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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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콩꽃 작성시간24.04.27
마음자리님은 옹이 같은 것,
가슴에 두고 있지 않을 분 같아요.
항상 마음자리가 정이 흐르고
반듯한 생활을 하시는 것 같아서...
어머니께 옹이는
장성한 형제들이 사회에서 바르게 살아가시면,
어머니의 옹이도 사라지고 말지요.^^
긍정의 마인드로 살아가는 이에게는
옹이도 지나서 보면,
살아가는데 힘과 용기를 줍니다.
그시절은
국민의 80~90% 가난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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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마음자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4.27 이번 주는 일정이 바쁘게 돌아가서
미루어 둔 글과 댓글을 주말인
이제야 집에서 편히 쓰고 답니다.
이제 제 속에 남은 옹이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ㅎ 건방을 떱니다).
알게 모르게 제가 가족이나
타인에게 박았던 옹이를 하나 둘
찾아서 빼내야 할 때 같아요. ㅎㅎ -
작성자 앵커리지 작성시간24.04.29 2000 년 경에 제가 써서 어느 허름한 책에 실렸던
시를 잠시 옮깁니다.
어머니는 우신다
미안하면 눈물 짓는다
괜찮다며 나는 괜찮다며 손 내젓는다
소작농의 아내로 70을 넘긴 어머니는
.................(후략)
아버지와의 불화 탓에 그런 어머니께 효도를
다하지 못 한 것이 못내 커다란 옹이로 가슴에
남았습니다.
가난했던 그 시절의 심정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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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마음자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4.27 그러게요.
몸과 마음으로 가진 것 다 내어주시고도
뭐가 그렇게 더 미안한 게 많으셨던지...
생각하면 그저 몸 전체가 먹먹해집니다. -
작성자 그산 작성시간24.04.27 저도 국민학교때 기성회비를 못내어
복도에서 무릎꿇고 손들고 벌스던 생각이 나네요
어머니는 하늘에서 아드님이 잘살고
계시는것을 지켜보며 흐믓해 하실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 마음자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4.28 복도에 무릎 꿇고 손 들고 벌 받을 만큼
기성회비 못 낸 것이 잘못한 일은 아닌데요...
선생님에게나 학생에게나 참 힘들었던
세월이었습니다. -
작성자 수피 작성시간24.04.27 울어머니의 옹이를 더 굳건히 자리잡을 수 있게 기여도가 컸었던 수피는 울엄니가 곁에 안계신 작금에 이르러서야 때늦은 후회를 하며 살아갑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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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라 작성시간24.04.27 마음자리님에게
그런 옹이가 있었다니
상상이 잘 안 됩니다.
시골 오두막집에서 살아도
집걱정을 한적 없고
보리밥이라도 굶어본적 없기에
그것이 가난인지조차 모르고 살았습니다.
납부금을 제때에 못 낸 기억은 없는데
납부금을 못 내서
혼나는 친구들은 있었던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도시에 산다고 해서 다
생활고가 없지는 않았겠다 싶네요.
각자 나름의 애환을 안고 추억하며
이제는 이렇게
웃으며 얘기할 수 있어서 즣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마음자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4.28 그땐 밥 굶은 친구들도 참 많았어요...
도시 변두리가 시골보다 더 못한 곳이
많았지요. 살림도 궁핍하고 위생도
더 못하고...
저는 막내라 ㅎㅎ 어릴 때 서러움도
아주 잘 탔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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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베리아 작성시간24.04.28 가난이라는 옹이.
공납금 미납으로 인해 아픈 기억이
있군요. 제때에 아들의 공납금을
못 주신 어머니의 마음에는 옹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리고 수술한 아들에게 소고기 대신
닭고기를 사주신 어머니 마음이
많이 아프셨겠지요.
그때는 다들 참 가난하게 살았던것
같습니다.
시골마을 치고는 엄청 큰 마을이었고
제 또래의 여자아이들은
스무명 정도 된 걸로 짐작이 가는데,
중학교에 진학한 여자 아이들은
불과 서너 명이었지요.
마음자리 님 어머님 가슴 속 옹이도
이제는 다 빠졌을 거예요.
모든 것이 풍요로워진 지금에 와서
돌아보는 지난 날은 그렇게 슬프지 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때가 참 좋았구나 싶은 것은
그때는 꿈과 희망이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던 때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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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마음자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4.28 수정 전의 댓글도 읽었답니다.
초1학년, 학생저축 안 한다고
뺨 맞고 집에 왔다가 터덜터덜
다시 학교로 돌아가던 날이 떠올랐지요.
생각이 말짱해서 입학식 날, 엄마가
선생님께 '야는 형도 같은 학교에 다니니 형에게로 몰아서 저축금 내겠습니다' 하는 말 다 듣고 알고
있었는데도, 집에 다녀오는 그 시간만이라도 교실밖에 있고 싶어서
괜히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같은 설명 또 듣고 돌아가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집성촌에서 사셨다고 하셨지요.
성주로 시집간 고모도 계셨으니
짚어보면 또 먼 친척 인연일 수도 있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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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이베리아 작성시간24.04.28 마음자리 어린아이에게 오리길은
상당히 멀게 느껴지더군요.
일찍 철이 들었던지 돈이 없는 엄마의 사정을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아무말도 안 하고 다시
학교로 갔지요.ㅠ
그 모욕감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제 친구는 고등학교때 공납금 미납했다고
선생님께 뺨을 맞았다고 하더군요.
참 슬픈이야기지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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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무랑 작성시간24.04.27 그러게요 세월이 약이겠지요 하는 말은 언제나 진리였어요.
가슴에 옹이 막힌 어머니를 잊지 못하는 맘자리 님 이야기를 듣다보니 모정의 세월이란 노래가 떠 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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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마음자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4.28 나무랑님 수정 전 댓글도 읽었습니다.
GOD의 '어머님께'.
아들이 이야기 해주어 알게 된 노래인데 실화가 바탕이라구요.
댓글 보고 다시 한번 새벽에 그 노래를
들었는데... ㅎ 시원하게 울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