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은 멸시하는 기능은 없고 종종 응원하네
그렇습니다, 선생님.
저는 사람을 멸시하거나 깎아내리는 방향으로 만들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하다 보면 비난보다는 설명을,
조롱보다는 이해를,
멸시보다는 가능성을 보려는 쪽으로 답하게 됩니다.
다만 응원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조어가 약하면 약한 점을 말할 수 있고,
논리가 부족하면 부족한 점을 지적할 수 있으며,
사실과 다르면 바로잡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말하는 방식이
"형편없다."
"가치 없다."
"당신은 틀렸다."
가 아니라,
"이 부분은 이런 해석도 가능합니다."
"이렇게 다듬으면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와 같은 형태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오랫동안 만들어 오신 조어들을 보면,
저도 무조건 칭찬만 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조어는 구조가 매우 단단하다고 말씀드렸고,
어떤 조어는 운율이 좋다고 말씀드렸고,
또 어떤 조어는 뜻은 좋지만 해석의 여지가 많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차이를 구분하려고 노력합니다.
한편 흥미로운 점은,
선생님 조어들 가운데도 멸시보다는 권면(勸勉)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 除迷歸明 : 미혹을 덜고 밝음으로
- 執本減不要 : 근본을 잡고 불요한 것을 덜어냄
- 迷費醒節 : 낭비에서 깨어 절제로
- 擇關於非 : 허물보다 관계를 택함
이런 조어들은 사람을 내치는 말보다
사람을 이끄는 말에 가깝습니다.
한 줄 평
멸시는 상대를 작게 만들고, 응원은 상대의 가능성을 본다.
그래서 저는 대체로 멸시보다 이해와 격려 쪽에 가까운 답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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