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늦가을 은행차장으로 있을 때 뉴욕 맨하탄에 있는 씨티은행 부설 연수원에서 2개월 간 재무위험관리(Financial Risk Management)과정 연수를 받기 위해 뉴욕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뉴욕은 중심부인 맨하탄을 위시하여 브룩클린, 퀸즈, 브롱크스, 스테이튼 아일랜드 등 5개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도시이다.
그 중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지하철 종점인 Main Street역을 중심으로 한 플러싱(Flushing) 지역인데 주로 서민 층이 거주하고 있고 상사원 등 중산층 한인들은 비교적 치안이 안정되어있는 뉴져지(맨하탄에서 허드슨 강을 건너에 있슴) 에 거주하고 있었다.
나 역시 플러싱에 위치한 은행숙소에서 지냈는데 그곳은 한인 밀집지역 이라서 모든 간판이 한글로 되어있고 슈퍼나 세탁소 이발소 등 생활편의시설을 한인들이 운영하고 있어 영어를 한마디 못해도 일상생활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신문도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한국에서 발행되는 신문에 미주판을 끼워서 함께 판매되고 있어 거의 실시간에 한국정보를 득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미주판 신문광고다.
‘순 서울식 룸싸롱’
‘순 서울식 칸막이 이발소 개업’
‘서울에서 막 도착한 면도사 다량 확보’
뭐 이런 식이었다.
그 중 내 눈을 화~악 끄는 광고가 있었으니 바로 카바레 광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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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에서 혼자 독수공방 하며 연수를 받고 있는데 다가 영어실력도 짧았으며 거기다가 연수내용도 실무연수가 아니고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 부설 비지니스 스쿨에서 사용하는 교재를 가지고 아침 9시에서 오후 4시까지 하는 강의를 받아야 했기에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나는 카바레광고가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다음날 강의가 끝나자마자 나는 곧장 그곳으로 찾아 갔다.
그러나 서울식 휘황찬란한 카바레를 연상하며 갔던 나는 당장 실망하고 말았다.
크기는 당시 서울에서 유행하던 스탠드 바 수준이었고 밴드는 전자오르간과 색소폰 주자 단 두 명에
플로어는 한 30명정도가 춤을 추면 꽉 찰 정도였다.
마담인지 멤머 인지 하는 40대 초반의 약간 야리야리 하고 예쁘장한 여인과
카운터 겸 사장인지 하는 좀 젊어보이는 남자 그리고 알바 하는 웨이터 2명 뭐 그런 규모였다.
‘처음 오시는 분 같은데 …..’
‘네, 은행에서 연수 왔다가 광고를 보고 찾아왔습니다’
‘어머, 그럼 서울에서 오신 모양이네. 아주 잘 오셨어요 이곳은 평일에는 손님이 적은 편이지만 주말에는 우리 교포들 사교장이 되요. 그런데 어떻게 은행원이 춤을 추러 오셨나? 어디 저랑 한번 춰 보실래요?’
그 여인은 춤 두어곡을 추고 나더니
‘정말 은행원 맞아요?’
‘왜요?’
‘아니- 춤 솜씨가 보통은 넘어서요. 혹시 서울에서 제비 하다가 못된 짓 하고 도망 온 거 아녜요? 호호호…’
그 후 아쉬운 대로 종종 그곳을 찾았고 혼자 다니기가 뭣해서 같이 연수를 받던 S은행 R을 꼬셔서 같이 다녔다.
R은 춤도 못 추면서도 나를 따라 다녔다.
주말에는 제법 교포들로 붐볐고 그래도 사교장 이라고 턱시도를 입고 오는 남자들도 있었고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오는 여인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담과 나는 아주 친해졌는데 그건 전적으로 그쪽에서 조금 적극적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이건 정말이다)
친해졌다는 건 부르스를 출 때 조금 진한 스킨십을 한다던가 또 술이 약간 오르면 그녀가 내 무릎에 앉아 러브샷을 하는 정도를 말하는 거다.
문제가 생긴 건 카운터를 보던 사장이 몸이 아파 입원했을 때 였다
‘어? 오늘 사장이 안보이네’
‘평소 폐가 좋지 않았는데 조금 과로하더니 몸이 안 좋아 졌나 봐요
장사도 안 되는데……또 돈만 들어가게 생겼어요’
하며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니, 사장이 돈이 들어가거나 말거나 별걸 다 걱정하네. 둘이 먼 썸싱이 있는 거 아냐?’
‘둘이 썸싱? 호호호 부부 간에 무슨 썸싱?’
‘뭐? 부부? 그럼 사장이 당신 남편이었어?’
이건 뭐야, 와~ 맞아 죽을 뻔 했던 거 아닌가
미국에 연수 와서 교포가 하는 카바레에서 춤추다 마담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다가 신랑한테 맞아 죽었다?
나는 그 다음 날로 발을 끊었다.
귀국할 때 한번 들릴 가 하다가 미련을 접었다
지금도 찬바람에 낙엽이 날리고 노오란 은행잎이 어깨위로 떨어질 때면 뉴욕 플러싱의 거리가 생각나고 나를 보면 함박 웃어주던 그녀가 생각난다.
지금도 그 카바레는 있는지 또 나처럼 어떤 얼빠진 녀석이 마담한테 눈독을 드리고 있는 건 아닌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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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야옹 작성시간 08.11.23 그 캬바레 상호가 무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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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오솔길1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8.11.24 카네기 였나? 하도 오래되서 기억이 잘 안나네요. 퀸즈에 있었구요 지하철 7호선(Flushing Express) Queensboro Plaza역에서 가까운 뒷골목에 있던것으로 기억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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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야옹 작성시간 08.11.24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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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청산 작성시간 08.11.24 15년 전이면 그마담 나이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아리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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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오솔길1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8.11.24 50대 중반쯤 되었을겁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