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ry(이론)의 어원은 그리스어인 'theoria'인데, 여기에 'theo'라는 단어는 '본다'는 뜻이다. 막연히 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하는 'see'와는 달리, 겉으로 보이는 현상을 관찰하는 파악할 수 없는, 사물의 본질을 본다는 뜻이다. 즉, 이론(theory)이란 사물을 달리 바라보게 하는 것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 당시 남부에서 병력이 모자라 흑인 노예들을 무장시켜 전쟁터로 내보내는 방안이 논의되었을 때 남부연합 하원의장 하월 코브는 "노예로 군대를 만드는 그날이 바로 혁명이 끝나는 날이다. 노예가 훌륭한 군인이 된다면 노예에 대한 우히의 모든 이론은 틀리게 된다"고 말했다. 또 남부연합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1808~1889)는 "만약 남부연합이 몰락한다면 그 묘비에 '이론의 죽음'이라는 글이 새겨질 것이다"고 말했다.
물론 남부연합은 몰락했고, 그들의 이론은 죽었다. 이론의 어리석음이나 위험을 말해주는 에피소드로 볼 수 있겠다. 같은 맥락에서 영국의 추리 작가 아서 코넌 도일은 셜록 홈스의 입을 통해 "증거를 얻기 전에 이론을 세우는 것은 중대한 실수다(It is a capital mistake to theorize before you have all the evidence)" 라고 했다.
학계 역시 그런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분명하게 반박 가능한 사례들을 만들 수 있는 이론이 오래 버틸 수 있는 건 학자들의 사고방식이 가진 취약성 때문이라며, 그런 취약성을 가리켜 '이론으로 인한 맹목(theory induced blindness)' 이라고 불렀다.
"일단 어떤 이론을 받아들여서 사고 도구로 사용했다면, 그것의 문제를 파악하기란 매우 어려워진다. 모델에 부합하지 않아 보이는 관찰 결과를 발견했다면, 당신이 뭔가 놓치고 있는 완벽하게 좋은 설명이 분명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당신은 그 이론을 수용한 전문가 집단을 신뢰하면서 의심스럽더라도 일단은 믿고 본다."
새뮤얼 아브스만은 '이론으로 인한 맹목'을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믿음에 집착하는 바람에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지 못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인간은 새로운 지식이 등장하면 그것이 자신의 세계관과 일치하든 일치하지 않든 이를 수용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어울리는 사실만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의 창고에 추가하려 한다."
이론은 여러 분야에서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인문학은 1960~1980년대에 이론의 전성기를 맞았다가 그 후 이론의 몰락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뉴질랜드 예술철학자 데니스 듀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60년대에 프랑스에서 수입된 이후, 예일대학교 등을 거치면서 발전한 이론들은 일종의 지적인 유행이거나, 영리한 슬로건, 혹은 제스처에 불과했다. 그 이론은 진리의 탐구나 지식의 발견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로지 비밀암호 같은, 그 이론이 담고 있는 전문용어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그것은 학문적 경력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론이 위축된 것은 이론이 반복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든지 이론에 싫증이 났기 때문이다."
인문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이론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경영학 분야에선 "엉터리 경영이론이 세상을 어지럽힌다"며 ""어설픈 경영이론의 죄악"을 고발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독일 심리학자 스티브 아얀은 <심리학에 속지 마라: 내 안의 불안을 먹고 자라는 심리학의 진실>에서 "모든 이론은 임시적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이는 것만큼 나쁘지 않다는 말은 연구에 정반대로 적용할 수 있다. 처음 보기에는 사실인 것 같던 몇몇 이론이 거짓으로 판명될 때도 있다. 그러므로 이론을 판단할 때는 아무리 그럴듯하게 들리더라도 어떤 신조나 믿음에 집착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강준만 / 영어 인문학 이야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