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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삼 모녀의 일기

작성자베리꽃|작성시간26.01.06|조회수437 목록 댓글 40

1. 딸과 손녀 사이에서 우째야 할지

무임금 노동도 이만하면 상노동이건만, 이마저도 일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쫓겨날 판이다. 나에게 씌워진 죄목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딸아이의 엄명을 어긴 '배부른 죄'다. 제 엄마는 애들 건강이며 몸매를 생각해서 밥그릇을 엄격히 단속하는데, 할미 마음이 어디 그런가. 딸의 당부는 헌신짝처럼 던져두고 "더 먹어라, 많이 먹어라" 하며 평소의 두 배를 먹여댔다. 돌보미 임기가 끝날 때쯤이면 손녀들 얼굴이 보름달 같은 찐빵이 될 게 불 보듯 뻔하니 딸의 눈총이 무섭긴 하다. 그래도 복스럽게 오물거리는 그 입을 보고 있자면 숟가락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두 번째 죄목은 좀 더 묵직하다. 공부 잘하던 큰손녀 다은이가 난데없이 대학 대신 할배의 ‘청풍명월 꿀이장네 농장’을 물려받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딸은 분명 내가 손녀 귀에 대고 농장 자랑을 얼마나 늘어놓았기에 애가 영농후계자가 되겠다고 나섰느냐며 화살을 내게 돌릴 게 분명하다. 정작 나도 손녀의 야무진 계획을 듣고 입이 떡 벌어졌는데 말이다.

다은이의 설계는 치밀했다. 할아버지의 농장을 주말농장으로 탈바꿈하고, 집을 더 지어 도시 사람들이 쉬어가는 쉼터를 만들겠단다. 직접 농산물을 수확해 식사하게 하고 개울에서 다슬기도 잡아서 대접하겠단다. 나중에 유명해져서 방송 인터뷰라도 하면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젊은 나이에 산골로 왔다"고 멋지게 말하겠다며 눈을 반짝이는데, 그 기특하고 당돌한 포부를 듣고 있자니 속이 복잡해진다.

실컷 도와주고도 딸에게 대역죄인이 될 판이라 난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추위에 학원을 다섯 개씩 도는 손녀가 안쓰럽기 그지없다. 어차피 산골 아가씨가 될 거라면 저 고생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가도, 아이의 앞날을 생각하면 "제발 그 꿈 다시 생각해 보면 안 되겠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2. 딸(엄마)의 일기: "친정엄마는 대체 왜 그러실까?"

오늘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한숨부터 나왔다. 다은이 얼굴이 일주일 사이에 정말 찐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애들 건강 생각해서 그렇게 당부했건만, 엄마는 오늘도 "애가 복스럽게 먹는데 어떻게 굶기냐"며 내 속을 뒤집어 놓으신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밥이 아니었다. 다은이가 갑자기 대학을 안 가고 아빠 농장을 물려받아 '영농후계자'가 되겠단다.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공부도 곧잘 하던 애가 갑자기 웬 산골 농장주?

보나 마나 엄마가 다은이 옆에서 농장 자랑을 늘어놓으신 게 분명하다. 학원 다섯 개를 보내며 애 앞날을 설계하고 있는 내 노력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엄마한테 화를 좀 냈더니 서운해하시는 눈치라 마음은 안 좋지만, 이번 주말에는 정말 진지하게 담판을 지어야겠다. 이대로 가다간 애 인생도, 내 계획도 다 엉망이 될 것 같다.



3. 손녀 다은이의 일기: "나의 완벽한 '꿀이장네' 프로젝트"

오늘 할머니가 주시는 밥은 유난히 더 맛있었다. 엄마 눈치가 살짝 보였지만, 할머니의 "많이 먹어야 힘내서 공부하지"라는 속삭임에 세 그릇이나 비웠다.

드디어 오늘 나의 원대한 계획을 공표했다. 바로 할아버지의 '청풍명월 꿀이장네 농장'을 물려받는 것! 삭막한 도시에서 덜덜 떨며 학원을 다섯 개씩 다니는 건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다. 할아버지 농장을 멋진 팜스테이로 만들어서, 도시 사람들이 힐링하러 오는 핫플레이스로 키울 거다.

방송국에서 인터뷰 오면 할아버지 성함을 따서 "할아버지의 전통을 잇는 젊은 농부"라고 소개해야지. 할머니는 걱정스러운 눈치고 엄마는 뒷목을 잡으셨지만, 내 결심은 확고하다. 찐빵 같은 내 볼살이 건강한 농촌 생활의 상징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일단 내일 학원 가기 싫은 마음부터 할아버지한테 슬쩍 말씀드려 봐야겠다.

(이미지 사진은 댓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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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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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베리꽃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1.07 이래저래 산골을 벗어나기는 글렀는 거 같아요.ㅎ
    손녀가 양봉농사 한다고 할까봐 겁나요.
  • 작성자풍 경 | 작성시간 26.01.07 다은이는 워낙 영특해서
    장래가 기대됩니다요. ㅎ
    여튼 야무지고 똑소리나는 아이에요.
    베리꽃님의 우수한 유전자가
    손녀까지 대물림하는듯요~
  • 답댓글 작성자베리꽃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1.08 과자도 안 사드렸는데
    이렇게 과한?
    풍경님도 자손만대 부귀영화를 기원할게요.
  • 작성자둥근해 | 작성시간 26.01.08 똑소리나는 손녀
    착하기까지

    영농후계자가 되든ᆢ꿈이 바뀌어
    다른일을 하더라도
    걱정 뚝 하셔도 될것같아요
    손녀 넘 사랑스럽고이뻐요
  • 답댓글 작성자베리꽃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1.08 땅을 팔아 노후대책 하기는 글렀어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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