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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띠방

11월 30일 출석부 - 사진 두 장

작성자달항아리|작성시간23.11.30|조회수256 목록 댓글 26

안녕하세요? 소띠방 신입생 달항아리 인사드립니다. ^^

제가 수 년 전에 '비취구슬'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을 했더랬어요.

이 좋은 카페에 다시 글을 쓰고 싶어서 돌아온지 얼마 안 되었고,

달항아리라는 닉을 새로 지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에 여기서 글을 쓸 때도 띠방에는 와본 적이 없어요.

12월 17일 카페 송년회에 참가 신청을 해놓고,

그날 띠방으로 앉게 되니 이참에 띠방에도 인사를 드려야겠다 싶어서 이렇게 전입을 신고합니다. ^^

방장님이 출석부를 쓰라고 어제 연락을 하셔서,

제가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써놓았던 글 한 편 찾아서 올립니다.

달항아리, 잘 부탁드려요. 우리 소방 만세에~~~~ ^^

***************************************************************

바로 이 사진이었다.

그녀, 내 어린 날의 우상, 내 마음을 빼앗아 갔던 내 단발머리 시절의 공주, 천사.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광팬이었던 여중생 달항아리는

당시 조용 조용 꽤 많이 팔려나가던 잡지 '여학생'에 실린, 커다란 비비안 리의 브로마이드를 손에 넣게 된다.

그 사진은, 갱지로 된 스프링 연습장의 표지와 크기가 딱 맞았다.

나는 이 사진을 소중히 오려내어 내 연습장의 표지에 잘 붙였다.

그리고 나선, 사진에 손때 묻을까 저어하여 없는 솜씨에 아스테이지를 재단해서

스프링이 상당히 걸치적거렸음에도 불구하고 연습장 표지를 매끈하게 포장하는데 성공한다.

 

아, 그전에 사전 작업도 했다.

브로마이드 한 귀퉁이에 있는 조그만 광고 하나가 영 눈에 거슬려

(유한킴벌리의 '뉴 프리덤' 광고였으므로.. ㅎㅎㅎ)

딱 그만한 크기의 또 다른 여배우 얼굴을 잘 오려 붙여 그걸 가렸다.

그 배우가 누구였는지는 모르겠다. 얼굴을 다 바쳐 남사시런 광고를 가려주셨던 그 분, 죄송해요...ㅠㅠ

 

그리고 나서 나는, 그 연습장을 정말 마르고 닳도록 썼다.

요즘처럼 노트 속장이 리필이 되는 시절이 아니었음을 감안할 때

주로 시험공부 할 때 뭘 외우느라 시커멓게 메꿔나가는 용도로 쓰던 그 연습장을 그리도 오래 썼다는 것은

공부를 무쟈게 안 해서 그걸 쓸 일이 별로 없었거나

아님, 그 연습장이 아까워 공부를 안 했거나.. 둘 중 하나일 터이다.

(둘 다 결국 같은 뜻? ㅎㅎㅎ)

 

나는 그 연습장을, 아마도 여중시절 내내 간직했던 것 같다.

내 사랑하는 친구 미경이와 쿵짝이 맞아서,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는 반드시 서울 시내 개봉관에 영화를 보러 가곤 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보면 그 느린 전개에 솔직히 하품이 절로 나오는 그 시절의 클래식 무비들은

요즘 영화들 처럼 독기가 서렸거나 사납지가 않아서

열 다섯 열 여섯 소녀의 가슴에 행복한 판타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미경이와 나는

이름도 예쁜 '은막'에 투영되는 행복과 눈물과 희망과 탄식을 자양분 삼아 사춘기를 함께 통과했다.

학생 요금에 배정되는 좌석은 종종 그 위치가 심히 나빠서

대한 극장이나 명보극장 같은 대형 영화관의 거의 맨 앞에 앉아

화면을 우러러 보느라 어질어질 흔들흔들 시달릴 적도 종종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래도 행복했다..

 

그리고.. 그 시절이 종종.. 그리워서 미치겠다.. 

 

내 친구 미경이. 지금 네덜란드에 산다.

동창 찾기 사이트 '아이 러브 스쿨'을 통해 먼 유럽에서 나를 향해 소식을 보내줬던 내 친구.

귀국할 적마다 얼굴을 보았었는데,

연락에 무심한 게으른 나에게 지쳐, 갸도 소식을 안 보내기 시작한지 오래 되었다.

 

못된 달항아리,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책상 어느 구석에 쳐박힌 옛 수첩에 갸 여동생 전화번호가 있다.

이따 오후에 갸한테 전화해봐야지.

전화 번호 바뀌었으면.. 내 복이 거기 까지지..

 

미경이는 '로마의 휴일'의 광팬이었다.

그래서, 비비안 리와 오드리 헵번, 클라크 게이블과 그레고리 펙은

자신들이 작고했거나 전성기에서 멀어진 후의 머나먼 아시아  반도 국가의 한 귀퉁이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최고 명작이다, 

아니다 그 영화는 로마의 휴일에게 상대가 안 된다, 이러면서

단발머리 여중생 둘을 통한 대리전을 벌이곤 했다.

 

미경이가 사랑했던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다..

이 두 장의 사진을 다시 보며 이 글을 쓰고 있노라니

이 건조한 초겨울 날씨에 마음 속엔 어느새 물기가 차오른다.

세월이 물처럼 흘러 흘러, 이렇게 옛이야기를 하고 있네.

그 영화, 그 극장, 그 친구, 뉘라서 그 시절을 다만 한 조각만이라도 돌려줄 수 있단 말인가?

추억은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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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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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1.30 그렇지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명작의 힘, 고전의 향기를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볼 때마다 느낍니다.
    제가 오래 전 5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영어 과목 수업 실기 대회에 나갔었는데
    사운드 오브 뮤직 도입부의 도레미송을 쥴리 앤드류스의 내레이션부터 시작해서 즐겁게 부르며
    수업 분위기를 확 띄운 뒤에 공부를 시작했던 기억이 나요.
    제프 방장님 신참에게 출석부 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소방 신참이 신고식을 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송년회 날 반갑게 인사드릴게요. ^^
  • 작성자캄 짱 | 작성시간 23.12.01 안녕하세요 어제 결석을 오늘합니다
    저도 신입입니다 반갑습니다 .
    좋은하루되세요 ..
  • 답댓글 작성자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2.01 반갑습니다, 캄짱님^^
    어제 못한 출석이라도 오늘 하시니
    책임감 강하신 멋진 소 맞으십니다.
    감사드려요. 즐거운 오후 되시어요. ^^
  • 작성자제이정1 | 작성시간 23.12.03 나타리웃에
    초원에 빛
    너무 좋앗죠
  • 작성자고운손길 | 작성시간 23.12.03 아름다운 추억 여행에 감사드리며
    잠시 나마 아련하게 떠오르는 옛 친구들을 떠올려 봅니다.
    잘 나가던 친구들과 좀 힘들었던 친구들
    서로 거리를 두었지만
    지금엔 너 나 할 것 없이 만나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더이다.
    아직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는 일이 있기에
    날마다 출석은 못해도 일요일엔 꼭 인사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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