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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말 잇기 아름방

서러운 방랑시인 김삿갓, 김문응...(응)

작성자별고을|작성시간25.09.20|조회수238 목록 댓글 1

 

죽장에 삿갓 쓰고 동가숙서가식(東家宿西家食) 

방랑시인 김삿갓, 

김삿갓의 할아버지가  선천(宣川)부사?

 * 홍경래의 난 때 반란군에 투항한  선천부사  김익순(金益淳)

 

'방랑시인 김삿갓'의  작사가로서 김삿갓 못지 않게 떠돌이 삶을 살아온  김문응의 고향이  선천(宣川)이라 ....

 

고향이 좋아,  사노라면,  수덕사의 여승, 눈물의 연평도, 황토 십리길, 단벌 신사, 서귀포 사랑  등

400여곡의 숱한 대중가요 히트작을  남긴 빛나던 재능의 작사가, 김문응...

 

아무리 기록문화가 미비한  역사라지만 그 유명한 작사가의 사진 한장을 만날 수가  없으니...!

더구나  살아 있다면  어디에  사는지,

작고했다면  언제 운명했으며  유택은 어디인지?

 

대한민국이 모른다???

 

행여

행려병사자(行旅病死者)처지는 아니었을지~... 

궁금한 마음... 불현듯 불길한 생각마저 엄습하는 제....

김삿갓 문학관 내 시비와 동상. 사진=영월군시설관리공단 제공

 

 

김문응 선생

1916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당시 삭주 군수를 지낸 부친 김두식씨의 3남중  막내로 태어난 김씨는

연희전문 문과 출신의 엘리트 시인 윤동주와 항일운동을 했던 송몽규 등이  모두 그의 입학 동기생이다.

 

연희전문에 입학하기에 앞서 일본 구마모토현 제5고등학교에 재학했던 그는 일본에서 오페라 『나비부인』을 본 후 그 전율감을 잊을 수 없어 오페라 대본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오페라 대본습작을 해왔다.

전문학교 재학시절 '기숙사가' 작사공모에도 당선돼 작곡가 현제명씨가 곡을 붙이는 행운을 잡는 등 노랫말 짓는 데엔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그는 졸업 후 고향선천에서 이화여전 출신 장의규씨와 결혼하고 선천상업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했다.

김씨가 평양국립가극단 가극 대본 공모에서 『마의 태자』가 당선됨으로써 국립가극단의 전속작가로 등용된 것은 1948년. 그때부터 적어도 6·25 내전까지 그는 1남2녀를 둔 행복한 가장이었으며 또 장래가 촉망되는 가극작가였다.

 

그러나 6·25는 그로부터 가족과 오페라 두 가지 모두를 빼앗아갔다. 한때 선천을 점령한 유엔군에 의해 시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던 그는 곧 중국 군이 밀려오자 홀로 월남할 수밖에 없었던 것. 

 

월남 뒤에도 에밀레종 국악 오페라 춘향전 견우직녀 등 5편의 오페라 대본을 완성했으나 한번도 작품을 무대에 올려보지 못한 비운의 작가.

오페라를 무대에 올려 보려고도 했으나 세상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으며 남한에서 다시 꾸렸던 가정도 왠지 오래 가지 못했다.

 

이런 아픔을 겪는 와중에 만들어진 주옥같은 노래들.

 

김씨는 『방랑시인 김삿갓』 이란 노래로 한 많은 가요 무대를 두드린 후  꿈꾸던 오페라 대신 4백여곡 가요의 노랫말을 지어 레코드회사에 넘겨주고  받은 몇 푼의 돈을 주머니에 넣고  서울 변두리 월 15만원짜리 사글세방에 살고있는데  이 「김삿갓」에 대해 알고 있는 이는 거의 없다.  김문응씨(77·서울 보문동 1가 22). [1993.02.26 중앙일보] 

( 저작권 보호나 시행이  열악했던 당시 상황에서... 저작자들의 사정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 놓였을 것이다.)

 

말년의 삶:??? 

1993년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그는 말년에 떠돌이 생활을 하며 생활보호 대상자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알려진  근황은  2021년 농촌여성신문 기사에서 그의 생전 회고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전 작고한 것으로 보이지만  공식적인 사망 소식은 보도된 적이 없다ㄴ다.ㅉㅉㅉ

 

 

사진 한장 안 보이니..........인생무상~ 참 씁쓸하다.

 

* '명국환의 방랑시인 김삿갓 노래비'는

2000년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노루목천에 있는 김삿갓 묘소 옆에 돌비로 세워졌다.


 

무책임한 나라, 사회, 가요계...

무정하고 무심한 염량세태(炎凉世態)를 원망하랴​

 

 

쟈니리 : 내일은 해가 뜬다 

1966년

김문응 작사,  길옥윤 작곡

 

 

출시되고 35만장이 팔린 이 노래는  그 1년 후인 1967년에는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때도 올테지"라는 가사가 "현실 부정적"이라는 내용으로 문제가 되어 방송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1980년대 초부터 운동권 학생들에게  널리 불려 

대학가 운동가요집에 '사노라면'이라는 제목으로 기록되었으며 작자 미상, 혹은 구전 가요 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992년에 임성훈이 진행한 '밤으로 가는 쇼'(KBS 방영)에 출연했던 쟈니 리는  자신이 '사노라면'의 원래 가수임을 넌지시 말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분위기였다ㄴ다.  이후  청진동의 한 카페에서 노래를 부를 때  전인권을 만나 자신이 '사노라면'을 처음 부른 가수임을 이야기하자 전인권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2004년 9월 16일 , 가요 평론가 박성서가  자신이 소장해왔던 음반을 공개하면서,

 

원제 '내일은 해가 뜬다'

노래의 원작자(작사 김문응, 작곡 길옥윤)와 가수(쟈니 리,본명 이영길)가 공식적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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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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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맹물훈장 | 작성시간 25.09.21 二十樹下三十客 수무(20) 나무 밑에 서른(30) 객이
    四十家中五十食 마흔(40) 집이나 되는 중에 쉰(50) 밥을 주더라
    人間豈有七十事 사람이 어찌 이른(70) 일이 있을 소냐
    不如歸家三十食 집에 돌아가 설은(30) 밥을 먹는 것만 못하다.

    감삿갓 (김병연)시인이
    숫자로 쓴 詩 입니다.
    귀한 詩 이기에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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