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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가족사랑 / 퍼옴

작성자솜리|작성시간09.09.22|조회수49 목록 댓글 0

원숭이의 가족사랑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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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PM의 재범을 잘 모른다

어쩌다 몇번 TV를 통해 보았는데 그는 춤을 굉장히 잘 춘다는 느낌과 함께

이제 소년티를 갓벗어났지만 재능있는 젊은이라는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가 갑자기 소속팀을 탈퇴하고 미국으로 떠나는 모습과

미국에 도착하자 부모님을 만나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도대체 애국의 기준은 무엇인지

왜 연예계를 대표하는 목소리들은 그 청년 한사람을 감싸주지 못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두들 묵묵부답인지.....

이제 꿈을 가지고 비상하려는 한 청년의 미래가

그리고 그의 재능이 그렇게 사장되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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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죽고 싶은 마음이 없어도 죽고 싶다라는 말을 곧잘 한다

인간은 누구나 삶에 대한 넋두리나 한을 쏟아내곤한다

당시 15세의 소년이 쏟아낸 불만스런 말에

왜 그토록 큰 의미를 부여해야만하는지 모르겠다

 

이 청년이 자기가 성장했던 환경과 다른 내 조국에 와서 적응과정을 겪는 동안

정체성의 혼돈을 겪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으리라 믿어진다

나와 다른 말과 문화 그리고 사람에 적응해야한다

특히 자신의 조국의 말과 사람이기에 스트레스가 더 컷을 것이다

더욱 우리말과 어른들에 대한 예의범절에 서툴러 눈치보느라

같은 한국인으로 소외감이 왜 없었겠는가?

재외동포들도 누구나 하나같이 내 조국을 그리워하고 사랑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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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가족에게도 어떤 면은 좋고 어떤 면은 싫은 면이 있다

어떤 관계든 애증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애증은 가변적이라 수시로 변할 수가 있다

 

나는 그 청년이 넋두리처럼 내뱉은 말을 널리 관용해주었으면 좋겠다

청년기에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좋아하는 춤과 노래를 위해 바치는 그의 열정과 재능

그리고

사랑하는 부모를 떠나 성공을 꿈꾸는

그의 피나는 노력을 외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의 대학시절이 떠오른다

나는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보내고 서울로 유학을 왔다

정든 부모님 곁을 떠나 타지에서 언니랑 자취생활을 하면서

그토록 그리고 그리던 서울생활이 너무 싫어졌다

나의 경상도 액센트와 다른 서울말에 거리감이 느껴졌고

대구를 시골이라고 칭하는 서울 친구들과 대학생활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나는 무작정 서울이 싫다. 경북대학으로 전학을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이나 꾸중도 없이 우리의 환경을 개선시켜주셨다

학교 가까운 곳에 새집을 마련해서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의 투정을 묵묵히 받아주신  아버지의 넓으신 아량과 사랑이 고맙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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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재미교포의 삶은 아니었을 것이다

부모의 선택을 좇아 재미교포가 되었을 뿐

조국을 떠나서 산다는 건 절대로 어떤 특권이 아니다

백인들과 다름으로 인해 받는 고충과 고뇌에 수없이 부딪쳤을 것이다

 

내 모국땅에 와 안겨서 투정부리듯 불만을 토로한 청년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순진한 청년

그 청년의 사과를 받아주고 포용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그에게 조국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되찾게 해주면 좋겠다

 

나치에 협력한 카라얀

우리는 여전히 그의 예술적 천재성과 음악을 사랑한다

 

"챠타레이 부인의 사랑"으로 유명한

영국의 천재 작가 D.H. 로렌스가 조국인 영국을 떠나

미국의 Southwest, 산타페 부근의 타오스에 와서 살면서 말했다

“나는 런던이 싫다, 마치 덫에 걸린 동물처럼 느껴진다

죽은 것같고 어둡고 매장된 느낌이다

그에 비하면 타오스는 천국이다“

그러나 그 당시 그의 말이 영국에서 큰 문제가 된 것같지는 않았다

 

"순수의 시대"를 쓴 미국의 여류작가 이디쓰 워튼(1862-1937)  역시

뉴욕은 형편없는 곳으로 묘사하고

“파리야말로 문학적 창작력을 일깨워준다

그곳만이 지적이고 매력적인 삶이 가능한 곳이다”라면서

여생을 유럽에 가서 보냈지만 그녀는 미국 최초의 여성으로 플리처상을 받았고

예일대학에서는 그녀의 말년에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심지어는 세금이 많다고 국적을 바꾸는 외국의 명사들도 있지 않은가

 

물론 조국을 비하하거나 국적을 바꾼 그들이 잘 했다는 건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아직 자아확립의 과정에 있는 어린 청년의 미래에 관용의 빛을 베풀어주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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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모국(Motherland)이라고 하는가

어머니 품과 같은 곳이 내 나라 내 땅일진데 우리는 모처럼 조국에 와서 꿈을 펴려다

말실수를 한 예능인을 포용해줄 수는 없는가?

 

이태리인들은 무질서와 재난, 사기가 판치는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름다움 밖에 없고 예술의 탁월함만이 부패하지 않는다면서

 대통령, 장군, 독재자, 교수. 관료. 기자들의 무능함은 참아줄 수 있어도

오페라 가수 지휘자 발레리나 배우 영화감독 요리사 재단사들의 무능함에 대해서는

절대로 참지 못한다고 한다

 

물론 이태리인들의 예술지상주의적 사고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는 정반대의 가치관을 쫒는다..

유독 정치에 지나치게 예민하고 좌와 우가 뚜렷이 구분되고

아무리 뛰어난 예술성을 가진 재능인이라도 좌와 우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때도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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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땅덩어리 속에서 우리가 서로 똘똘 뭉쳐서

세계화를 향해 나아가도 부족할 판에 

우리는 이제 나와 다르다고 또는 작은 잘못에 드리대는 가혹한 잣대를 버리고

서로 비난하고 욕하고 따돌리고 소외시키는 일은 그만두자

그리고

서로서로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아픈 곳을 싸매주고 보듬어주고 품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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