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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건거치름하게 먹는다.

작성자곡즉전|작성시간24.05.08|조회수262 목록 댓글 28

난 어릴 적 두 집을 번갈아 오가며 살았다. 바닷가 우리 집과 산골짜기 할아버지 댁이었다.
양가는 식생활이 판이했다. 주식이 꽁보리밥인 것은 매일반이었으나 부식은 우리 집 반찬이 해산물 위주였던데 반해 할아버지 댁은 농산물인 채소가 주였다.

한번은 푸성귀에 질린 내가 보리밥에 고추장만 넣고 비벼 먹는 걸 보고 큰 어머님께서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 건개( 간장, 된장, 고추장)만으로 밥을 먹는 버릇은 아주 나쁘다. 여기 콩나물 조차, 가지나물 조차, 열무김치 조차, 이것저것 다 집어놓고 쓱쓱 비벼 먹어야 배도 부르고 속도 편한 법이다. 자고로 밥은 꼭 푸성귀와 함께 건거치름하게 먹어야 된다. 알았재? ”

*** 밥은 반드시 채소를 곁들여 건거치름하게 먹는다.***

난 살면서 밥상머리에 앉을 때마다 이 말씀을 따르도록 노력하였다. 나를 친아들처럼 아껴주셨던 고마우신
큰 어머님의 당부였기에 늘 그뜻을 되새겼다.
매우 촌스럽긴하지만 매끼 건거치름하게 먹는 식습관 때문에 소화기 계통의 병고 없이 무사히 노년에 이르렀지 않나싶다.

오늘 아침, 점심은 쌀밥과 호박 나물, 가지찜, 콩나물, 오이 무침, 파김치 등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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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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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곡즉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09 완전 황제가 즐길 식탁입니다.
    차려진 음식들이 풍성하고 싱싱합니다.
    숟가락 하나 들고 한자리 걸쳤으면 좋겠습니다.
  • 작성자운선 | 작성시간 24.05.08 제가 좋아하는 메뉴입니다 말씀 하신대로 그렇게 먹어야 속이 좋아하는 거 같습니다 ㅎ
  • 답댓글 작성자곡즉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09 의당 고기도 먹어야겠지만
    채소 위주의 식탁이 사뭇 긍정적입니다.
  • 작성자채스 | 작성시간 24.05.09 반가운 곡즉전님
    오랜만에 글로서 곡님을 뵙습니다

    건거치름이란 말이 사전에는 없어도
    먹는 음식에만국한되는 건 아닌 듯 해서
    건거치름이라는 말을 넣어 봤습니다

    우리 건거치름하게 만날까
    만나서 건거치름하게  한 잔 할까

    결국 말과 글은 쓰기 나름이지만
    색다른 맛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건거치름이란
    거칠지만 건더기가 있어야
    위장 운동에도 좋다는 뜻이 아닐까요~^^
  • 답댓글 작성자곡즉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09 말의 뜻을 국어사전보다 더 명쾌하게 정리해주셨습니다.
    매번 식사때마다 저는 이 단어가 입속에 맴돕니다.
    생활도 버라이어티하게! 건건치름하게! 하면 좋을 것입니다.
    항상 보고픈 존경하는 채스님!
    좋은 날 뵙게 되기를 학수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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