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시(錯視)에 관련하여
김 난 석
들판을 걷거나 달려보라.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주변의 풍경들은 점점 내 앞으로 가까워지다가
내 뒤로 물러남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움직이는가?
풍경들이 움직이는가?
시간과 공간에 관한 생각들이다.
차에 올라타 들판을 질주해 보라.
나는 가만히 있음을 느끼게 되고
주변의 풍경들이 점점 내 앞으로 다가오다가
내 뒤로 사라짐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움직이는가?
풍경들이 움직이는가?
역시 시간과 공간에 관한 생각들이다.
움직인다는 건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시간은 무어며 공간은 무엇인가?
뉴턴시대엔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믿었다.
절대적인 시간과 절대적인 공간이 존재한다는 거다.
허나 아인슈타인 이후엔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을 믿고 있다.
이게 현대물리학의 정설이기도 하다.
절대적인 시간이 있는가?
없다.
단지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다.
시간을 보려면, 또는 인식하려면
두 현상 사이의 변화의 정도를 보아야 한다.
아무 변화의 현상도 없다면 시간이란 무의미하다.
뜰의 나무가 자라나는 정도를 보고 시간을 느낄 뿐인데
그 시간을 객관화해서 수치로 표현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세슘의 진동수를 가지고 시간을 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세슘이 열 번 진동하면 1초라 한다거나, 하는 등으로.
절대적인 공간은 있는가?
없다.
단지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다.
공간을 보려면, 또는 인식하려면
두 물체 사이의 관계를 보아야 한다.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어떻게 떨어져 있는지.
비교되는 아무 물체도 없다면 공간이란 의미가 없다.
두 물체 사이의 떨어진 정도를 보고 공간을 가름하는데
그 객관적인 척도를 생각해 낸 게 미터법이다.
빛이 1초 동안에 떨어져 나간 정도를 30만 킬로 등으로.
인간은 1차원, 2차원, 3차원의 세계를 본다.
1차원 시각으로 보면 선(線)만 느낄 뿐이고
2차원 시각으로 보면 면(面)을 느낄 뿐이요
3차원 시각으로 보면 입체까지 느끼게 된다.
이건 공간의 개념이다.
여기에 4차원의 시각으로 보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공간개념에 시간개념이 더해져
과거, 현재, 미래가 한꺼번에 다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시각능력으론 4차원을 볼 수 없다.
불행한 일이지만
신(神)이 허여 하지 않은 것인가?
그럼에도 생각하는 능력은 있다.
과거의 모습도, 현재의 모습도,
또 미래의 1차원, 2차원, 3차원 모습도.
나의 현재 모습은 내가 보아도, 남들이 보아도 나는 나다.
나의 과거 모습과 미래 모습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는 것과 남들이 보는 건 서로 다를 것이다.
그걸 착시(錯視)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리라.
걷거나 차를 타고 달리며 보는 풍경에 착시현상이 있는 것처럼.
이렇게 구시렁거리고 있을 때
아내는 주방에서 추석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책상에 앉아 추석 전야에 머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는 같은 시간의 배를 타고 있는 걸까?
아니다.
그러나 내일 아침이면 같은 배에서 추석의 포구에 내릴 것이다.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석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09.30 그렇습니다.
태양은 이미 과거지만, 지구는 현재요
목성에서 보면 미래겠지요. -
작성자한스 작성시간 23.09.30 마지막 구절이 눈에 들어 옵니다.
서로 다른 시간 공간대에 머무르다
추석이라는 포구에서 재회하는 노년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답댓글 작성자석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10.01 네에, 고맙습니다.
명절 잘 보냈지요? -
작성자나무랑 작성시간 23.09.30 문명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은 과학자란
말이 과언이 아닌 것같아요.
뉴턴 시대의 절대적 공간 개념과 아이슈타인 이후 상대적 공간 개념.
아....과학자들은 어떻게 이런 근사한 생각을 할 수가 있는거래요.
그들의 명석한 두뇌는 명불허전 이예요.
석촌 선배님 덕분에 또 다른 개념을
배울 수 있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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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석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10.01 세상의 비밀, 우주의 비밀은 아직도 밝혀진 게 적어요..
그러거나 저러거나 명절은 잘 보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