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추천글 감동글방

군시절 마지막 이야기ㅡ 잊을 수 없는 사람2

작성자다저스|작성시간26.06.14|조회수74 목록 댓글 0

1977년 6월 30일 이해영 연대장과 제대 송별연을 끝내고 연대를 나오니 그동안 정들었던 동네 S여관과 J요정에서 우리(보병, 포병 기갑, 통신, 알오티시 13기 천도리 근무)를 초대했다. 그들은 이별을 아쉬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역대 학군단 기수 중 우리가 그동안 가장 매상을 많이 올려 주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동안 정들었던 인접 2중대 김창섭 중대장의 집에도 2중대 동기 두 명과 함께 초대 받았다. 그는 집에서 기르던 토종닭을 직접 잡아 주었다. 내가 1대대 3중대 근무할 때 나는 일과시간 중에도 내가 소속된 3중대 보다, 2명의 동기들이 있는 2중대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왜냐하면, 나의 중대장인 H(34)는 사랑이 메마른 사람이었고, 욕설과 폭력을 자주 행사했다. 반면에 같은 34기였던 2중대장은 인정과 관용이 넘친 분이었고, 비록 3사관학교를 나왔지만, 보병학교 고등군사반 졸업성적이 전체 4등일 정도로 실력이 있는 분이었다. 사람은 자연적으로 거칠고 메마른 인간에게는 거리를 두게 되고, 사랑이 있는 사람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마련이다. 내가 우리 중대를 떠나 2중대에 주로 가게 된 것도 사랑이 있는 쪽으로 가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 때문인 것이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군대에서 사랑은 더욱 목마르고 절실히 필요했다.

 

김창섭중대장은 사단사격장에서 사격측정이 있을 때에 2중대 소대장들과 토종닭 회식을 했는데, 나도 그 자리에 불러 주었다. 그리고 특전사 출신이었던 L 2중대 선임하사 제대 송별연에도 나를 불러 칠점사 뱀술을 맛보게 한 적도 있다.

그는 4중대장을 끝낸 후 실력을 인정받아 육사출신들의 보직인 연대직할 전투지원 중대장에 임명되었다. 제대 후 소식을 들으니 그는 보안부대에 들어가 대구 태백공사(대구경북 지역 관할 보안부대)부사장(중령)을 하고 전역했는데, 전역하고 대구에 있는 모 신용금고 감사를 할 때 그의 사무실에서 반갑게 재회한 적이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