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조윤정작성시간26.05.24
정신이 퍼뜩 들게 해줍니다. 만나고 헤어지고 또 그리워 하는 우리 인생
70년대 초 우리는 방송국 음악의 데이트 라디오 프로에서 데이트 짝이 되었습니다. 방송으로 서로 연결 시켜주는 데이트 단골 데이트 애청자가 되고 피디들이랑 음악 다방에도 다니고 한때 음악으로 주름잡던 시절 그 데이트 짝은 이런 카페 활동을 하는지 몹시 궁굼해집니다. 순수한 그때 시절 그 소년이 보고 싶네요.
답댓글작성자그산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26.05.24
반갑습니다 70년대 음악방송 애청자셨고 데이트 짝도 하신것 같습니다 그때 그소년들도 이제는 편안한 노후를 보내시고 그분들중엔 우리 카페회원도 있으실수도 있을겁니다 ^^ 저도 70년대초 기독교방송국 세븐틴 애청자였고 방송보러 직접 가서 어니언스, 윤항기 등 유명 가수들을 만나고 온적이 있습니다
답댓글작성자그산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26.05.24
방장님 반갑습니다 저보다 한참 선배시니 그시절은 그러셨을겁니다 저는 재수하다 우연히 본 공무원시험에 합격해서 어린나이에 세무공무원을 1년 조금넘게 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일을 경험했었지요 연휴 두째날 멀리는 못가고 인근 봉곡사에 갔다가 내일은 딸이 이사갈집을 구하러 아내와 일찍 서울에 갈 예정입니다. 댓글 감사드리며 남은 휴일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답댓글작성자그산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26.05.24
선배님 반갑습니다 오진암은 종로세무서 바로 옆에 있었는데 지금은 폐업했다 합니다 당시 그곳은 20대 초반의 여성들이 옆에 책이든 빽을 들고 출근해서 한복으로 갈아입고 손님방에 들어와 공손히 절을 했었습니다 그때 신분을 밝히니 매니저들이 여성들과 손님들은 모두 내보내고 우리는 세무조사를 했었지요. 그때 겪은 일들과 제상상을 보태 윗글을 올려봤습니다^^ 그녀들도 지금은 어디선가 모두들 잘 살아가리라 생각됩니다 !
작성자언덕저편 1작성시간26.05.25
그산님이 드디어 스토리작가로 등장하셨군요...출발이 좋습니다. 우리동기중에도 효창국민힉교 출신들을 비롯 그근처 출신들이 은근히 많고 대다수가 아버지가 공무원이었고 적산가옥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때는 대부분 아버지들이 변변한 직업없이 없던 시절인데 공무원이나 은행원이였으면 아주 살사는 집에 속했습니다.
답댓글작성자그산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26.05.25
언덕저편1선배님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1940년 평안도에서 서울로 유학와 상고를 졸업하고 대학4학년때 6.25를 만나 참전하셨지요 종전후 학교선생을 하시다 목재소를 하셨고 적산가옥을 사서 수리하고 살다가 여러차례 이사했습니다 그후 청파동을 떠나 화곡동으로 이사했는데 사업에 실패해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