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67]
연세대 입학 동기 중 이화여고를 나오고 영문과를 졸업한 매너가 깔끔하고, 지성적이면서, 빼어난 미모의 L이라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재학 중 나와 동년배 남학생들 사이에 상당한 주목을 받았던 일급의 신부 감이었다. 그녀는 새문안교회 대학부에 같이 다녀서 학교교정에서 자주 만났었다. 그런데 만날 때 마다 당시 순진하기 짝이 없었던 나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가슴만 두근대었고 그녀에게 차 한 잔 하자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4년이라는 세월은 그냥 빈손으로 안타깝게 흘러가고 말았다. 그러다가 군 제대 후 용기를 내어 그녀를 수소문했고, 마침내 그녀와 연락이 닿아 신촌과 무교동에서 몇 번 만났다. 그 때 그녀는 졸업 후 광화문에 있는 미국 평화봉사단의 단장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여학생도 과거 한 때 짝사랑한 연배의 남자가 있었지만, 그 남자와의 연애에 실패한 것 같았다. 나는 당시 나의 전 마음을 다해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해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나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고 나는 직장 일에 파묻혀 세월이 흘러갔다. 당시는 그녀가 없으면 못 견딜 것 같은 불타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 뜨거운 마음도 세월이 지나가면서 빛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져 갔다. 망각이 약이었던 것이다. 나는 세월이 흐르고 난 후 그녀에 대한 나의 뜨거운 사랑은 이루어 질 수 없다는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다. 만약 내가 원하는 대로 그녀와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세상에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형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결코 공평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싸움인 노량해전을 앞에 두고 “그동안 나의 공이 너무 크므로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의 이 말은 질투심이 불타는 선조의 보복을 두려워한 정말 그의 눈물겨운 사정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충무공이야말로 인생의 진리를 무서울 정도로 간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험악한 인생항로에서 한 인간에게 모든 행복을 몰아주실 수가 없는 것이다.
나중에 소식을 들으니 몇 년 지나, 그녀는 캐나다에 있는 어느 교포에게 시집을 갔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는 것도, 동창생들을 통해서 얼핏 들려왔다. 토론토에서 펀의점(CONVENIENCE STORE)을 운영하고 있다고도 했다. 결국 이혼하고 혼자 산다는 얘기도 나중에 누군가를 통해서 전해져 왔다. 세상 일 중에 나나 그녀나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있으랴!
한참의 세월이 흘러간 후에도 그녀를 잊을 수 없었다. 졸업 25주년 HOME COMMING DAY 때(2000년) 입학 동문들이 모교 대강당에서 기념행사를 할 때 혹시 그녀가 왔는가 싶어 영문과석을 유심히 살펴봤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후 그녀를 여고 와 대학학창시절에 과동기로 가장 친했고 당시 S여대 영문과 교수로 있던 K에게 접촉하여 그녀의 토론토 집 전화번호를 알아내었다. 그때 나는 은행을 그만두었고 나이도 50이 훌쩍 넘었다. 나는 그녀에게 긴장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그녀와 나를 연결시켜 주지 않았다. 전화번호가 바뀐 것 같았다. 미국이나 캐나다는 한 번씩 전화번호가 바뀐다고 들었다. 나는 그 후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갔다. 이제 내 나이가 70을 넘었다. 그러나 아직 나의 가슴속에 깊게 인자(印字)된 그녀의 모습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너무 청춘시절에 가졌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감정이기에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데 2000년 초에 내가 시카고 네이퍼빌에서 토론토에 사는 친구초청으로 토론토와 퀘벡과 오타와와 몬트리올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녀가 토론토에 살고 있는 걸 알았더라면, 그녀를 현지에서 한인커뮤니티를 수소문해서 그녀를 찾았을지도 모르는데 불행히도 그 때는 그녀가 그곳에 살고 있었는지를 알지 못했다.
내가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녀를 찾고자 하는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리운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었고 고운 그녀의 음성을 한번이라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회상할 때 마다 워렌비티와 나탈리 우드가 주연하고 엘리아카잔 감독이 메가폰을 든 “초원의 빛”이란 영화가 생각나곤 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영화의 여주인공인 나탈리우드와 청순한 모습이 아주 비슷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젊은 날의 두 청춘남녀가 뜨거운 사랑을 나누다가 심리적인 갈등과 상황의 변화로 결국 비극적으로 헤어진다는 가슴 아픈 내용이다. 영화의 주제 시로 나오는 영국의 낭만파 시인인 월리엄 워즈워드의 시를 소개한다.
초원의 빛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 질수록
당신을 향한 마음이 희미해진다면
난 당신을 잊겠습니다.
초원이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그것이 돌려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러워 말지니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힘을 찾으소서.
초원의 빛이여
그 빛 빛날 때 그대 영광 빛을 얻으소서.
한 때 그렇게도 찬란한 빛이었건만
이젠 영원히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고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찾을 길 없을 지라도 우리 서러워 말지니
도리어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얻으소서.
여태 여기 있었고 또 길이 있을 그 원시의 공감 가운데에서
-월리엄 워즈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