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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기의 연변-<독립군 부대>

작성자단군신화|작성시간14.06.16|조회수9 목록 댓글 0

3·13운동 이후 만주 여러 곳에서 독립군 부대가 강화된다. 3월 15일 유하현 삼원보에 한
인조직인 보약사, 향약계, 유림수뇌, 포수단 등의 대표들이 모여 대한독립단을 결성하고
홍범도를 단장으로 추대한다. 한편 이 지역 일대의 대표자 이상룡, 여준, 김동삼, 이청천
등이 모여 부민단, 자신계, 교육회 등을 통합해 군단을 조직하니 이것이 서로군정서(西路
軍政暑)이다. 서로군정서는 신흥학교를 신흥무관학교로 격상시켜 군대양성을 목적으로 했
다.

왕청현 춘명사에 있던 서일의 중광단은 3·13운동 이후 김좌진과 이범석을 맞아 군정부로
개칭했다. 상해임정에서는 1919년 12월 이를 북로군정서라 개칭하고 사관강습소를 설치케
했다.

구 한국군인들이 3·13운동 이후 만주에서 이규를 추대하고 대한정의단 림시정의군정부를
조직했다. 이것은 상해임정의 권유로 1919년 10월 대한정의군전사로 개칭했다가 후일 이청
천 장군 부대와 합류해 대한의용군으로 개편된다.

만주 동부에 흩어진 독립군들이 1919년 4월 왕청현 춘명사 북삼차구에 모여 조직한 부대를
의군부라 했다가 후일 조선독립군으로 개칭한다. 한편 3·1운동 당시 서울에서 활동하던
학생들이 만주에서 조직한 것이 대한독립청년단이다. 이것은 후일 대한청년단련합회로 발
족한다. 이러한 단체, 말하자면 대한의용군사의회, 한족회, 기원독립단, 민국독립단, 청년
단련합회 등의 대표들이 모여 1920년 2월에 조직한 것이 광복군이다.

이외에도 안무가 연길현 의관구에서 조직한 국민회 국민군, 최동진의 군무도독부, 안도현
의 정의군정서, 흑룡강성의 혈성당, 훈춘현의 청년당, 장백현 십칠도수의 독립군비단 등이
있었다.

미국 하와이와 같이 만주에도 국민회가 조직된다. 서울의 3·1운동에 참가했던 기독교 신
자들이 1920년 5월 연길현 의관구에 모여 구춘선을 회장으로 추대하고 국민회를 조직하니
이것을 동간도 국민회라 한다. 동간도 국민회는 간도 일대에 5개 구회와 52개 지회를 두고
정규 사관학교를 설립한다. 한편 동간도 국민회는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을 직
속군단으로 하고, 최진동의 대한군무도독부독립군을 국민회의 제2군단으로 하며, 훈춘지방
국민회 기독교 회원으로 구성된 독립군을 국민회 제3군단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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