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삶의 이야기

표정 하나

작성자베리꽃|작성시간26.03.21|조회수328 목록 댓글 22

전철 승강장, 내가 늘 서서 타는 그 자리 입구에 휠체어를 탄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신 듯 할머니는 휠체어를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천천히 돌리고 계셨다.

하필 그 자리가 내가 지나가야 하는 길목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비켜 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내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할머니도 오른쪽으로 돌고, 왼쪽으로 가면 또 그쪽으로 방향을 바꾸셨다. 몇 번이나 그렇게 엇갈렸다. 마치 서로의 길을 잠깐씩 막아서는 것처럼.

나는 잠깐 멈춘 뒤 속도를 조금 바꿔 조심스럽게 한쪽으로 비껴 지나갔다.

그 모습을 옆에 서 있던 할아버지가 보고 계셨다.

"가만히 좀 있지, 왜 자꾸 움직여. 사람들이 지나가질 못하잖아."

말이 끝나자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셨다. 할아버지의 시선도 함께 내 얼굴로 왔다.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표정을 가만히 풀었다. 괜찮다는 듯, 별일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서 있었다.

할머니의 얼굴에서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할아버지의 표정도 더는 날카롭지 않았다.

그 짧은 표정 하나로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처음처럼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나 역시 괜히 마음이 흐뭇해졌다. 그때 전철이 들어오고 있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베리꽃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3.22 제가 한 것이라곤
    제 표정을 부드럽게 한 게 전부.
    이것도 배려더군요.
    그리고 새삼 깨달았어요.
    배려가 거창한 게 아니라는 것을요.
    그렇게 살아가야겠습니다.
    늘평화님은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계시지요?
  • 작성자자연이다2 | 작성시간 26.03.22 네~~일상입니다. 소중한 생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베리꽃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3.22 자연님의 삶도 늘 너그러우실 것 같아요.
    척 보면 압니다.
  • 작성자파란여우 | 작성시간 26.03.23 저도 다음주엔
    주말샘이 일이 있어
    소이가 놀러온데요.
    그새 많이 컸어요.^^
  • 답댓글 작성자베리꽃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3.23 자주 못 보니 더 보고 싶으시지요?
    가능하면 어릴 때
    흠뻑 할머니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게 좋겠더군요.
    지금 크니 할머니가 최고에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