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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말 잇기 아름방

다시한번 그 시절이 꿈에라도 둏겠다~ / 다

작성자좋아요|작성시간24.03.15|조회수52 목록 댓글 13

 

우리나라 제1호 여성 아나운서

 

강영숙 아나운서, 그때 그시절 그 얼굴 그 목소리, 예지원 원장

Q

어제는  성우 고은정 미운정  목소리에...  또 생각나는 그리운  '꾀꼬리 목소리' 있음에...

 

소승 (小生) ,

까까머리 시골 국민학교 동자 시절에

천사의 목소리 주인공으로 '어린이 시간'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던 강영숙 아나운서.

턱도  없지만  절로 우러나는 님 향한 선망[羨望]의 사모곡은 시골아이가  어이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아니었었다. 

 

그 촌룸이  무엇이 잘 못 되었던지는  몰라도  여차 저차 하다가  30대 초반, 인생 한창의 계절에 

강영숙님을 직접 알현하는 꿈 같은 기적의 순간이  있었것다.

 

이 촌룸 의당  흥분을 제어할 수 없었음이니, 시골소년 시절, 님의 목소리를 얼마나 둏아했었는지 고백을 횡으로 설,수로도  설, 설설 풀어놓고 있었을 터이다. 그게 주책인지는  애초 의식조차 하고 싶지도 않았을 터...

 

얼마나  단정하고 단아하고 온단한 용모에  재색을 겸비한  인품격의 향기를 물씬 풍기시던 님께오선  당시 갓 쉰으로 드시던 때...

 

꿈인지 생시인지  황홀한 촌룸 ㅎ 참 좋았었었다~다.

 

더우기  고마운 것은 촌룸의 형편없이 후질근한  연모인지 사모인지  몽롱한 도취성 말설사를

시종여일 가벼운 미소 가득, 고개 끄떡이시면서  진지하게  다 들어주시더라는...

그리움의 구름 따라 길 떠난, 가련한 시골 아이를  포근히 안아  토닥여 주시듯...

 

촌룸이 올매나 진골  촌룸 짓을 했겐노요.

그  고결한  고품격  레이디 인텔리겐챠 앞에서...

다행히 그 시공간에는  우리 둘 외엔  이 세상  다른 이 아무도 없었으니 그게 망정이지 않았겠나요 ㅋ

 

거듭 황홀하다. 그  생각만 혀도...

둏다, 참 둏다요.

 

강영숙 아나운서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숙명여자대학교 국어 국문학과를 다니던중

6.25전쟁이 일어나고 부산 피난길에서도  방송국에서 방송을 했지만 공개 채용시험이 없어 

정식 아나운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없던 터에 

KBS가 부산에서 서울로 돌아오고 자리가 잡히면서 1954년, 아나운서 공개 모집이 있었습니다. 

 

임택근, 강찬선님 등 부산에서 아나운서를 공모한 후 오랜만에 서울에서 뽑는 아나운서 시험이라 

경쟁이 치열했지만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타고난 강영숙님은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해서

 이로부터  본격적인 아나운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좌로부터 ,,, 강영숙, 한사람건너 장금자, 윤영중, 김인숙 아나운서,(정동방송국)

 

 

 TV방송국도  없고  민영방송국도 없던  1950년대!

새로운 소식을 접할 미디어가 별로 없고 마땅히 즐길거리도 없던 시절이라,

KBS 라디오 방송은 늘 애청자들 곁에 있는 친구로서  마음의 위안이 되었던 때였습니다.

 

그때는 여성 아나운서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그 활동영억은 넓었습니다.

그 시절에 새로 편성된 '누가 누가 잘하나'. '무엇일까요' 등 어린이 공개방송 등

중요한  프로그램이 강영숙 아나운서의 몫이었습니다. 

 

 중앙방송국에서  여성 아나운서의 역할이 차츰 늘어나면서 

청주방송국의 김인숙 아나운서, 이리방송국의 윤영중 아나운서, 부산방송국의 장금자 아나운서 등이 

중앙방송국으로  옮겨왔고 

강영숙 아나운서는 국내방송은 물론 대북방송이나 뉴스, 시사평론 등 다 방면에 걸쳐 영역을 넓혀 나갔습니다. 

 

 

좌로부터  노정팔  방송과장과 왼쪽 두번째부터 김인숙, 장금자, 강영숙, 윤영중 아나운서...

 

 

1954년에 편성된 어린이 공개방송은

강영숙 아나운서와 함께 탄생했다고  할 만큼 강영숙 아나운서로서는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지금도 TV에서 방송되는 어린이 공개 방송 "누가 누가 잘하나" 프로그램에는 "Since 1954" 라고 큰 글자가 쓰여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1954년부터 이어왔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때 강영숙 아나운서가 1954년 입사하면서 첫 프로그램 사회를 보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때는 어른들도 어린이 프로그램을 많이 들을 때였습니다.

 

 

 

출처> '춘하추동 방송'에서 발췌

 

~2023. 06  현재 모 신문 기사 ~

대한민국 예절교육의 전당인 ‘예지원’ 원장을 약 35년간 지낸 강영숙(93) 여사는 우리나라 제1호 여성 아나운서로, 결혼 당시 방송인 커플로 주목을 받았다.  부군은   대한민국 최초의 방송 종군기자 겸 6·25참전군인으로   KBS 보도실장(현 보도본부장)을 역임하였고  2023. 06  현재  6·25종군기자동우회장을 맡고 있는 한영섭(96)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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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바람이여 | 작성시간 24.03.15 좋아요 네 닮았죠. 그 강연자는 마음이 착했고

    눈이 작았던게 기억 나네요. 같은 반은 아니지면

    반에서 회장도 하곤 했죠. 아무튼 강영숙 아나운서의

    동생 강연자는 똑똑했답니다. ㅎㅎ
  • 답댓글 작성자좋아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3.16 바람이여 
    감사합니다.
    자매간 닮았으니 ...

    바람온냐만큼 똑똑했을까요?
    고것이 또 ㅎ~
  • 답댓글 작성자바람이여 | 작성시간 24.03.16 좋아요 아뇨. 한 번도 본 적은 없고요
  • 작성자해솔정 | 작성시간 24.03.15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나운서를 하신분이네요
    그야말로 재색을 겸비 하셨군요

    유명성우.유명 아나운서를 대면하실
    정도면 좋아요님도 특출하신 분이라
    사료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좋아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3.15
    고백컨데
    소승은
    불출이옵니다.

    그 분들은 진짜루
    특출하신 당대의 저명 여류 인사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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