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 파업의 나비효과
— 동리목월문예대학 강의에서
코레일이 파업 중이다.
9월 16일 동리목월문예대학 강의를 위해 서울역에서 신경주까지
강의가 끝나고 되돌아올 신경주역에서 서울역까지 KTX 표를 예매했는데
파업으로 인해 운행불가라고, 표를 교환하거나 환불하란 메시지가 왔다.
급히 가능한 기차를 알아보니 없다.
16일 아침 고속버스도 없다.
아, 어쩌란 말이냐.
그렇다고 코레일 파업을 핑계로 내겨가지 않을 수도 없는 일.
어쩔 수 없이 차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16일 새벽 1시에 출발을 했다.
어차피 올빼미인 것, 어설프게 자고 일어나 운전하고 가기에는 졸릴 것 같기에
아예 새벽에 운전하고 내려가 차에서 자기로 했다.
이번만이 아니라 역마살 낀 내 삶, 훌쩍 떠나서는 종종 그렇게 했으니까.
새벽 1시의 고속도로, 달릴 만하다.
5시 30분에 동리목월문예대학 뜨락에 도착.
가는 동안 곳곳에 비가 내렸는데 마침 신경주 불국사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주차하고는 뒷문 삐끔 열어두고 조수석에 누워 잠을 청했다.
머리만 대면 잘 수 있는 내 잠버릇 - 10시 반까지 아주 맛나게 자고 깼다.
실은 삐끔 열어둔 창 틈으로 빗방울이 들이쳐 얼굴을 때렸기 때문이다.
불국사 앞 상가로 이동,
<어탕>
즐겨먹는 <순두부백반>
냉면 그릇 달라하여 비벼서 깔끔하게 비웠다.
다시 동리목월문학관으로.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화단.
아뿔싸.
그 무성하던 고들빼기, 민들레, 독일붓꽃, 둥글레, 작약, 은방울꽃, 인디언국화, 초롱꽃~~~
어쩌면 저리 말끔하게(?) 뽑아버렸을까.
봄꽃, 여름꽃을 뽑았으면 가을꽃이라도 씨를 뿌렸는지~~~
하긴 화단을 관리하는 사람 눈에는 꽃이 진 대부분의 풀들은 잡초로 보였을 테니까.
문학관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오늘도 강의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동리, 박목월 두 분 선생님께 목례하고.
1시에 시작한 소설창작반 강의가 끝나고 휴식 시간
부실부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니코틴 보충하려 뒷곁으로 갔다.
담배보다 먼저 눈에 드는 빨간 열매들.
<목련> 열매들이다.
이 녀석들은 생긴 게 일정하지 않고 모두 제각각이다.
어찌 저런 모양들을 만들어낼꼬.
언제 <목련> 열매의 생김새를 공부해 봐야겠다.
어떤 조건이 저렇게 서로 다른 모양을 만들어내는지.
빗방울에 젖은 <쥐고리망초>가 앙증맞다.
3시 30분에 소설크루즈반 강의.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반장이 일어난다.
나는 새삼스레 차렷 경례를 하려나 했더니 봉투를 내민다.
추석 선물이란다.
멀리서 내려와 강의를 한다고 이런 인사를 챙긴다.
수강생들의 그런 성의가 참 고맙다.
수강생들이 제출한 2학기 과제 - 실습작품들에 대한 합평과 토론
그리고 나의 종합강의.
오늘은 특히 소설이 아닌 것과 소설인 것의 차이를 설명했다.
그나마 열심히 쓰고 과제를 제출한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어느 작품이건 수준의 높고 낮음을 떠나 기대를 한다.
작품을 제출했다는 것이 바로 반은 성공한 것이니까.
합평을 통해 오고간 고급독자(수강생들)의 감상을 참작하여
얼마나 잘 수정하여 작품을 완성하냐는 각자의 몫이다.
강의가 끝나고, 사무실에 들러 볼 일 보고.
수강생 몇몇과 저녁을 먹는다.
자주 가던 '탑마루'의 한정식.
이집 미역국과 된장찌개가 내 입에는 일품이다.
다시 차 한 잔 하자며 찾아간 곳 - 카페 'Road 100'이다.
예전 같으면 환했을 시각이지만 9월은 이렇게 날이 저물었다.
나야 늘 아이스 카페라떼.
내 취향을 잘 아는 수강생이 양념까지 쳐서 가져왔다.
합평 시간에 못다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함께 세상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우연히 친일 문제와 함께 이승만, 박정희 그리고 홍범도 장군 이야기가 나왔다.
조국 근대화 작업이란 박정희의 5.16 구테다 순수한 초심이
1.21 이후 어떻게 변질되어 유신과 독재로 나아갔는지.
일부에서는 국부라 칭송하는 이승만이지만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란 명예가 있음에도
임시정부에서 왜 탄핵을 당해 쫓겨났으며, 왜 4.19가 일어나 쫓겨나며 그 욕을 먹게 되었는지.
그리고 홍범도 장군.
우리 근대사를 되집어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이 지금의 빨갱이와 어떻게 다른지
장군이 우리 독립운동사에 어떤 위치에 있는지.
항일 독립투쟁사를 관심 있게 공부해 온 내 생각을 침 튀겨가며 예기했다.
이번에 이 정부에서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잘못 건드렸다는 생각을 시작하여
괜스레 나 혼자 흥분을 하여 열변(?)을 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찌 홍범도 장군을 빨갱이란 미명으로 흉상을 철거할 생각을 했는지
분명 친일 잔당들의 짓거리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내 할아버지께서 애국지사로 돌아가셔서가 아니라
친일문제 만큼은 자신 있게, 때로는 흥분하여 토로한다.
지극히 내 주관적일지 모르지만 역사를 제대로 알면 그런 생각을 안할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지난 번에 찍지 못했던 두 수강생과 찰칵.
박주옥
채선옥
두 분의 공통점은 대학교수라는 것.
전공이 소설창작은 아니지만 현직 혹은 퇴직한 대학교수가
소설창작 배우겠다고 수강생으로 등록하고 함께 공부한다는 것.
학교에 가면 제자들로부터 '교수님'소리 듣는 분들이
내 강좌에 수강생으로 참여하여 함께 공부하려는 그 자세가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 마음가짐과 자세만으로도 박수받아 마땅하다.
그렇기에 이런 분들을 만나면 참 뿌듯하다.
내가 뭘 가르치겠는가 - 그저 조금 먼저 소설가가 된 사람으로서 함께 소설 이야기 나눌 수 있기에 그렇다.
차 한 잔 놓고 뒷풀이가 길어져 8시가 넘은 시각에 헤어져 출발했다.
고속도로는 뻥 뚫려 있고.
속리산휴게소에 들렀을 때 그 어둠 속에서도 <달맞이꽃>이 웃고 있었다.
하긴 밤에 피는 꽃이니까.
휴게소에는 기름 넣으러 들렸고 나는 주로 졸음쉼터에 가서 쉰다.
잠깐 눈도 붙이고 니코틴 보충하기에 딱 좋으니까.
속리산 졸음쉼터에서 차 뒤에 서서 손수찍기로 찰칵.
피곤한 얼굴은 아니다.
그러니 또 쌩 달려왔지.
요즘 승용차들은 예전에 비해 성능이 뛰어나다.
별로 밟지 않은 것 같은데 잠깐 다른 생각하다 보면 금방 150이다.
단속지점이라는 네비양의 안내에 그 때마다 브레이크를 잘 밟았는데
속도 위반 딱지 날아오지 않을지 모르겠다.
강의하는 시간은 늘 행복하다.
그런데,
그런데,
경주까지 운전하고 내려갔다 운전해서 올라오는 일은 정말로 힘들다.
나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넘의 코레일 파업 때문이다.
코레일 노동자들의 파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파업이 나로 하여금 왕복 여덟시간 운전을 하게 했다.
— 뒤늦게 쓴 9월 16일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