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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원주를 지나며

작성자베리꽃|작성시간24.07.26|조회수339 목록 댓글 40

벌들이 힘 센 줄 알긴 알았지만
전 국민이 벌벌 떠는 길고 지루한
장마까지 이겨먹고 감로꿀을 만들어낼 줄 몰랐다.

꿀이 될 변변한 꽃 하나 없는 시기에
그래도 산골에서 고생하고 있는
주인에게 충성한다고
이슬이라도 잔뜩 물어다 놓은 것이다.

재료가 이슬이라 소주 참이슬처럼 맑고 투명한 색인 줄 알았는데
먹물꿀이나 연탄꿀이라 부르고 싶을 만큼 새까맣다.

마지막 꿀들을 시집보내고 나니
집안이 텅 빈 듯 시원섭섭하다.

꿀판 돈은 보조원 계좌로 들어오고
쪼매 나오는 연금들먹이니
할 말없는 꿀이장은 올해도 유노동 무임금이다.

농사라는 게 농한기도 있고
농번기도 있으련만
꿀농사만은 365일 작업개시다 보니

꿀나가자 마자 벌공격하는 말벌잡으랴.
겨울먹이 준비하랴.
가출한 여왕벌 구해 오랴.

어디 그것 뿐이겠는가
옥수수 지키려고 밤마다 북치고
장구쳐야지.
담 주에 들이닥칠 손녀들 농촌체험 시켜야지.
전쟁선포한 잡풀들과 맞서 싸워야지.

너무 빨리 자라는 고구마잎들.
호시탐탐 땅콩을 노리는 두더쥐들.
복숭아 나눠먹자는 까악까악 까마귀들.
소나기 한 차례 쏟아져도
우수수 떨어지는 배들.

왜 귀농은 해 가지고
남들 안 쓰는 고생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사는지.

"이제 그만하고 도시로 갑시다"

소귀에 경을 읽어 주는 게 빠르겠으니
목마른 사람이 샘판다고
꿀판 돈 주머니에 넣고
청량리행 기차에 오른다.

친구를 만나 분위기좋은 찻집에도 가고
치즈듬뿍 넣은 돈가스도 먹고
모처럼 차도녀흉내좀 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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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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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베리꽃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7.26 요즘 눈씻고 찾아도
    야매하는 곳 없어요.
    대신 파마를 안 하지요.ㅎ
  • 작성자김지원. | 작성시간 24.07.26 에휴 고생많으셨어요
    꿀이장님은 더 마음고생 몸고생 하셨을테구요,,,

    불가에서
    각 각의 농사 지으시는 분들께 감사의 기도 올릴 때
    가슴이 뭉클해지고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이지요
    들꽃에도 감사하고,,,
    선한영향력을 펼치시니
    그 덕이 손녀들한테 이어지지 않을까 하네요

    멋진 차도녀도 되어보시구요,,,ㅎㅎ
  • 답댓글 작성자베리꽃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7.27 학교와 학원이 동시에 방학하는 기간에 시골 외가로 놀러온다네요.
    역시 외가는 시골이어야 제 맛이 나겠지요.
    차도녀 중에서 김지원님이 최고.ㅎ
  • 작성자달항아리 | 작성시간 24.07.27 저는 양봉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양봉 농가의 일상이 그리 고되더라고요.
    노동 강도도 높고 사시 사철 일이 계속된다 하니..
    꿀이장님의 힘든 일상이 고생스럽게 보이지만
    그 일이 좋다하시고 계속 하시겠다는 신념이 강하시니 그저 응원해드릴 뿐입니다.
    저는 금년에 베리님표 꿀에다가 여성방에서 샤론님이 소개하신 마늘 재어서 꿀마늘 두 병 만들어놓고 참 뿌듯합니다. ^^
  • 답댓글 작성자베리꽃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7.27 꿀마늘을 오래 두면
    쫄깃쫄깃 꿀마늘이 되지요.
    저도 두어 병 있어요.
    겨울엔 벌통에 보일러도 깔아주고
    두꺼운 담요도 덮어준답니다.
    물도 주고 먹어도 주고.
    그러니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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