식처가 된다.
내게 있어
서재는 삶 그 자체다.
나이가 많아져
출입이 불편해질때
서재야 말로
최고의 공간이 되는것이다.
정년퇴직은
생각보다 갑자기 온다.
준비된 사람에게는
기다리던 순간이지만
준비가
부실하거나 없는 사람에겐
날벼락일수 있다.
이미 붓고있는
연금은 공개적인 준비지만
노후는
그것만 으로는 부족하다.
정말
생산적이고
값진 새 삶을 원한다면
‘은밀한 준비’ 가 있어야 한다.
성격상
은밀한 일을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러나
노후는 피할수 없는 현실이고
그건
준비한 만큼만 살수있는 새 세상이다.
눈보라가 치거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시간,
내 집에서
따뜻한 잠자리에 들때,
나는 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내 노력만으로
이루어 지는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후배들에게
은밀한 준비에 대해 얘기할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나는 오늘아침,
첼로로
아름다운 바하의 메뉴엣을 연주했다.
그래서 행복했고 감사했다.
이제
은퇴를 시작하는 모든분들이
나처럼
감사하는 생활을 할수있다면,
나의
작은 충고가 도움이 될수있다면,
그역시
감사한 일이 아닐수 없다.
시간과 밀물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서양격언.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