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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epil, 미역국

작성자함박산2|작성시간24.05.28|조회수515 목록 댓글 16


-이미 소를 잃었더라도 외양간이 고쳐져야 하는것은 남아있는,크고 맑은 눈의 송아지를 지켜야 하는 까닭이다-

회식한번 하자했더니 사장님은 처가집에 장인어른 제사모시러 간단다. 경리 아줌마도 따라나선다. 친정아버지 제사란다. 그거 잘됐다 싶어 직원들끼리 회식했다.회식자리에 사장이끼면 술맛이없다. 그냥 회사 가까운곳 어디 횟집없나 싶었는데 박가는 자기집 앞에 참 좋은 횟집이 있으니 그리로가자 바락 바락 우겼다. 몇달전 부터 자기집 앞에서 회식한번 하는것이 박가의 숙원이었지만 그의 숙원을 이루지 못했던것은 내가 부산동네 나들이를 싫어했던 이유가 크다.하지만 오늘 숙원한번 풀어주자 싶어 부산 하고도 북구, 똥꿀동네 모라로 향했다.하늘위로 이리저리 고가도로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그런 똥꿀동내, 맘에 안들었지만 꾹 참았다.이나이쯤되면 웬간한 짜증빨 정도는 웃고 넘길줄 알아야 뭇 인간들이 따지고 들기 좋아하는 인격의 완성도라 카등가? 머...그딴것들을 대충 얼버무릴수 있다. 속에서 천불이 날지라도...

소위 서민형 횟집이다. 자리잡고 앉으려는데 벽에붙은 문구하나가 내 눈길을 끈다. "당신이 담배를 끊으면 모두가 웃습니다" 그래? 내가 담배를 끊는순간 모든이의 웃음거리가 된단 말이지? 충격적이다. 난 그런줄도 모르고 담배를 끊으려 한적도 있었다. 정말이지 끔찍했다. 여지것은 습관적으로 피워댔지만 지금부터는 마음을 다잡고 안간힘을 다해 피워야 할일이다. 뭇 인간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어서야 쓰것는가? 외롭게 늙기도 서러워 커늘...

소위 찌께다시라는 주전부리 안주가 나왔는데 미역국도 따라나왔다.생선을 달여서 끓인 미역국이 잘우러나서 깊은맛이 있기는 했는데 미역이 영 아니다. 미역국의 미역은 윤기가 촬촬 흐르며 부드러워서 씹힘이 없어야 하는데 이노무 미역은 뻣뻣해서 다시마같다. 주방장이 어떤 인물일까?미역 선택에 조금만 신경썼으면 완벽했을일을 이렇게 망쳐놓다니...화장실 가는길에 주방을 힐끔보니 울룩뿔룩 심줄이 드러난 팔뚝의, 김일 선수 닮은 주방장 아저씨가 넓적한 횟칼로 생선 대가리를 족이고 있었다. 언능 눈길을 돌려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서 잠깐드는 생각이 내가 너무 비겁하구나! 남자가 돼 가지고서는 누군가가 목에 정지칼을 들이대더라도 할말은 해야제...
화장실 다녀오며 김일아저씨 닮은 주방장이랑 눈을 마주쳤다. 할말은 해야제 싶으면서도 엉뚱한말이 튀어나왔다. "주방장님 미역국 제대로 우러나서 구수합디더" 하며 '빵끗' 웃어주기까지 했다. 그랬더니 거기다 한술더떠서 상을치우던 쥔아저씨도 한마디 거든다."하모예 우리주방장님 미역국 잘끼리가 시장님 상도 받았다 아입니꺼" 멱국 잘끓였다구 시장님이 상을줘? 산후조리원 원장상이라면 또 모르까. 말하기싫어서 대꾸안했다. 문득 마음깊은 곳에서 두번다신 이집에 안와도 되겠다는 모호한 기쁨이 슬금슬금 샘솟았다. 그러고보면 기쁨도 참 여러질이다.


김일 아저씨는 생긴것과는 다르게 섬세한 칼질을 해왔다. 보기좋은 떡이 맛도 좋다지 않던가. 횟거리란것은 날음식이라 특히 더 그렇다.맞은편에 앉있는 박가는 회를 한웅큼 상추에 싸서는 우물우물 씹더니 울먹이기까지한다. 제법 식신의 내공이 엿보인다 싶었는데 마늘을 잘못씹었단다. 그럼 그렇지...맛나게 먹었다. 매운탕에 맨밥도먹고 접시에 남은 횟거리 양푼이에 비벼서 한숫갈씩 떠먹기도했다. 배부르게 기분좋게 먹었지만 우리공장 회식에 2차는없다. 구성원의 오할이 양노원이라 모다 체력이 딸려서그렇다. 깔끔하게 째지는거다.

가끔은 이런생각이든다. 현관문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면 누군가가 문을따준다. 마빡에 내천자를 그린, 잠옷바람의 퍽 퍼진 여인네가 음식물 찌꺼기 통을 들이밀면서 "이거좀 버리고 들어오소"라 해준다면...지금 쎄떼로 문을따고 홀로 들어서는 이순간보다 더 행복할까?

홀로들어선 집은 날 반기지 않는다. 다시 나가서 한잔 더 하고 들어올까?귀찮다. 간단하게 샤워를한다. 난 샤워를 하면서 물을 최대한 아껴쓴다 물론 시간도 아낀다. 돌이켜보건데 국민학교 시절에 바른생활 이라는 교과과목이 있었는데 나는 그과목의 성적이 유난히 우수했던걸로 기억한다. 청소를 해볼까?아니다, 이시간에 청소를하면 이웃에게 소음의 피해를 주는것이다. 바른생활의 성적이 우수했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다.

방에 들어서니 뭔 포장상자가 있다. 메모를 읽어보니 이렇다. "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어? 오늘이 내생일? 하이구라! 고맙기도 혀라! 그래서 케잌하나 달랑 남기고 네녀석은 콧빼기도 안보인단 말이지?그냥 돈들여 케잌하나 남기면 내가 감동받아 울꺼같냐? 이 싸가지 없는놈아!하다가도 문득...그렇구나 60억 인류중에 내생일 기억해주는 인간이 너 하나뿐이구나 싶어 약간은 울컥 했다. 어쨌건 미역국은 먹은샘이군...생각해보니 녀석에게 미안한일이 하나 있긴하다. 연초에 녀석이 수능치고나서 알바라는걸 한답시고 낮이고 밤이고 싸돌아 다니길레 벼루다가 어느날밤 밖에 놀고있는녀석 전화로 불러다가는 야단을 쳤다. 야단을쳐도 그냥쳤나 녀석에게 상처가 될만한 말들만 골라가며 비아냥 거리기까지 해가며 잔인한 말들만 골라가며 꾸짖었더니 녀석은 울어버렸다 아주 섧게...나는 흡족했다.녀석이 아버지의 수준높은 훈계에 감읍을 하는구나 싶어서..

새벽에 잠에서 잠깐 깼는데 문득 내 전화호통을 듣고 부랴부랴 들어서던 녀석의 손에들려있던 작은 상자가 맘에 걸렸다.아뿔싸~! 녀석의 생일 케잌이었구나...그러고보니 1월 6일 녀석의 생일이었고 가족들이 몰라주던 생일을 친구들에게 축하받고 있는중에 무식한 아버지의 전화 호통을 받고 부랴부랴 집으로 들어서서는 온갖 험한말을 다 들어가며 말없이 울었던것이다. 순간 여러생각들이 병렬적으로 뒤죽박죽 밀려들기 시작했다.어째서 녀석은 나에게 온갖 모진소리를 들으면서도 자기 생일이어서 친구들 축하받고 있었노라는 변명 한마디 하지 않았을까, 철이 들어버린 것일까? 어린과일이 상처를 입으면 서둘러 익어버린다던데...녀석의 눈에비친 애비의 모습은 어떤모습일까...그때의 심정이 어땠을까...심봉사를 의붓애비로 맞아들인 뺑덕이의 분노가 아니었을까?아침에 녀석에게 '어제 아버지가 무심했구나. 생일인지도 모르고,미안하다' 했더니 녀석은 또 눈시울을 붉힌다. 녀석은 덩치만 컷지 아직도 내아들임이 분명하구나 싶었다.



누군가 날위해 노래한곡 불러줬음 좋겠다.연시리 이모 노래를...



나는 유혹의 밤거리를 헤메다녔다오.

포장된 거짓 진실에 눈이 멀었다오.

가로막힌 벽앞에서 울음 울었다오.

모두떠난 거리에서 노래 불렀다오......



아들 생일날 미역국 끓여준적 없다.그러고도 난 미역국 먹었다. 이유가 뭐든...

그러고도 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들들아! 못난 애비 둔것도 네 팔자란다. 어쩔수 없구나. 이 애비가 너에게 해줄수있는건 간절한 기도 뿐이란다...

※ 묵은지 세편 올린다는 약속 했었고,
약속 지켰습니다 혹자는 또 머랄지 모르겠습니다 멀 궂이...
철지난 글들이라 내맘도 민망함이 가득 합니다만...
암튼 요즘 난, 나와 무척 친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낫살 먹고나니 격정이 잦아들고 고요해 지는날들이 많아집니다 이게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나와 친하게 지낸다는건 그리 나쁜현상은 아니지 싶습니다 화사하게 살고지븐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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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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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함박산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29 그렇습니다 흐트러진
    삶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끼워맞춰 보며 생각 해보고 끌적여 보는것이 나같은 범부들이 해볼수있는 생활수기 이며 신변잡기 쯤 되겠지요
    격식도 없고 형식도 없는 잡글을 올리면서도 조금은 조심 스러운것은, 혹여라도 읽어주시는 분들이 식상해 하지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음식 만들어먹는 얘기
    산행했던 얘기
    아들 얘기...
    등등이 한두번이지 여러번이면 당연히 식상하지요
    문득,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글 보다는 글쓴 사람이 친근하면 좋은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
    ㅎㅎㅎ
    일기장에나 쓸, 비슷한 페턴의 글을 자주 올리기는 참 민망한 일입니다
    사사롭더라도 특색있는 시각이 있는 생활의 발견이 있다면 기록해 올리겠습니다
    이곳 삶방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유일한 창 이니까요
    남으로 난 창이면 더없이 좋겠지요 따사로운 햇살 가득한 긍정의 창

  • 작성자리진 | 작성시간 24.05.29 함박산님의 글은 읽는 재미가 있답니다. 늘 본인을 낮추어도 또 비틀어도 그 진심은 오롯이 보여지지요. 그냥 변방에 묻혀있기엔 조금 아깝기도 한 것 같습니다. 홀로 키운 두 아드님 잘 키우신 것 같군요. 심성도 고운 듯 하고요. 아들들이라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딸은 보통 엄마 편이기도 하지요. ㅎ 암튼 이젠 건강에 조금 더 신경 쓰시고 삼행시방만 계시지 마시고 삶의 방에서도 함박산님의 글맛을 볼 수 있게 자주 들리세요.
  • 답댓글 작성자함박산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29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 발치에서 힐끗 거리며 바라보고 좋아하는 리진님이 이런 칭찬의 글 주시니 더없이 기쁩니다
    오늘 하루도 즐겁고 행복 하시길요~^
    ㅋㅋㅋ
  • 작성자김포인 | 작성시간 24.05.29 회식자리에..
    마치 제가 함께하고 있는 듯 생동감이 넘쳐 흐릅니다.

    다시마 같은 미역일지라도..
    맛나게 먹었다는 덕담을 건네시는 너그러움이 있으시니..
    꼰대 소리는 안 들어도 되겠습니다.

    평범한 일상이라도..
    자식에 대한 사랑과 애처로움은 우리 모두의 숙제 같은 것이겠지요.
  • 답댓글 작성자함박산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29 자식들에게 해줄게 아무것도 남아있질 않습니다 민폐나 안끼치길 소망 합니다
    아마도 난 너무일찍 사회와 격리된게 아닐까 싶습니다 번잡한 미로 속에서도 옅은 빛이 비춰지는 개구멍이 있었으나 난 포기 했습니다
    구차해지기 싫어하는 나를 위해서
    어찌살든 녀석들은 살아갈것이고, 나 또한 삐실삐실 살다 가겠지요
    좋을것도 나쁠것도 없는 시간때 입니다
    금빛 일몰을 관조하며 고개 떨구는 해바라기처럼 순응하며 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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