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 직후인 1945년 8월 20일경, 일본 전국의 매춘업자들이 도쿄 긴자(銀座) 거리에 '신일본 여성에게 고함' 이라는 거대한 광고 간판을 걸었다.
'전후 처리를 위한 국가적 긴급 시설의 일환으로서 진주군(미군) 위안이라는 대사업에 참가할 신일본 여성들의 솔선수범을 청한다'는 내용이었다.
'18세에서 25세 사이의 여성 사무원, 숙식 및 의복 제공'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미군이 상륙하면 여자들을 남김없이 겁탈할 것'이라는 소문이 쫙 퍼졌다.
이 얘기를 퍼뜨린 것은 전선(戰線)에서 돌아온 군인들이었다. 그들이 동아시아 일대에서 저지른 만행을 미군이 일본에서 저지를 것이라는 얘기였다. 내무성은 8월 18일 전국 경찰에 점령군 전용 '특수 위안 시설'을 만들라고 비밀 지시했다. 부총리는 "일본의 딸을 지켜주기 바란다"며 경시총감에게 이 사업을 직접 지휘하라고 했다.
일본 정부는 매춘업자에게 당시 돈 1억엔을 지원했다. 굶주리던 많은 여성이 광고 간판을 보고 찾아갔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돌아갔다. 하지만 "나라를 위해 헌신한다는 생각으로 왔다"는 여성도 적지 않았다. 도쿄 황궁 앞에서 '특수위안시설협회' 창립 대회가 열렸다. '선서'가 낭독됐다.
'(천황이) 주둔군 위안의 난업(難業)을 과(課)하셨도다. … 국체(國體) 호지(護持)에 정신(挺身)할 뿐' 이라는 내용이었다. 국가를 위해 몸 바쳐 앞장선다는 이른바 '정신대' 논리였다. 도쿄에서만 여성 1360명이 모집되었고, 20개 도시로 확대됐다.
여성은 하룻밤에 미군 15~60명을 상대해야 했다. 자살하는 여성도 속출했다. 이런 정부 주도 집단 매춘은 1년간 계속됐다. ..............
chosun.com/신정록의 태평로 2014 02 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