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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학

어려운 창세기의 창조이야기

작성자가행꿈|작성시간16.11.14|조회수1,139 목록 댓글 0

어려운 창세기

아름다운 솔샘교회 최봉석목사

 

어려운 창세기라는 말은 말 그대로 창세기가 이해하기 쉬운 책이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창세기는 어렵게 읽고, 어렵게 배우고, 어렵게 이해해야만 하는 책인 것이다. 어려운 책을 쉽게 연구하고, 쉽게 가르치려고 한다면 창세기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의를 파악하기가 어려워진다. 모든 성서해석이 그렇지만, 특히 창세기는 아주 예리한 양 날의 칼과 같기 때문에, 아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해석하지 않으면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창세기 11절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창세기 11절 원문이다. 히브리어는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쓰기 때문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히브리어는 본래 자음만 있고, 모음은 없는 문자이다. 하지만, 자음 밖에 없으면 발음이 불편하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모음을 붙였던 것이다.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음역을 하면, “bə·rê·šîṯ bā·rā ’ĕ·lō·hîm; ’êṯ haš·šā·ma·yim wə·’êṯ hā·’ā·reṣ”가 된다. 이것을 한국어로 베레시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하샤마임 워에트 하아레츠로 읽는다. 개역개정한글판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번역했다.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하아레츠 워에트 하샤마임 에트 엘로힘 바라 베레시트

 

 

베레시트(בְּרֵאשִׁ֖ית)태초에’(in the beginning)으로 번역된다. 같은 말이 성경에 다섯 군데 나오는데, 창세기 11절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예레미야서에 나온다.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이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26: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에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예레미야에게 임하시니라”(27:1), “그 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 년 다섯째 달 기브온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28:1), “유다 왕 시드기야가 즉위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엘람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49:34). 그런데 레시트(רֵאשִׁית)는 머리(head)를 뜻하는 로쉬(רֹאשׁ)에서 온 말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시간이 사작되었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시간(時間)을 만드신 분으로 파악된다. 하나님은 시간 안에 계시면서도 동시에 시간을 초월하신다. 성경은 그것을 영원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즉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다. 인간의 지성으로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난해한 문제를 풀 수 없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 안에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을 벗어난 인간을 상상할 수 없다. 모든 물질은 반드시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존재한다. 시간, 공간, 물질이 바로 우주의 3요소이다. 3차원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으신다. 오히려 3차원의 세계를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목적과 계획에 따라 다스리신다.

 

바라(בָּרָ֣א)창조하다는 뜻을 가진 동사인데, 그것은 ()에서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말한다고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말을 스무 번이나 사용할 정도로, 하나님의 절대창조를 선언하였다. 폰 라드(G. von Rad)가 지적한대로, ‘바라는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이심을 보여준다. 저작권이라는 말이 있듯이, 만든 자는 만든 것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가진다. 만든 자의 권리는 법적으로 보장된 배타성(排他性)을 말한다. 하나님을 절대자(絶對者, the Absolute)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어떤 재료를 가지고 우주를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말씀으로 우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분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며, 따라서 모든 피조물은 마귀처럼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할 수는 있어도 그의 신적 능력을 무너뜨리거나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분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근원이면서, 완전하신 분이시다. 창조주 하나님은 온전했던 피조물이 불완전해지거나 손상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매순간마다 가장 지혜로운 최선의 선택을 통해서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신다. 세상이 불공평하거나, 무법천지(無法天地)라고 해서 하나님이 온전하지 못한 존재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마귀의 반역과 첫 사람의 범죄와 타락으로 말미암아 신음하고 있는 모든 세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어리석은 아우성을 멈추고, 그만 입을 다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창조주 그분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무리들을 위하여 용서의 기도를 올리셨기 때문이다. 그 분의 기도 속에서 찾아내야 할 함의(含意)가 있다면,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겸손한 자기희생을 통해서, 창조주의 책임을 다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창조주 하나님의 완전성은 불완전한 세상에 대해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자기희생의 방식을 통해서 정면으로 돌파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결정적 승부수(決定的 勝負手)이며, 불완전한 인생들에 대한 최후통첩(最後通牒)임에 틀림없다.

엘로힘(אֱלֹהִ֑ים)엘로아’(אֱל֫וֹהַּ)의 복수형으로, 직역하면 ()’(gods)의 뜻이다. 출애굽기 203절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 신들이 바로 엘로힘을 말한다. 엘로힘이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닐때는 신들(gods)로 번역되는 것이다. 하지만, 창세기 11절에 나오는 엘로힘은 창조주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들로 번역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번역한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엘로아엘로힘모두 그 뜻이 창조주를 가리킬 때는 모두 하나님이라는 단수형으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성경에 하나님이 나오면, 먼저 그 형태가 단수형인지 복수형인지를 알아야 오류를 피할 수 있다. 히브리어에서 일반적으로 신()을 뜻하는 엘(אֵל)은 형태는 단수형이지만, ()들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더러운 귀신도 따지고 보면 하나의 신()이다.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신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은, 다니엘게 환상의 의미를 설명하던 천사 가브리엘의 말처럼, “신들(אֵלִ֔ים) 중의 신(אֵ֣ל)”이시다(11:36). 이 말은 하나님이 모든 신들 가운데 가장 높으신 분, “지극히 높으신분이라는 뜻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아버지(聖父)가장 높으신 하나님혹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시다. 물론 예수님도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존재하셨던 ’(אֵל)이시다. 그렇다면 어째서 엘로힘을 그냥 하나님들(Gods)로 번역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창조주 하나님은 유일하신(אֶחָֽד) 하나님(God)이시기 때문이다(6:4, 12:29).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고 기독교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 유일신(唯一神)을 믿는 종교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을 믿는다.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어렵지만, 엘로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어원적 증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성경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천지창조의 주인공으로 나온다. 따라서 유일신론은 삼신론을 배격한다. 또한 우리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그렇게 세 분 하나님이 동시에 한 분이심을 믿는다. 하나님은 공동체(共同體)로 존재하신다! 예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10:30),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14:9)고 말씀하신 의미를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해석임에 분명하다. 솔직히 그보다 더 나은 해석을 발견할 수 없다.

 

 

***참고 <복수형태인 엘로힘이 구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다. 엘로힘은 그 형태대로 복수명사로 쓰일 때도 있고 단수명사로 쓰일 때도 있다. 유일신 하나님을 나타낼 때는 단수명사로 쓰이고 이방신들을 나타낼 때는 복수로 쓰인다. 이 단어가 복수로 쓰이느냐 단수로 쓰이느냐 하는 것은 그 문장의 문법구조나 문맥에 따라 판단된다. 예를 들면 처음에(창세기) 11절에서는 엘로힘이 주어로서 나타나는데 바라(ar"B')동사가 단수이므로 이 엘로힘은 단수명사 하나님으로 판정된다.>

 

하샤마임(הַשָּׁמַ֖יִם)하늘들’(heavens)을 의미한다. 하늘들의 문제를 푸는 것은 간단하지가 않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하샤마임이 왜 하늘들로 번역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첫 번째 창조 이야기(1:1-2:4a)에 나오고 있다. 먼저 무로부터의 창조를 뜻하는 동사 바라를 보자. 바라는 나무를 자를 때 쓰는 말, ‘자르다, 분리하다’(cut out)의 뜻이 있다. 창세기 127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인간창조에 대한 설명을 보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분리하셨다.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하에, 그에게서 갈빗대 하나를 자르셨다. 그래서 사람은 남자가 되고, 갈빗대 하나는 여자가 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하늘을 자르셨다. 하늘을 자르고, 분리하니 하샤마임, 즉 하늘들(heavens)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바라가 무로부터의 창조를 말하는 것일까?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말씀으로 지으신 것이 아니다. 흙으로 지으셨다. 흙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가지고 아담을 만드신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분리했을 뿐이다. 한 사람을 둘로 잘랐는데, 그것이 바로 남자와 여자인 것이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합하도록 만드셨다. 모든 생물들의 성적 본능은 생육과 번성을 목적을 위해 계획하신 하나님의 지혜이고, 목적이다. 하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시공을 초월하신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공간이 없는 하나님을 상상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본래부터 하늘이라는 곳에 계셨다. 그것은 하나의 하늘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의 공간인 하늘을 분리했다. 적어도 하늘을 두 번 이상 칼질한 셈이다. 왜냐하면 하늘들을 지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라를 억지스럽게 무조건 무로부터의 창조를 말하는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는 말씀은 무로부터의 창조를 뜻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의 창조는 무로부터의 창조, 유로부터의 창조를 모두 포함한다. 무로부터의 창조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간단하다. 그냥 우와하고 놀라면 된다. 그러나 유로부터의 창조는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렇게나 아무 생각 없이 자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아주 정확하게 실수 없이 자르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는 유무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유로부터의 창조는 무로부터의 창조를 전제하고 있다. 하나님은 얼마나 놀라우신 분인가?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정상적인 사람을 두 사람으로 분리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 처음 만드신 아담과 남자로서의 아담은 갈빗대 수가 한 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창세기 11절에 하늘들을 창조했다는 말은 두개 이 상의 하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신 하늘 외에 두 개의 하늘이 첫 번째 창조이야기에 나오고 있는 것이다. 온전하 이해를 위해서는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하늘들 이야기가 도움이 될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고 빛과 어둠이 함께 있지 못하는 것처럼, 거룩하신 하나님과 악한 마귀는 공존이 불가하다. 불가피한 공존이 일어날 때는 갈등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사단이 여호와 앞에 나아오니 동방의 의인 욥이 큰 환난을 당하게 된 것이나(1:1-2:13), 미가엘 천사장이 하늘에서 사단과 싸우고자 할 때 사단이 땅으로 내쫓기는 것(12:7-9), 그리고 예수께서 밟는 땅마다 어둠이 물러가고 귀신들이 권세와 힘을 잃고 쫓겨나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고, 또한 마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나님은 신비에 둘러싸인 존재이시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계시(啓示)에 의존해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간에게 거처가 필요하듯, 하나님도 있을 곳이 필요하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에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6:9). 그런데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늘은 원문으로 보면, ‘파테르 헤몬 호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Πάτερ μν ὁ ἐν τος ορανος), 우라노스(ορανός)의 복수형우라노이스’(ορανος)임을 알 수 있다. 직역하면 하늘들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되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처가 바로하늘들(ορανος)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마귀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 예수께서 칠십 제자들에게사단이 하늘로부터(κ τοορανο)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10:18)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사단이 번개 같이 떨어진 하늘은 단수형 우라노스(ορανός)로 표현되었다. 또한 하늘(ορανός) 전쟁에서 패한 마귀가 하늘(ορανός)에서 있을 곳을 얻지 못하고 땅으로 내쫓기는 이야기가 나온다. , 하나님은 하늘들에 계시고, 사단은 하늘에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은 아니 계신 곳이 없고, 사단은 적어도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1. 하샤마임(השמים, the heavens)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성경을 시작하는 첫 구절에 하늘이 언급된 것은, 그만큼 천지(天地)가 하나님이나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공간적 개념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하샤마임(השמים, the heavens)이다. 히브리어 하샤마임(הַשָּׁמַ֙יִם֙)은 구약성경에 236번 나오고 있는데, 직역하면 그 하늘들이다. 하나님은 그 하늘들을 지으신 것이다. 특히 솔로몬 왕은 성전을 건축한 후, 성전낙성식에서 기도할 때에 네 번이나 주께서 계신 곳을 하샤마임(השמים)이라고 말하였다(왕상 8:30, 39, 43, 49). 하나님은 하늘들에 계신 분이시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כי האמנם ישב אלהים על הארץ הנה השמים ושמי השמים לא יכלכלוך אף כי הבית הזה אשר בניתי”(왕상 8:27)라고 말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의 뜻이다. 솔로몬의 말처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로써 하나님의 무소부재(無所不在)와 편재(遍在), 그리고 광대(廣大)하심을 깨닫게 된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하늘을 히브리어로 샤마임(שמים)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샤마임은 하나의 하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2개 이상의 하늘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은 2, 3, 아니면 그 이상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하늘이라는 말은 어렵다. 우주의 크기는 하나님의 광대하심의 크기다. 그런데우주는 팽창하고 있다는 물리학의 우주팽창 가설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에 대한 여러 가지 상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물리학자들이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증명 불가능한 가설을 마치 과학적 진리인 것처럼 이론화했던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하늘에 대해서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하늘들이라는 정확한 표현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설명해 나가고 있다.

 

하샤마임, 즉 그 하늘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 하늘들이 창조되기 전에, 그 하늘들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세상에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일 것이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시공(時空)의 시작과 끝을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심을 나타내기 위해 시공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사실 그 표현은 사람들이 이해 불가능한 신비를 경험하게 될 때 필요할 때마다 휘두르는 도깨비 방망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은 공간(space)의 개념이다. 사람에게 하늘과 땅과 바다라는 3차원에 속하는 공간이 주어졌다. 땅은 사람의 근원이면서, 삶의 터전이다. 땅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영역이다. 사람은 땅을 떠나 살 수 없는 존재로 지어졌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처럼 땅에 계시지 않고 하늘에 계신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땅에 있는 인간을 내려다보신다. 반대로 인간은 땅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게다가 땅은 가만 멈추어 있지 않고, 스스로 빙글빙글 돌면서 또 태양을 돌고 있다. 땅의 이중적인 회전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개념은 흔들리지 않는다. 과연 땅이 있기 전,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어디에 계셨을까? 하나님은 천지창조 이전, 하늘들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하늘에 계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ορανός)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3:13). 앞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늘은 하샤마임’ , 그 하늘들이 지어지기 전에 하나님이 창세이전부터 거하셨던 하늘을 말하는 것이다.

 

 

2. 라키아(רקיע, space) & 삼층천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다. 천지창조 이전에는 그 하늘들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에 또 다른 하늘들을 만드셨다. 그렇다면 다른 하늘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2개의 하늘을 말한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τρίτου ορανο)에 올라갔던 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고후 12:2). 비록 성경에 나오는 말은 아니지만, 셋째 하늘을 삼층천(三層天)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셋째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셋째 하늘에 어떻게 올라갔을까? 분명한 것은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을 통과해서 갔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궁창으로 번역된라키아(רקיע)펴다”(spread)의 뜻을 가진 라카(רקע)에서 유래한 말로, 아주 넓게 펼쳐진 공간(space)을 뜻하는 말이다. 첫째 하늘, 둘째 하늘, 셋째 하늘은 모두 히브리어로 샤마임이다. 그것은 또한 공간의 개념을 가진 라키아이다. 그래서 하늘이라는 개념도, 궁창이라고 번역되는 공간 개념인 라키아도 구별해야 될 필요성이 생겨났다. 구별하기 위한 목적으로 바울은 셋째 하늘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고, 창세기에서는 땅 위에 있는 하늘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 1장에서 하늘의 궁창이라는 표현이 반복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궁창은 공간의 개념, 즉 하나님이 그것을 만드신 목적과 역할을 가르쳐주는 개념인 것이다. 영어권에서 하늘은 일반적으로 ‘heaven’을 의미한다. 그런데 모든 하늘들을 heaven으로 번역하는 것이 헷갈리기도 하고, 자연적인 하늘과 시공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 계신 하늘을 구별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 여러 가지 단어들을 사용하여 그 뜻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어떤 하늘이든 그것을 번역할 때, 스페이스(space)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것은 말 그대로 공간을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첫째 하늘, 둘째 하늘, 셋째 하늘이 모두 스페이스(space)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라키아는 일반적으로 공간이라는 뜻을 가지는 말이고,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 모두 공간의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하늘에 대해서만 space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 굳이 하늘들의 이름을 정의한다면 아래와 같은 정의가 좋을 것이다.

첫째 하늘 스카이(Sky) - 하나님이 물 가운데에 궁창을 지으시고 궁창(לרקיע)을 하늘(שמים)이라 명명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רקיע)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הרקיע)을 만드사 궁창(לרקיע) 아래의 물과 궁창(לרקיע)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לרקיע)을 하늘(שמים)이라 부르시니라”(1:6-8)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השמים)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1:9)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רקיע השמים)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1:20)

 

위에 언급된 궁창은 지구의 하늘을 말하는 것이다. 물 가운데 하늘이 만들어졌으며,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물들은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다를 이루었고, 드러난 뭍은 땅이라 이름 지으셨다. 이것이 바로 일층천, 첫째 하늘(the first heaven)이다.

새가 날도록 창조되어진 하늘은 땅 위 하늘의 궁창이라고 설명되었다. 하늘의 궁창은 하늘의 궁창인데, 땅 위에 있는 하늘의 궁창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바로 그 곳에 각종 새들을 지으시어 날아다니도록 만드셨다. 지금까지 대기권 밖에서 새를 보았다는 증거는 없다. 오직 땅(הארץ, the earth) 위 하늘에서만 새들은 날아다닐 뿐이다. 새 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하늘 공간, 그것은 인간이 경험하는 첫째 하늘인 것이다.

정리하면, 첫째 하늘땅 위에 있는 하늘을 말한다.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하늘로, 사람들이 땅에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고, 새들은 날아다니고(1:20), 구름이 생성되어졌다가 사라지며, 날씨와 기후의 변화가 있고, 인간들이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푸른 하늘이다. 이러한 첫째 하늘은 스카이(Sky)로 번역할 수 있다.

 

둘째 하늘 유니버스(Univers) - 하나님의 창조사역 넷째 날에는 하늘의 궁창이라는 말이 3번 나온다. 여기서 궁창은 해와 달과 별들이 자리하고 있는 공간인 지구 밖의 하늘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이층천, 둘째 하늘(the second heaven)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ברקיע השמים)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ברקיע השמים)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ברקיע השמים)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1:14-17).

 

위에서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רקיע השמים) 새가 날으라는 말씀은 지구의 하늘을 뜻하고,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하늘의 궁창은 지구 밖의 하늘을 뜻한다. 둘째 하늘(the second heaven)은 지구 밖의 하늘, 즉 물리학의 연구대상인 우주(宇宙)를 말한다. 여기에는 해와 달과 수많은 별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코스모스(Cosmos) 개념은 공간의 개념으로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유니버스(Univers)로 번역할 수 있겠다.

 

셋째 하늘(Heaven) - 에스겔 122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있어 보기에 두려운데 그들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고라는 말씀의 궁창(רקיע)은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셋째 하늘을 말하는 것이다. 바울이 말한 셋째 하늘(the third heaven)은 헤븐(Heaven)으로 번역할 수 있다. 삼층천(三層天)은 예수께서 말씀하신아버지가 계시는 하늘,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하늘을 말한다.

중간정리를 해보자. 하나님은 넷째 날에 하늘의 궁창에(ברקיע השמים) 두 가지 광명체(=발광체)와 별들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공간, 즉 라키아를 하늘, 즉 샤마임(שמים)이라고 부르셨다(1:8). 이것은 둘째 하늘이다. 창세기 120절의땅 위 하늘의 궁창이라는 표현은 새 들이 날아다니는 첫째 하늘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처인 하늘에 두 가지 다른 하늘들을 만드셨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 11절에 나오는 하샤마임의 뜻이다. 따라서 천지를 만드셨던 무한한 하늘 공간이 바로 하나님이 태초 이전에 계셨던 곳이 된다.

 

 

3. 마귀: 공중의 권세를 잡은 영

 

하나님은 본래 우라노스(ορανός), 하늘에 계신 분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늘에 하샤마임(הַשָּׁמַ֙יִם֙), 그 하늘들을 지으셨다. 따라서 하샤마임의 본 뜻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라노스(ορανός)가 우라노이스(ορανος)가 된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 우라노이스의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셋째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첫째 하늘 아래 땅 위에 있다면 마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마귀의 거처에 대한 설명을 먼저 살펴보자. 신약성경은 마귀의 거처에 대해 공중이라고 가르쳐 준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έρος)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2:2)

 

하나님은 하늘들을 만드셨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하늘에 계신다. 그리고 하늘들 가운데 마귀가 있는 하늘이 있다. 에베소서 612, “ὅτι οκ στιν μν πάλη πρς αμα κασάρκα λλπρς τς ρχάς πρς τς ξουσίας πρς τος κοσμοκράτορας τοσκότους τοαἰῶνος τούτου πρς τπνευματικτς πονηρίας ν τος πουρανίοις말씀을 개역개정판으로 보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이다. 여기서 악의 영들이 있는 하늘은 에푸라니오이스’(ἐπουρανίοις)를 번역한 말이다. 이 말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베소서 13절에 나오는 하늘에 속한’(ν τος πουρανίοις)이라는 말과 비교해서 보아야 한다. 둘은 같은 말이다. 13절은 그리스도와 신령한 복과 관련되어 좋은 뜻에서 씌여졌다. 그러나 612절은 악한 영들과 관련되어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다. 다시 말해서 에푸라니오이스’(ἐπουρανίοις) 개념은 가치중립적인 개념임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에게 사용될 때는 좋은 뜻에서의 하늘을, 그리고 마귀에게 사용될 때는 나쁜 뜻에서의 하늘을 의미한다. 그래서 바울은 공중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악의 영들이 있는 하늘을 정의하고 있다(2:2).

 

사도 바울은 마귀에 대해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설명했는데, 그렇다면, 공중(air)으로 번역되는 말 아에르(ήρ)의 위치는 어디일까? 바울이 에베소서 612절에서 언급한 에푸라니오이스(ἐπουρανίοις)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에 달려있다.

에푸라니오이스(ἐπουρανίοις) ’(on)를 가리키는 전치사 에피(πί)와 우라니오이스(ουρανίοις)의 합성어로, 형용사 복수형이다. 첫째, 히브리서 64절에서는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γευσαμένους τε τς δωρες τς πουρανίου)로 번역했는데, 여기서는 형용사 단수형이다. 은사(δωρεά)가 단수형 명사이기 때문이다. 에베소서 13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ἡμς ν πάσελογίπνευματικῇ ἐν τος πουρανίοις Χριστ)로 번역했는데, 여기서는 형용사 복수형이다. (ελογί)은 단수형이라도 모든(πάσ)이라는 말과 우리’(ἡμς)라는 복수대명사가 있어서 전체적인 뜻이 복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의 본문들에서는 에푸라니오이스(ἐπουρανίοις)가 하늘을 기원으로 하는 것, 즉 하늘에서 무엇인가 주어지는 것을 말할 때 사용했던 개념임을 알 수 있다. 둘째, 요한복음 312절에는 하늘의 일”(τὰ ἐπουράνια), 에베소서 120절에는 하늘에서(πουρανίοις)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로 번역되었는데, 여기서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사용되었다. 셋째, 히브리서 85(πουρανίων)923(πουράνια)은 제사법과 관련되는데,“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으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에베소서 612절은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τπνευματικτς πονηρίας ν τος πουρανίοις) 번역되었다. 여기서는 에푸라니오이스(ἐπουρανίοις)하늘에 속한 것들혹은하늘 위에 있는 것들을 말할 때 사용했던 개념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에베소서 310절은 중요한 본문이다. “να γνωρισθνν τας ρχας κατας ξουσίαις ν τος πουρανίοις διτς κκλησίας πολυποίκιλος σοφία τοθεοῦ.개역개정판은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로 번역했다. 에베소서 612절과 비교하여 보면,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늘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에푸라니오이스(ἐπουρανίοις)라는 형용사는 하늘과 관련된 모든 것들의 일반적이거나 특별한 상황을 나타내는 말로 보인다. 거처, 장소, 공간의 개념을 생각할 때, 마귀는하늘에 있는 존재인 것이다. 셋째 하늘은 하나님이 계시니, 둘째 하늘이나 셋째 하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로 마귀의 거처는 첫째 하늘임이 드러난다.

첫째, 창세기 1장의 창조기사를 보면, 하나님의 창조행위에 대해 보기에 좋았다!”는 말이 반복되는데, 그런데 그러한 표현이 둘째 날 창조행위에 대해서만 생락 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첫째 하늘 위의 부분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마귀의 영역과 공간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휴거를 말하는 대표적인 본문인 데살로니가전서 416-17절에 보면, 두 가지의 하늘 개념이 나온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ορανο)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έρα)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주께서 하늘로부터 공중으로 강림하신다는 뜻이다. 이때 하늘은 단수형 하늘 우라노스(ορανός)가 사용되었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3장에서 말씀하신 하늘을 말한다. 그리고 공중은 아에르(ήρ)가 사용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가장 먼저 공중으로 강림하신다. 그때에 성도들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이른바 휴거(the Rapture)가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주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인데, 하늘로부터(πορανο)에서 하늘은 셋째 하늘을 말하는 것이며, 휴거되어진 성도들은 첫째 하늘의 상층부인 공중(ήρ)에서 주를 영접할 것이다. 한편,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실 때, 마귀가 천하만국(πάσας τς βασιλείας τοκόσμου)과 그 영광을보여주며 미혹하였다. 여기서 사용된 말은 코스모스(κόσμος)인데, universe로 번역하는 것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본래 헬라어 코스모스(κόσμος)는 질서와 조화를 가진 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코스모스는 이미 더렵혀졌고 깨뜨려졌다.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지어 세상에 죄와 사망이 들어왔고(5:12), 아담의 범죄로 마귀가 공중의 권세를 잡았기 때문이다(2:2). 사람에게 주어진 세상 통치의 권세가 공중의 권세를 잡은 마귀에게 속하게 되었다. 결국 이 세상, 처음 하늘과 땅은 마지막 날에 불에 타 없어질 것이다(벧후 3:12, cf., 21:1). 마귀는 첫째 하늘 위에 있다. 즉 인간들의 거처하는 공간인 땅에 악 영향을 줄 수 있는 첫째 하늘 상층부에 거처하고 있는 것이다.

 

정리해보자. 하나님은 하늘(heaven)에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른 하늘들(the heavens)을 만드셨다. 즉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다른 하늘들을 지으신 것이다. 하늘에다가 하늘들을 지으신 것이다. 창세기 11절의 하나님이 지으신 하샤마임, 그 하늘들은 첫째 하늘(sky)과 둘째 하늘(Univesr)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모든 창조 사역 가운데 단 하루의 사역만 빼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러나 오직하늘 궁창을 지은 둘째 날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공중의 권세를 가진 마귀가 있기 때문일 것이고, 하늘(sky)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악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째, 둘째, 셋째라는 서수는 사람이 보는 관점에서 붙여진 것인데, 사람은 가장먼저 하늘(sky)을 본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 하늘이 셋째 하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은 하늘이다. 첫째 하늘도 하늘이고, 둘째 하늘도 하늘이고, 셋째 하늘도 하늘이다. 다 같은 공간의 개념이다. 그런데 그 곳에 누가,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첫째 하늘, 둘째 하늘, 셋째 하늘로 구분되어진다.

자 이제 가장 논란의 핵심이 되는 부분을 살펴보자.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두 가지 창조이야기

 

 "창세기 1-2장에 보면 두 가지의 창조 이야기가 나온다. 1:1-2:3, 2:4-25. 첫 번째 창조 이야기에 의하면, 인간은 맨 마지막에 창조되었다. 또한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창조되었다. 그리고 신()의 명칭은 하나님(אֱלֹהִים)으로 나타난다. 두 번째 창조 이야기에 의하면, 남자의 갈빗대 하나로 여자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신()의 명칭은 여호와 하나님(יְהוָ֥ה אֱלֹהִ֖ים)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 창조이야기는 우주론적 관점을 보여주며, 두 번째 창조이야기는 인간론적 관점을 보여준다. 아담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그리고 여자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들은 어디에서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두 가지의 창조 이야기는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우주라는 광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주요관심사인 인간 창조에 대한 세밀한 부분으로 나아가고 있다. 신명(神名)의 변화는 이렇게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천지를 만드신 전능하신 분의 이름은 엘로힘으로 족하다. 첫 번째 창조 이야기는 전능하신 창조주가 초점으로, 그분의 광대한 창조를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두 번째 창조 이야기는 다르다. 두 번째 창조 이야기는 전능하신 창조주보다는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이 초점이 된다. 창세기 3장으로 넘어가면, 곧바로 인간의 불순종과 타락,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과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는 이야기가 뒤를 따른다. 무엇보다 원복음(Prot Evangelism)으로 알려진 창세기 315절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도외시하지 않고, 죄와 죽음의 문제를 일으킨 뱀을 심판하시겠다는 절대 권위자의 결정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창세기 2장에서부터 하나님이 구원자시라는 것을 사전에 보여주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두 번째 창조 이야기에 나오는 야웨 엘로힘이라는 명칭이 뜻하는 바임을 나는 확신한다." - 최봉석 목사(Choi, bong 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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