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陸의 暴擧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그의 관저로 초치하여 대한민국에 대한 방자한 언설을 농한데 대하여 분노하면서, 역사상 대륙세력이 우리에게 끼친 폐해를 다시 상기하고자 한다. ○三國時代 •百濟 멸망 이후 -의자왕을 비롯한 1만2천8백7명의 百濟人들이 唐나라의 낙양으로 끌려갔다. •高句麗 멸망 이후 -보장왕과 그의 가족, 백성 3만8천3백호(약 20만 명)의 주민들이 唐나라로 끌려갔다. 이들은 대부분 노예 등 사회 하층민 으로 흡수되어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다. ○高麗朝- 몽골의 침입으로 20만6천8백여 명의 포로가 잡혀갔다. ○朝鮮時代 •병자호란으로 10만 명이 중국으로 끌려갔다. •이들 가운데 젊은 여자들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다. •다만 돈을 주고 돌아온 여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화냥녀(還鄕女)’라며 치욕을 감수했다. •靑은 납치양민을 전리품으로 취급,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종실, 양반의 부녀들을 많이 잡아갔다. •속가(贖價)도 처음에는 1인당 25~30냥이었으나 대개 150~250냥이었고 신분에 따라 1,500냥 까지 했다. •딸과 며느리를 찾아오기 위한 재원 마련이 어려웠고 개인, 국가의 재정도 파탄을 가져왔다. Comment ★일제강점기에 당한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하여 일본에 문제 제기를 하듯이, 중국에도 폭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지 大陸選好에 傾倒된 군상들에게 묻고싶다 ★習近平은 트럼프에게 '역사상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했다. ★고려조와 조선조에 실제로 조공책봉을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한국은 역사상 대륙문명보다 해양문명에서 받은 긍정적인 영향이 훨씬 컸다. ★간단한 우리 세대의 경험으로 6.25때 미국이 분유와 밀가루를 갖다 주지 않았으면 훨씬 많은 사람이 굶어죽었을 것이다. ★한강의 기적과 근대화도 한미동맹의 울타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은 지울 수 없는 Fact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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