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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동네

작성자해솔정.| 작성시간26.03.22| 조회수0|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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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태평성대 작성시간26.03.22 해솔정님이 말한 방화동이라는곳이 강서구 김포공항 쪽이군요

    거기는 내가 군대생활 하던곳 이었어요

    그근처 외발산동 이라는 곳에서 군대생활을 했지요

    좌우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서울 사람이 되었군요

    서울 토박이 인 나는 어릴때 서울사람이 된 해솔정님을 알게되니 반갑습니다

    충성 우하하하하하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 해솔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3.22 답글이 아래로 미끄러졌어요 ㅎ
  • 작성자 그산 작성시간26.03.22 어린시절의 추억이 참 아련하고
    수채화를 보듯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저도 군대간사이 집이 방화산아래
    예쁜 단독으로 이사가서 좋아했는데
    제대후 또 다른곳으로 이사하셨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해솔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3.22 방화산이 방화동에 있었나요.
    거기서 한 코스 더 가면 종점인
    개화동에 산이 있었거든요.

    그산님도 방화동에 사신적 있군요
    저희집 주변에 차츰 단독 주택들이
    들어 섰는데 혹시 그집들중 한집 아닐
    까요..ㅎ
  • 답댓글 작성자 그산 작성시간26.03.22 해솔정. 아 지금 생각해보니 개화산이 맞습니다
    참 좋은동네였는데 얼마 못살았습니다
  • 작성자 해솔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3.22 아~그러셨군요
    그쪽에 군부대가 있었던것 같아요
    내발산동 이란 동네도 있었지요.

    서울이란 느낌이 안들던 동네에서
    서울살이를 시작 했어요.
    태평성대님에 비하면 반쪽짜리
    서울사람인 셈이지요 ㅎ
    오늘 하루도 즐겁게 잘 지내셔요^^
  • 작성자 콩꽃 작성시간26.03.22
    잔디 깍느라
    손에 굳은 살이 박힐 정도 일까요.
    아마도, 마당이 꽤 넓었나 봅니다.

    유년시절은 외갓집에서
    청소년기는 아버지 집에서...

    어린시절의 추억이 많아서
    이야기 꺼리가 많은 것 같네요.

    소탈한 성품에
    적응도 잘 하는 해솔정님입니다.
    스스름 없이 잘 쓰시는
    글품도 성품도 모두 소탈합니다.^^


  • 작성자 해솔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3.22 잔디깔린 마당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집을 연상하기 쉬운데 그런집이
    아니었어요.

    아버지가 변두리 동네 땅값 싼곳에
    터가넓은 그집을 마련 하셔서 살다가
    나중에 집을 증축 하셨어요.

    가운데 사람 다니는길 빼고 마당
    둘레에 잔디를 심으셨는데 잔디깎는
    가위로 깎았어요.

    그 가위가 뻑뻑해서 손바닥에 물집이
    생겼는데 그게 굳은살이 됐지요.^^

  • 작성자 언덕저편 1 작성시간26.03.22 증학교다닐때 친했던 친구의 아버지가 방화동서 극장을 했죠.. 그후 고등학교입학후 헤여졌는데 사회에 나와 그친구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죠.. 방화동가기전 김포공항 들어가는 입구가 송정동.. 집사람이 초등학교 교사 발령을 처음 받아 38년간 교사를 했고
    제 첫직장은 대한항공 김포화물지점이였고 신혼살림 시작이 화곡동 주공아파트와 발산동 주공아파트였답니다.
  • 답댓글 작성자 해솔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3.22 그러시군요
    화곡동에 저의 친척이 살았는데
    입구에 있던 하이웨이 주유소 생각
    납니다.
    언덕님도 사모님도 그쪽 동네에서
    직장생활 하셔 옛날 그 동네 상황을
    잘 아실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첨에 서울 가셔서 서대문
    어디에 사셨다는데 그집을 마련해서
    저를 불러 올리신것 같습디다.

  • 작성자 마음자리 작성시간26.03.22 도시는 시골과 달라서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제가 태어나 어릴 적 살던 집은
    허리가 잘려 나가더니 급기야
    어느 땐가 도로확장 공사로
    사라지고 말았지요. ㅎ
    방화동에는 중소규모 공장들도
    많았던 기억이 나네요.
  • 답댓글 작성자 해솔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3.22 글쎄요 ..
    공장이 많았는진 모르겠는데
    전자부품 회사가 있었던건 기억해요.
    소규모로 장갑공장 하던 이웃 언니네
    도 있었고요.
    서울에 환상을 품고 갔다가 실망 했지요ㅎ
  • 작성자 푸른비3 작성시간26.03.22 그 당시 서울의 변두리 지역은 시골보다 더 열악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해솔정님은 아버지 덕분에 반듯한 집에서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군요.
  • 답댓글 작성자 해솔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3.22 동네에서 김포가 가까워서 종점
    부근은 시골 스러웠어요.
    좋은 이웃들이 있어 정붙이고 살았지요

  • 작성자 다저스 작성시간26.03.23 저도 서울와서 처음 살던 이화여대 서문 옆 골목길에 있었던 우리 옛집을 가 보고 싶네요.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합니다 ㅡ이젠 저도 옛추억을 생각해보는 나이가 되었네요ㅡ 지금까지 태풍과 소나기가 지나간 후 다가오는 고요함이 추억을 소환하네요 ㅡ
  • 답댓글 작성자 해솔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3.24 다저스님 자서전에서 이대 부근에
    사셨다는 글 봤어요.
    대흥동 ?골목안에 제 친구도 살았어요.
    비슷한 경험으로 추억소환 해주셔 고맙습니다.^^
  • 작성자 이베리아 작성시간26.03.25 해솔정님,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대구에서 사셨군요.
    서울로 불러 주실 아버지가 계셨다는
    것도 부럽습니다.
    마당 넓은 집도 부럽고요.
    한동네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아름다운 추억이네요.
    작녀 가을에 제가 살던 고향에
    가봤더니 전혀 다른 동네가
    되어 있더군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
    해솔정님, 글 잘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해솔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3.26 4학년때만 대구에 살았어요.
    2월 23일에 쓴 대구 신천동을 보면
    연결이 될겁니다.ㅎ
    다정하신 이베리아님 늘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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