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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인생이 비록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멈출 수 없듯이...(청마회 하소언 선생님의 글)

작성자문남숙|작성시간05.10.30|조회수81 목록 댓글 2
40대의 마지막 해를 맞이한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춘천종합운동장의 풀코스 출발선상에 섰다.
풀코스 데뷔무대인 이곳이 항상 가슴에 아련한 향수로 남아 1999년 이후 해마다 춘천을 찾아 어느새 일곱 번째의 춘천 나들이를 온 셈이다.
한해동안 열심히 달리고는 깊어 가는 가을의 춘천에서 검증을 받는다는 심정으로 항상 이 자리에 서게된다.
어쩌면 매년 이곳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생활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또는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곳을 찾을 수 있으랴?
앞으로도 오랫동안 빠짐없이 이곳을 다시 왔으면 좋겠다.
기록은 매년 제자리에서 맴돌거나 후퇴하기 일쑤지만 그게 무슨 대수이겠는가?
올해도 가슴 설레며 A그룹을 꿈꾸는 B그룹의 출발선상에 설 수 있다는 자체가 신이 내린 크나큰 복임에 틀림없으리라.




무심코 주변을 돌아보니 대부분의 주자들은 나의 또래로 보이는 중년의 아빠들이 많은 것 같았다.
우린 가난하고 배고픈 어린 시절을 산에서 또 들에서 그리고 강가에서 달리고 또 달렸었다.
겨울이면 동네 아이들과 이 산 저 산 뛰어 다니며 전쟁놀이를 하다가 배고프면 군것질 대신 칡을 캐 먹기도 했고 봄이면 쑥도 캐고 뽕나무 열매인 오디와 찔레순을 따먹으며 들판을 온종일 쏘다니기도 했으며 여름이면 맑은 물이 흐르는 강가에서 개헤엄 치고 물장구치며 놀다가 물고기를 잡아 깻잎에 싸서 구워먹기도 하고 가을이면 산열매도 따먹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도토리를 한아름 주워 어머니께 드리면 너무도 좋아하시곤 하셨다.
이렇게 우린 컴퓨터도 텔레비전도 없던 어린 시절을 거의 운동으로 보냈었다.
그래서인지 달리기 하나만은 자신 있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이제 서서히 뒷전으로 밀리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아빠들은 알 수 없는 그 서글픔을 달리기로 달래려는 듯, 아련한 향수에 젖은 듯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나 오늘 나의 경쟁상대는 이 아빠들이 아니다.
나는 내게 도전하는 것이다.
아니 또 다른 나에게 도전하는 것이다.
달리는 동안 나는 내면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출발선에 서서 또 다른 나를 만난다는 반가움에 콧날이 시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숨어있던 또 다른 내가 나에게 오늘은 불쑥 무슨 말을 할지...

드디어 출발...
물밀 듯이 주자들이 종합운동장을 빠져나가 기나긴 여행의 첫발을 내딛는다.
이번 대회가 나에겐 20번째의 풀코스 도전인 셈이다.
해가 갈수록 달리기가 쉬워져야할텐데 오히려 멋모르고 달렸던 첫 번째 도전이 가장 쉬웠던 것 같다.
결국 초반 오버페이스로 후반에 극심한 고통으로 대가를 치러야만 했었지만 완주가 목표였기에 주변경관도 살펴가며 여유 있게 달릴 수가 있었었다.
해가 갈수록 목표도 설정해서 구간기록도 체크하고 몸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달리다보니 고도의 작전이 요구되는 게임을 하는 듯 재미는 있지만 달릴수록 힘들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 대회도 차분히 달리다가 컨디션이 허락하면 열심히 달려 어디까지나 목표이긴 하지만 Sub-3를 이룬다는 생각이었다.
초반 오버페이스를 피하며 5km를 비교적 여유 있게 21분 29초에 통과할 수 있었다.
5km통과 : 5km 구간기록 21' 29", 누적 21' 29"

오르막이 끝나자 주로 우측으로 펼쳐진 의암호의 절경을 바라보며 조금씩 조심스레 속력을 높여나갔다.
작년엔 이쯤에서 Sub-3페이스메이커를 만났는데 올해는 나를 추월한 공포의 노란 풍선은 아직 없었다.
20일을 금주를 하며 컨디션을 조절해서 비교적 작년보다는 체력이 좋아졌다는 느낌이 든다.
10km통과 : 5km 구간기록 20' 12", 누적 41' 42"

등에도 배번호를 단 여성엘리트선수 한 명을 추월했다.
엘리트선수들은 뒤쳐지면 기권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이 선수는 끝까지 달리려나 보다.
역시 엘리트 선수들은 몸매부터가 마스터즈들과는 비교가 된다.
엘리트선수를 바라보며 조금 더 일찍 마라톤을 시작할걸 하고 후회도 해본다.
젊은 이 삼십대를 운동과는 거리가 먼 다른 놀이문화에 빠져 퇴근시간이 무섭게 동료들과 어울려 몰려다녔었다.
15km통과 : 5km 구간기록 20' 38", 누적 1시간 2' 20"

또 여성엘리트선수 한 명을 추월하였다.
그리고 역방향으로 경기를 포기하고 걸어오는 남성엘리트선수들도 서너 명을 만나게된다.
무리하게 오버페이스를 했나보다.
아직 내몸은 별다른 무리가 없다.
대회를 앞두곤 항상 감기를 앓는다든지 부상을 당한다든지 했었는데 이번은 컨디션조절이 비교적 잘되었나보다.
역시 원인은 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술로 인해 피로가 누적되고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감행되는 훈련에 내몸이 견디질 못했나보다.
이제 서서히 절주도 생각해 볼 시점에 이른 것 같다.
20km통과 : 5km 구간기록 21' 8", 누적 1시간 23' 29"

하프를 1시간 27분 여초에 통과하였다.
작년에는 1시간 30분을 넘겨 목표점을 잃고 춘천댐을 향하는 오르막에서 걸었던 기억이 있는데 올해는 아직도 공포의 노란 풍선도 만나지 못했다.
아마 Sub-3페이스메이커가 전 후반을 거의 같은 속력으로 달리나 보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후반에 급격히 체력이 소진되는 경향이 있어서 뒤에서 발자국소리만 들려도 깜짝 놀라며 뒤돌아보곤 하였다.
25km통과 : 5km 구간기록 21' 31", 누적 1시간 45' 1"

이제 서서히 마라톤의 벽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부터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 시작된다는 생각에 정신무장을 단단히 한다.
'넌 할 수 있어 아니 꼭 해야해'
이런 컨디션을 다시 찾는다는 보장은 별로 없을 것만 같다.
이제 50대로 접어들면 더더욱 기회는 줄어들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30km통과 : 5km 구간기록 22' 20", 누적 2시간 7' 21"

요란한 발자국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Sub-3페이스메이커와 이삼십 명의 무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뒤쳐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무리들의 선두에 서서 달렸다.
이거야 원! 내가 Sub-3페이스메이커가 된 기분이다.
마라톤의 벽을 통과하는 것은 확실한데 아직은 달릴만하다.
그러나 자신과의 싸움이 점점 치열해지는 느낌은 확실하다.
다시금 정신무장을 단단히 한다.
35km통과 : 5km 구간기록 22' 27", 누적 2시간 29' 49"

남은 거리 7km, 남은 시간 31분, Sub-3를 위해서는 1km당 4분 25초 정도의 속력으로 달려야한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나니 갑자기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 순간 Sub-3페이스메이커와 그 일행들이 은하철도 999마냥 쏜살같이 치고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아!!! 또 이렇게 보내야만 하는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넌 할 수 있어, 꼭 해야만해'
다시 추격이 시작되었다.
Sub-3와 멀어져 가는 많은 주자들을 추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포의 노란 풍선은 점점 더 빨라져 결국 놓치고 말았다.

시내로 접어들어 40km를 통과할 즈음 요란한 발자국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또 한 무리의 Sub-3페이스메이커와 일행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
아직도 기회는 있었구나.
그러나 그들은 이미 달리는 속도가 상당히 가속되어 따라가기가 무척 힘들었다.
사력을 다하며 필사적으로 달려보지만 두 번째 공포의 노란 풍선이 춘천종합운동장안으로 숨어버린다.
출입문을 들어서며 무서워 보지 못했던 시계를 보니 3시간을 막 넘기고 있었다.
드디어 골인!!!!!
기록 : 3시간 4' 52"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곧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다.
20번째의 풀코스 완주!!!
그리고 나의 최고기록!!!
춘천하늘아래에서 영원히 가슴에 남을 가을의 전설을 남긴 것이다.
운동장안을 천천히 오가며 고개를 들어 춘천의 가을하늘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내가 한없이 자유로워져 있음을 느꼈다.
아! 이제 나는 자유를 얻은 것이다.
이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비로소 느낀다.
힘들었던 것 보다 기쁨이 몇 갑절로 되돌아와 바라보이는 세상도 달릴 때와는 너무도 달라만 보였다.

힘겨워하는 완주자들을 바라보며 진한 전우애마저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인생이 비록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멈출 수 없듯이 이들은 끝까지 참으며 묵묵히 달려왔다.
그리고 비록 작더라도 힘들게 이룬 일 일수록 오랫동안 가슴을 저려오는 기쁨을 주듯 고통을 참고 열심히 달렸을 때 느껴지는 희열이야말로 오랜 시간 우리를 기쁨으로 전율케하는 것이다.
이런 기쁨, 이런 환희를 느끼기 위해 다음 여덟 번째의 춘천행도 반드시 감행하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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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문남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5.10.31 땀 한방울도, 한 발자욱도 모두가 금메달이란 말처럼... 마라톤의 진수를 다시금 일깨워주신 하선생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김향숙 | 작성시간 05.10.31 하소언 선생님 축하합니다. 50대 진입을 환영하구요. 건재하신 소식을 들으니 정말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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