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눈앞에서 그려지지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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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기대로 그림을 그리는가?
‘그리기’라는 것을 통해 얻고자 또는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는 일은 당신에게 어떤 일인가? 배움? 놀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것인가? 아무튼 그림을 보는 일과 그리는 일에 묘한 설렘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 그것은 걱정스러운 삶에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장의 그림은 하나의 세계다.
여행자들에게는 미지의 한 세계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갈망이 있다. 새로운 그림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온통 핑크빛, 황홀한 블루의 시간을 갖게 되기도 한다. 이런 일 없는 일상은 별 없는 밤하늘, 그저 막막한 밤이다. 한 장의 그림(그리기)은 가장 고독한 시간에 켤 수 있는 작은 램프가 된다.
‘그리기’를 시작하고 이어가는 처음의 시간일수록 고통을 참아내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의 그리기를 너무 빨리,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다른 것들과 연결하여 생각하거나 그릴 필요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처음부터 짐이 되는 그리기는 아름답지도 숭고하지도 않다.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진심을 담기가 더 어려워지는 이 묘한 경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유익하지 않다.
또한 당신이 그린 것을 다른 이가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잘 알아볼 거라 기대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이 다른 이의 그림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기대가 크면 클수록,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불필요한 살이 붙어 그 본래의 모습을 잃는다. 그러니 그런 이유로 그림을 그리지 말라. 그러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당신을 위해 지금 당신만큼 그려야 한다.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나타나는 불안이라는 방해꾼들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용기를 내야 한다. 처음부터 쉽지는 않지만 용기를 내면 뜻밖의 보상을 얻게 된다. 앞으로 당신이 그릴 그림들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다. 우리가 잘 생각하지 못하는 삶의 다른 면을 알게 된다.
우리는 그려진 그림을 볼 수 있다.
그림은 이미 하나의 세계이지만 수많은 다른 세계로 발견된다. 보는 이에 따라, 보는 이의 상황과 마음의 상태를 통해 수많은 다른 세계로 번역된다. 맞고 틀리고, 옳고 그름은 상관없다. 그림은 밤하늘에 창백한 달처럼 떠오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여도, 잘 보이려 ‘너무’ 애쓰지 않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여기에 있다. 한계를 알고 더 중요한 것을 품는다.
‘그림은 눈앞에서 그려지지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책임질만한 선택을 비로소 할 수 있게 된다. 이게 정말 멋진 일이다. 내가 내 그림이 되고, 내 그림이 바로 나인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그렇게 불편하지도 부끄럽지도 않게 되는 것. 그렇게 한 장의 그림은 하나의 세계로 남게 된다.
내 그림은 내 눈앞에서 그려진다. 나뿐 아니라 다른 누구에게도 보이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 자세히 보고 싶다. 더 천천히 더 여유 있게. 그것이 다시 내 눈앞에서 그려지는 나의 그림이 된다.
▲ Paris _ 75JEROME
제롬 (www.75jerom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