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온다.
쌀쌀한 3월보다
가끔씩 훈풍 같이 따스한 가슴을 열어보이는 4월
나는 4월에 시집을 왔고
결혼식 그날은 드물게 보는 쾌청한 날씨였건만
왜인지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결혼식 날은
40년이 넘어도 늘 춥고 흐린 날로만 기억된다.
나에게 결혼이란
유년의 불행에서 계속 이어지는 연결일 뿐
평생 어두운 장막 속에
보이는 게 없이 살았으니
결혼식 날이 유독 맑았던 기억이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육점집 결혼식은
소리 소문 없이 치러지고
그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제 각기 맡은 일을 할 뿐이다
아무개 딸이 머슴과 바람이 났다고
소문에 소문을 키우던 사람들도
결혼과 더불어 시시물물 입을 닫고
각자 제 할 일로 돌아갔다
그해 첫애를 임신했던 나는
하루에도 서너 번은 먹을 것을 들고
홀시어머니계신 집을 왔다 갔다 했는데
가게와 멀지는 않아도
원래 시집이라는 곳이 거리와 상관없이
가기 싫은 곳이라 ( 그 놈의 양장양장 늘어 놓는 잔소리 듣기 싫어..)
한번 나설 때 마다
도살장 가는 짐승모양 발걸음 떼기가 천근 같기만 했다
하필
내가 점심 보따리나
뭐 먹을 것을 들고 나서면
정육점 사위도 내 옆에서 같이 걷고 있을 때가 있는데
그 시간이
마침 도살장에 고기 잡아놓고
점심 먹으러 가는 시간이기도 하며
제 집이자 장인 집인
그 집이 우리 시집 맞은 편에 있기 때문이다
시절은
더운 여름이라
곁에서 걷은 남자에게서
역한 피 냄새와 누린내가 내게 전해지는데
도살장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겠지만
입덧이 심한 때이니
나에게만 역했나보다
지금도 냄새가 기억에 소물거린다
남자의 장인네 집
그 집은
참 요상하게 지어졌다
흡사 중국 부자들 집 입구처럼
높은 누각을 들고 있는 듯한 큰 대문이 항상 열려있고
안쪽엔 붉은 흙 마당이 넓다
그리고
넓은 마당 한 쪽으로는
기와 올린 집을 서너 채 지어 세를 줬는데
대문서부터 안마당까지
아이들 울음소리 여자들 싸우는 소리
드나드는 장사꾼 소리로 조용할 날 없는 집이 그 집이다
주인 집은
그들을 지나서
안쪽 화분방초와
잡초 우거진 쪽으로 가는 걸 봤는데
난
그예 안쪽까진 탐색을 못해보고 말았다
언젠가
대지라는 소설을 읽고
왕릉이
성안 황 부잣집에 색시 얻으러 가는 장면에 나오는
수 많은 대문과 대문을 읽으며 상상해보니
아렴풋이 그 정육점집이 떠 오르곤 했다
그녀
정육점집 딸은
시집을 갔어도 아비에게 얻어맞았다
초 가을 어느 날
장사에 쓸 고기 부위를 요리조리 설명하는 내 눈 앞에서
갑자기
“야이”쌍” “간나새끼”하는 소리와 함께
불같이 딸의 뺨을 후려치는데
영문 모르고 놀란 내가
무참해져 있건만
정작 그녀는
벌건 뺨을 문지르며
태연하게 고기 부위를 잘라 주고 돈을 받아 앞치마에 넣는다
화가 나면
장소 가리지 않고
제 식구 후려치던 아비란 그 인간
세 식구에서 하나가
더 불었지만
원래 있던 것을
가까이 끌어다 살게 된 것이라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아비의
딸 구박은 처녀 때보다
남자를 얻고부터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했다
달라진 것이 있긴 있다
사위 그 남자다
그는 빠른 시일에
빠르게 변해갔는데
장가들고 반년도 못되어
홀랑 탈피 한 나비같이
구름같이 훤~하게 때를 벗어 던진 남자
도살장일과
납품일 수금일을
다 해치운 오후 늦은 저녁이면
검은 선글라스에다
날 세운 바지 하늘색 남방으로 쫙 빼입고
반짝 빛나게 닦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거는 그를 볼 수있다
언제부터 남자는 누구에게든
고개를 치켜들고 쏘아보는 눈빛으로
당당히 마주본다.
지방 토박인
내 남편과 친구들은
그런 남자가 도무지 미워서 죽을 지경이지만
마땅히 쥐어박을 구실이 없어
그저 모이면 괜히 남자의 태생을 꺼내 씹어대기만 했다
일 년이 지났다
그녀의 배가 불러 온다
그 시절은
부락이 호시절을 구가하던 시기였다
거대한 시멘트 공장을 짓느라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먹는장사,
입는 장사,
재워주는 장사,
연애시켜주는 장사,
이런 장사
저런 장사로
지역사람부터
객지 장사치들까지 몰려들어
조용할 새 없던 시절이었다,
한 쪽에선
기를 쓰고 돈을 벌고
한편에선 기를 쓰고 번 돈을 몽땅
써 버리는 흥청거림이 난무하던 곳
먼지와 쓰레기만 쌓였던 황무지에
날아갈 듯
귀여운 기와 얹은 요정이 몇 개 들어서고
그 뒤쪽
하천이 흐르는 곳에도
조잡한 니나노 집들이 나란히 다닥다닥 들어서니
밤이면
요정 문 앞에 달랑거리는
청사초롱의 요염한 빛은
촌무지렁이들의
몸과 정서를 싸잡아 훌쳐내기에 한 치 부족함이 없으렷다
하천 근처의 니나노 집들은
또 그들 수완대로
수입이 적은 사내들의 발길을
붙잡기에 총력을 기울이니
요정이든 니나노집이든
대폿집조차
성업을 누리는 데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내 남편이란 작자가
자신의 장점과 재주를 발견한 시기도 이 시기였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나나앤 작성시간 18.03.07 말로 해도 잼나게 얘기를 하시려나. 수 십 년 전 이야기를 단 숨에 읽기가 아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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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늘 호수 작성시간 18.03.07 다음이 궁금해집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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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가시장미 작성시간 18.03.08 설마 고 데릴사위가 눈을 딴데로 돌리지는 않어겠지
답답해라 다음편이
요즘에 왕성한 활동을 하는 아우님 보니
넘 좋타
다시 활기찬 아우님이기에
봄이 오니깐 아우님도 기지개 피고 건강하게 알어징 ㅎ -
작성자또르르 작성시간 18.03.08 데릴사위의 행보가 미리 짐작이 됩니다 ㅎ
사람은 환경에 따라
잘도 변하는 존재들 이지요
너나.. 나나..할것없이 -
작성자위양지농원 작성시간 18.03.08 점점 궁금증이 더해집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