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은 지조요 예이다
무릎은 소모품이라 했다.
맞는 말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무릎 연골이 닳는다니
그런 것이다.
보생와사(步生卧死)라 하는데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니 그렇지 아니한가.
실버세대에 딱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어제도 걸었고
오늘도 걷는다만
그러면 무릎 연골이 닳는다는데?
그런 땐 우슬이 좋더라.
마디가 쇠무릎 닮았다 해서 우슬이라 한다는데
닭발을 넣어 끓여 마시면 효험이 있더라.
무릎은 지조와 예(禮)의 상징이기도 하다.
중국에 궤례(跪禮)라는 게 있는데
꿇어앉아 예를 표하는 거다.
중국뿐만 아니라
전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의 궤례가 유명한데
바르샤바의 유태인 학살 추모비 앞에 꿇어앉아
사죄의 뜻을 표한 건데
세계 언론의 큰 기사가 되었었다.
큰 뉘우침이었던 거다.
허나, 우리에겐 궤례라 하면 치욕이 떠오른다.
조선 인조조에 청의 침공을 받고
남한산성에서 항거하다가
결국 임금이 송파의 삼전도에 나와
청의 홍타이지 앞에 궤례를 올린 거다.
이를 삼궤구고두례라 했는데,
세 번 무릎 꿇고 절하면서
한 번 절 할 때마다 머리를 세 번 땅에 부딪는 거다.
그래서 삼궤요 구고두례였지만
그 치욕의 비(碑)가 잠실 석촌호반에 남아있다.
이건 예가 아니요 지조를 굽힌 건데
다리힘이든 팔힘이든 머리힘이든
힘이 없으면 방법이 없다.
신체 중에서 목이 가장 가늘기에
참수형이 생겼다 한다.
엉덩이에 살이 가장 많기에 곤장이 생겼다 하고
무릎이 가장 굽히기 쉽기에 궤례가 생겼다는데
함부로 굽히라 할 것도 없고
함부로 굽힐 것도 없이
살방살방 걸으면서
무릎을 잘 살려나가야 할 일이요
힘이 없으면 누가 굽히라 하지 않아도
주저앉고 말리라.
무릎이 지조요 예이지만
이젠 건강이다.
그래서 석촌호반을 걷는다.
어제는 어느 글벗과 함께 남한산성에 올랐다.
산이랄 것도 없이 구불구불한 구절양장의 고개
그게 남한산성을 오르는 길이다.
승용차 면허를 받던 때
잠실 교통회관에서 안전운전 교육을 받았다.
좌우를 살피며 천천히 운전하라더라.
운전대에서 한 손을 놓지 말라더라.
그래서 처음으로 남한산성을 타봤다.
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쥐고
좌우를 살피며 천천히 올랐다.
최우선이 안전운전이니까.
정상에 올라 옆길에 차를 주차시키고 쉬려니
뒤따라오던 차의 운전자도 옆에 주차시키고 다가와
내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더라.
왜 빨리 가지않고 길을 막느냐는 거였다.
아아, 그랬구나~
그래서 아무소리 못하고 수모를 당하고 말았던 기억이다.
어제는 어느 글벗 옆자리에 앉아 갔지만
그 오랜 기억이 떠올라 조마조마하던데
마침 뒤에 따라오는 차가 없어서 룰루랄라였다.
나는 나한산성에 들어서면 우선 두 가지를 본다.
하나는 행궁이요
또 하나는 만해 기념관인데
어제는 마침 만해 100년 아카이브 전이 열리고 있었다.
만해기념관엔 관장 전보삼 선생이 있다.
학창 시절, 만해에 매료되어
평생 만해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데에
시간을 다 보냈다 한다.
그런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게
남한산성의 만해기념관이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
.
.
당신은 물만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만해의 시집 '님의 침묵' 중에서)
기념관에 들어서니 이 시가 세워졌던데
마치 전보삼 선생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평생 만해 자료를 수집해 전시해놓고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만해시인이나 그야 그렇다 치고
나는 평생 무엇에 매달려 살아왔던고...?
그걸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사이에
글벗은 '경계'를 이야기하더라.
'경계'란 일상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상황을 뜻하는데
화나거나 슬픔, 기쁨 등이 일어날 때
마음이 이를 따라가면 행동이 흔들릴 수 있다는 거다.
그리스의 회의론 철학자들은 '판단중지'를 이야기했다.
에포케(Epoche),
모든 일은 반대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니
어떤 상황을 맞으면 일단 판단을 중지하고
생각해 보라는 거다.
가며 오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눴지만
가슴에 가만히 묻어두고 지내봐야겠다.
무엇이 되어 가라앉을지~
어제의 나들이는 그런 것이었는데
오늘은 또 어딘가를 걸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