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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37

작성자골드훅|작성시간23.02.19|조회수113 목록 댓글 1


● 列國志 제37회

제환공이 귀국하자, 관중이 아뢰었다.

“주왕실이 동천한 이래 정나라보다 강한 나라가 없습니다. 정나라는 동괵(東虢)을 멸하고 형양에 도읍을 정했는데, 앞에는 숭산(嵩山)이 있고 뒤에는 황하(黃河)가 있으며, 오른쪽엔 낙수(洛水)가 있고 왼쪽에는 제수(濟水)가 있습니다. 그리고 호뢰(虎牢)의 험준함은 천하에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정장공도 그것을 믿고, 송나라를 정벌하고 허나라를 겸병하였으며, 왕군에 항거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또 초나라와 한패가 되었습니다.

초나라는 왕호를 참칭하고 있는 나라로서, 땅이 넓고 군대는 강하며, 한수 동쪽의 여러 나라들을 병탄하여 주왕실과 대적하고 있습니다. 주군께서 주왕실을 보호하고 제후들의 패자가 되시려면 초나라를 물리치지 않으면 안 되고, 초나라를 물리치려면 반드시 먼저 정나라를 얻어야 합니다.”

[제7회에 정무공(굴돌)이 동괵과 회(鄶)를 병탄하고 형양에 도읍을 정했다. 제12회에, 정장공은 齊·魯와 연합하여 송나라를 정벌했고, 제14회에, 역시 齊·魯와 연합하여 허나라를 겸병하였다. 제19회에, 초나라 웅통은 한수 동쪽의 여러 나라들을 병탄하였고, 제20회에, 초나라 웅통은 칭왕하여 스스로 초무왕이라 하였다. 제26회에 말미에, 정나라는 초나라의 속국이 되었다. 호뢰관은 『삼국지연의』에서 동탁과 조조·원소의 연합군이 크게 싸운 곳이며, 여기서 유비·관우·장비가 여포와 일전을 벌였다.]

제환공이 말했다.

“과인도 정나라가 중국의 중추(中樞)임을 알고 오래전부터 정나라를 얻고자 했었는데, 마땅한 계책이 없는 것이 한이었습니다.”

영척이 말했다.

“정나라 공자 돌(여공)이 군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제족이 그를 축출하고 공자 홀을 옹립했었고, 고거미는 홀을 시해하고 공자 미를 옹립했었습니다. 우리 선군께서 공자 미를 죽이자, 제족은 또 공자 의를 옹립했었습니다. 제족은 신하로써 주군을 축출했으며, 공자 의는 아우로써 형의 군위를 찬탈했습니다. 둘 다 분수를 넘어 인륜을 거역하였으니, 마땅히 성토해야 합니다.

지금 공자 돌이 역성을 점거하고서 날마다 정나라를 기습할 모의를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제족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정나라에는 인물이 없습니다. 주공께서 한 장수를 역성으로 보내 공자 돌을 정나라에 들어가게 하면, 돌은 필시 주공의 은덕을 마음에 새겨 북면(北面)하여 제나라에 조례할 것입니다.”

[제20회에, 제족이 정소공을 폐위시키고 공자 돌(정여공)을 옹립했고, 제22회에 제족은 정여공을 폐위시키고 다시 정소공을 복위시켰다. 그때 정여공은 채나라로 달아났다. 제24회에, 정여공은 단백을 죽이고 역성을 점거했으며, 고거미는 정소공을 시해하고 공자 미를 옹립하였다. 제26회에 제양공이 공자 미와 고거미를 죽이고 제족이 공자 의를 옹립하였다. 제족은 장공 때부터 공자 의까지 다섯 군주를 섬기면서 국정을 도맡았었는데, 드디어 죽었다.]

제환공은 영척의 말에 찬동하고, 빈수무로 하여금 병거 2백승을 거느리고 가서 역성 20리 밖에 주둔하게 하였다.

빈수무는 역성으로 사람을 보내, 정여공에게 제환공의 뜻을 전하게 하였다. 정여공 돌은 그전에 제족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은밀히 심복을 정나라로 보내 국내 소식을 정탐하게 했었다. 그런데 홀연 제후가 군대를 보내 자신을 귀국시켜 주겠다고 하자, 심중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성 밖 멀리까지 나가 빈수무를 영접하고 크게 연회를 열어 대접하였다.

정여공과 빈수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정나라로 갔던 심복이 돌아와 보고하였다.

“제족은 이미 죽고, 지금은 숙첨(叔詹)이 상대부가 되었습니다.”

[제26회에, 공자 의가 즉위하여, 제족은 상대부가 되고, 숙첨은 중대부가 되었으며, 원번은 하대부가 되었었다.]

빈수무가 말했다.

“숙첨은 어떤 사람입니까?”

정여공이 웃으며 말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훌륭한 신하이지만, 장수의 재목은 아닙니다.”

심복이 또 아뢰었다.

“정나라 도성에 기이한 일이 있었습니다. 남문 안에 길이가 8척인 큰 뱀 한 마리가 있었는데, 머리는 파란색이고 꼬리는 노란색이었습니다. 또 남문 밖에는 길이 1장(丈)이 넘는 큰 뱀이 있었는데, 머리는 붉은색이고 꼬리는 푸른색이었습니다. 두 뱀이 성문을 사이에 두고 싸웠는데, 사흘 밤낮을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저자를 이룰 만큼 많이 몰려들어 구경했는데, 아무도 감히 가까이 가지는 못했습니다. 17일이 지난 후에야 성문 안에 있던 뱀이 바깥에 있던 뱀에게 물려 죽었는데, 바깥에 있던 뱀은 성중으로 들어가 태묘 안으로 들어가더니 홀연 사라져버렸습니다.”

빈수무가 정여공에게 몸을 굽히며 축하하였다.

“군위가 정해졌습니다.”

정여공이 말했다.

“어떻게 아십니까?”

“정나라 성 밖에 있던 뱀이 바로 군후이십니다. 길이가 1장이 넘는다는 것은, 군후께서 형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안에 있던 뱀은 공자 의입니다. 길이가 8척인 것은, 아우임을 말해 줍니다. 17일이 지나 안에 있던 뱀이 죽고 바깥에 있던 뱀이 입성했다고 하는데, 군후께서 망명하신 갑신년(甲申年) 여름부터 지금 신축년(辛丑年) 여름까지가 딱 17년입니다.

안에 있던 뱀이 죽은 것은 공자 의가 군위를 잃을 조짐이며, 바깥에 있던 뱀이 태묘에 들어간 것은 군후께서 선조의 제사를 받들게 될 징조입니다. 우리 주군께서 바야흐로 천하에 대의를 펼치시고 군후를 군위에 복위시키고자 하시는데, 마침 이때 뱀들이 싸웠으니 그건 하늘의 뜻입니다.”

“참으로 장군의 말씀처럼 된다면, 죽어도 감히 그 은덕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빈수무는 정여공과 함께 계책을 정하고, 밤중에 대릉을 기습하였다.

[제24회에, 정여공이 역성을 점거하자 제족은 대부 부하로 하여금 대릉에 군사를 주둔하여 정여공이 쳐들어오는 길목을 막게 했었다.]

부하(傅瑕)가 병력을 이끌고 출전하여, 양군은 교전하였다. 그때 빈수무는 부하의 배후로 돌아가 대릉을 점령하고 제나라 깃발을 꽂았다. 부하는 역부족임을 깨닫고 병거에서 내려 투항하였다.

정여공은 부하가 17년 동안 항거해 온 것에 대해 한을 품고, 교아절치(咬牙切齒)하면서 좌우에 명했다.

“저놈을 끌어내어 참수하고 와서 보고하라!”

끌려가면서 부하가 큰소리로 외쳤다.

“주군께서는 정나라로 들어가지 않으실 겁니까? 왜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

정여공은 부하를 다시 불러 물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이냐?”

부하가 말했다.

“주군께서 신의 목숨을 살려주신다면, 신이 공자 의의 수급을 효수하겠습니다.”

“네가 무슨 계책이 있어서 공자 의를 죽일 수 있단 말이냐? 감언이설(甘言利說)로 과인을 속이고 몸을 빼내 정나라로 돌아가려는 것 아니냐!”

“지금 정나라의 국정은 모두 숙첨이 장악하고 있는데, 신은 숙첨과 교분이 두터운 사이입니다. 주군께서 저를 살려주시면, 제가 몰래 정나라로 들어가 숙첨과 모의하여 공자 의의 수급을 반드시 주군 앞에 바치겠습니다.”

정여공이 큰소리로 꾸짖었다.

“늙은 역적이 간사하게 어찌 감히 나를 속이려 하느냐? 내가 지금 너를 도성으로 돌아가게 놓아주면, 너는 숙첨과 함께 병력을 일으켜 나에게 항거하려는 것 아니냐!”

빈수무가 정여공에게 말했다.

“부하의 처자식이 지금 대릉에 있으니, 인질로 역성에 가두어 놓으면 됩니다.”

부하가 머리를 조아리며 애걸하였다.

“만약 신이 신의를 잃으면, 신의 처자식을 죽이십시오.”

그리고는 해를 가리키며 맹세하였다. 정여공은 마침내 부하를 놓아 보냈다.

부하는 정나라 도성으로 가서, 밤에 숙첨을 찾아갔다. 숙첨은 부하를 보고 크게 놀라며 말했다.

“그대는 대릉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어째서 이곳에 왔소?”

부하가 말했다.

“齊侯가 정나라의 군위를 바로잡으려고, 대장 빈수무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가서 공자 돌을 귀국시키라고 하였습니다. 대릉은 이미 잃었고, 저는 밤새 도망쳐 왔습니다. 齊軍이 조만간 당도할 것이니, 사태가 위급합니다.

상대부께서 공자 의를 참수하고 성문을 열어 그들을 영접하면, 부귀를 보전하고 백성이 도탄(塗炭)에 빠지는 것을 면할 수 있습니다. 전화위복(轉禍為福)이 바로 한순간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막급(後悔莫及)일 것입니다!”

숙첨은 부하의 말을 듣고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내가 지난날 원래 주군을 맞이하여 군위에 옹립하자고 말했었는데, 제족이 가로막았었소. 이제 제족은 죽고 없으니, 하늘이 옛 주군을 돕는 것이오. 하늘을 어기는 자는 필시 재앙이 내릴 것이오. 다만 어떤 계책을 써야 할지 모르겠소.”

[제26회에, 제양공이 공자 미와 고거미를 처형했을 때, 숙첨은 여공(돌)을 옹립하자고 했었는데 제족이 반대하고 공자 의를 옹립했다.]

부하가 말했다.

“역성에 연락해서 속히 진병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부께서는 성을 나가서 적을 막는 척하십시오. 그러면 필시 공자 의는 성에 올라가 싸움을 지켜볼 것이니, 그때 제가 기회를 봐서 그를 도모하겠습니다. 그 후에 상대부께서 옛 주군을 모시고 입성하면, 대사는 정해지는 것입니다.”

숙첨은 그 계책에 따르기로 하고, 은밀히 사람을 정여공에게 보내 서신을 전하게 하였다. 그런 다음 부하는 공자 의를 찾아가, 齊軍이 공자 돌을 도와 대릉을 함락한 일을 호소하였다. 공자 의는 크게 놀라며 말했다.

“과인이 초나라에 많은 뇌물을 보내고 구원을 요청하겠소. 초군이 당도하기를 기다려, 안팎으로 협공하면 齊軍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숙첨이 초나라에 사신 보내는 일을 고의로 지연시켜, 이틀이 지나도록 사신을 보내지 않았다. 그때 홀연 첩보가 들어왔다.

“역성의 군대가 이미 성 아래에 당도하였습니다.”

숙첨이 공자 의에게 말했다.

“신이 병력을 이끌고 출전하겠습니다. 주군께서는 부하와 함께 성에 올라가 굳게 지키십시오.”

공자 의는 그 말을 믿고, 그렇게 하였다.

한편, 정여공이 병력은 이끌고 먼저 도착하자, 숙첨은 몇 합 싸우는 척하였다. 그러다가 빈수무가 제나라 대군을 이끌고 진격해 오자, 숙첨은 병거를 돌려 달아났다. 그때 부하가 성 위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정나라 군대가 패했다!”

공자 의는 평소 담력도 없고 용기도 없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성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였다. 그때 부하가 뒤에서 칼로 찔러, 공자 의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숙첨은 성문을 열게 하여, 여공·빈수무와 함께 입성하였다.

부하는 청궁(清宮)으로 달려가 공자 의의 두 아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여공을 복위시켰다. 정나라 사람들은 평소 여공을 따랐기 때문에 환호성이 천지를 진동하였다.

[제20회에, 정장공이 제족에게 말하기를, ‘세자 홀 외에도 돌, 미, 의가 모두 귀하게 될 상이오. 특히 돌은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고 복을 타고나서, 다른 세 아들보다 월등하오. 게다가 다른 세 아들은 모두 제 명을 다하지 못할 상이오. 그래서 과인은 군위를 돌에게 전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라고 하였다. 하지만 제족이 반대하자, 정장공은 돌을 송나라로 보내고 ‘정나라는 이제부터 다사다난하겠구나!’라고 하였다.

홀은 제족에 의해 축출되었다가 다시 복위했지만, 제24회에 고거미에게 살해되었다. 제26회에, 미는 제양공에 의해 처형당했고, 이번에 의는 부하에게 죽음을 당했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돌이다. 정장공의 예언이 모두 적중했는데, 과연 그런 선견지명이 있었을까? 아니면 훗날 짜 맞춘 얘기일까? 역사에서 ‘만약’이란 말은 의미 없는 것이기 하지만, 만약 정장공이 돌에게 군위를 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여공은 빈수무에게 많은 뇌물을 주면서, 10월에 친히 제나라 조정으로 가서 맹약을 맺겠다고 약속하였다. 빈수무는 여공을 작별하고 귀국하였다.

여공은 복위하고 며칠이 지나 인심이 안정되자, 부하에게 말했다.

“그대는 대릉을 지키면서 17년 동안 과인을 힘껏 막았으니, 구군(舊君)에게 충성을 다했다고 할 수 있소. 그런데 이제 생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여 다시 과인을 위해 구군을 시해하였으니, 그대의 마음은 측량할 수가 없소! 과인은 공자 의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야겠소!”

여공은 역사들에게 명하여, 부하를 끌어내 저자거리에서 참형에 처하게 하였다. 하지만 그 처자식은 사면하고 죽이지 않았다.

염옹이 시를 지어 탄식하였다.

 鄭突奸雄世所無 정나라 돌 같은 간웅은 세상에 없으니

借人成事又行誅 남의 손을 빌려 성사하고서 또 그를 죽였구나.

傅瑕不愛須臾活 부하가 잠깐의 삶에 애착하지 않았더라면

贏得忠名萬古呼 충신의 이름으로 만고에 불렸을 텐데.

원번(原繁)은 공자 의를 옹립했을 때 앞장섰기 때문에, 여공에게 벌을 받을까 두려워 늙었음을 핑계대고 사직하고자 하였다. 여공이 사람을 보내 질책하자, 원번은 목을 매고 자결하였다.

[제26회에, 공자 의가 즉위하여, 제족은 상대부가 되고, 숙첨은 중대부가 되었으며, 원번은 하대부가 되었었다.]

여공은 또 지난날 주군을 축출했던 죄를 물어 공자 알(閼)을 죽였다. 강서(強鉏)는 숙첨의 집으로 도피하였다. 숙첨이 강서를 살려달라고 여공에 요청하자, 여공은 살려주는 대신 그의 발을 잘랐다. 공보정숙(公父定叔)은 위나라로 달아났는데, 3년후 여공이 불러들여 복위시키면서 말했다.

“공숙(共叔)의 후손을 없애서는 안 된다.”

[제22회에, 정여공의 밀명을 받은 옹규가 제족을 죽이려고 하다가, 도리어 제족에게 죽음을 당하고 결국 정여공이 축출되었는데, 그때 제족을 도운 사람이 공자 알과 강서였다. 그리고 위나라로 가서 소공 홀을 맞이해 온 사람이 공보정숙이었다. 제7회에, 정무공의 둘째 아들 단이 공성에 봉해져 공숙이라 불렸다. 정장공(오생)의 아우이니, 정여공에게는 숙부가 된다. 제8회에, 공숙은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자결했다. 제8회에, 공숙의 아들 활(滑)은 위나라에서 원병을 얻어 정나라로 쳐들어왔다가 실패했는데, 정장공이 죽이지 않고 위나라에서 살게 하였다. 그 활의 아들이 바로 공보정숙이다.]

제족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논하지 않았다. 숙첨은 정경(正卿)이 되었고, 도숙(堵叔)과 사숙(師叔)은 대부가 되었는데, 정나라 사람들은 그들을 ‘삼량(三良)’이라 불렀다.

[제26회에, 제양공이 공자 미와 고거미를 처형했을 때, 숙첨은 여공을 옹립하자고 했었는데 제족이 반대하고 공자 의를 옹립했다.]

한편, 제환공은 정여공 돌이 복위한 것을 알았다. 위나라와 조나라가 지난 겨울에 맹약을 요청했기 때문에, 제후들을 크게 모아 희생을 바치고 맹약을 맺고자 하였다.

[제36회에, 제환공이 노장공과 가 땅에서 동맹한 것을 듣고, 위나라와 조나라가 사신을 보내 사죄하고 동맹을 청하였는데, 제환공은 송나라를 정벌한 뒤에 회맹을 가질 것을 약속했었다.]

관중이 말했다.

“주군께서 새로이 패업을 도모하시려면, 반드시 정사를 간편하게 하셔야 합니다.”

제환공이 말했다.

“간편하게 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陳·蔡·邾는 북행에서의 회맹 이후 제나라를 섬기는 데에 두 마음이 없습니다. 조백(曹伯)은 비록 북행 회맹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송나라 정벌 때 이미 함께 거사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네 나라는 다시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송나라와 위나라는 회맹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한번 만나야 할 것입니다. 여러 나라들이 한 마음이 되었을 때, 비로소 맹약을 거행할 수 있습니다.”

[제35회에, 제환공이 북행에서 회맹할 때, 송환공 어열, 진선공 저구, 주자 극, 채애후 헌무가 참여하였다가, 송환공은 불만을 품고 돌아가 버렸다. 그래서 제환공이 송나라를 정벌하러 갔는데, 그때 陳나라와 조나라가 참여하였다.]

관중의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보고가 들어왔다.

“주왕(周王)께서 다시 선멸(單蔑)을 보내 송나라가 예물을 보내온 것을 알리도록 하셨는데, 선멸은 이미 위나라에 당도하였습니다.”

[제36회에, 송환공이 제환공에게 우호를 청하며 예물을 바치자, 제환공은 주왕실에서 파견된 선멸에게 예물을 넘겨주며 주왕에게 바치게 했었다.]

관중이 말했다.

“송나라와는 우호가 이루어졌습니다. 위나라는 주왕실에서 우리나라로 오는 중간에 있으니, 주군께서 친히 위나라로 가셔서 선멸을 만나시고, 제후들을 불러 화친하십시오.”

제환공은 宋·衛·鄭 3국을 불러 위나라 견(鄄) 땅에서 만났다. 그리하여 선멸과 제환공까지 모두 다섯 사람이 만나, 삽혈은 하지 않고 서로 인사를 나눈 다음 헤어졌다. 제후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제환공은 인심이 기꺼이 복종함을 알고, 宋·魯·陳·衛·鄭·許 등 여러 나라를 유(幽) 땅에 모아 삽혈하고 맹약하였다. 그리고 비로소 맹주라는 칭호를 확정하였다. 이때가 주이왕 3년 겨울이었다.

한편, 초문왕 웅자는 식부인 규씨를 부인으로 삼아 비할 데 없이 총애하였다. 3년 내에 두 아들을 낳았는데, 장자는 웅간(熊囏), 차자는 웅운(熊惲)이라 하였다. 하지만 규씨는 초나라 궁중에서 3년을 지내면서도 초왕과는 말을 나누지 않았다.

초문왕은 그것을 괴이하게 여기다가, 어느 날 그 까닭을 물어 보았다. 규씨는 눈물만 흘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초문왕이 자꾸만 다그치자, 규씨가 대답하였다.

“한 여인이 두 남편을 섬겨 수절하지도 못했고 죽지도 못했으니, 무슨 면목으로 말을 나누겠습니까?”

말을 마치자 규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호증선생이 시를 읊었다.

 息亡身入楚王家 식나라는 망하고 몸은 초나라 왕가로 들어갔는데

回看春風一面花 돌이켜보니 봄바람에 피어난 한 떨기 꽃이로다.

感舊不言常掩淚 옛일 생각나 말은 않고 눈물만 감추니

祇應翻恨有容華 꽃다운 얼굴에 서린 한 어찌 풀려나?

초문왕이 말했다.

“모든 것이 채후 헌무 때문이오. 과인이 부인을 위해 원수를 갚아줄 테니, 염려하지 마시오.”

[제34회에, 채애후 헌무가 처제인 규씨를 희롱하였고, 그래서 분노한 식후가 초문왕을 끌어들었는데, 초문왕은 식나라를 멸망시키고 규씨를 데려갔다. 발단은 헌무 때문이었으나, 정작 원흉은 초문왕이다. 남에게 자신의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이 강자의 특권 아니겠는가?]

초문왕이 군대를 일으켜 채나라로 쳐들어가 도성으로 들어가자, 채애후 헌무는 육단(肉袒)하고서 엎드려 죄를 청하였다. 그리고 부고에 있는 보물을 모두 뇌물로 바치자, 초군은 비로소 돌아갔다.

[‘육단’은 사죄·복종·항복의 뜻으로 웃옷의 한쪽을 벗어 상체(上體)의 일부를 드러내는 행위를 말한다.]

그때 정여공 돌이 초나라에 사신을 보내 복위한 사실을 고하였다. 초문왕이 말했다.

“돌이 복위한 지 2년이나 지나고서야 비로소 과인에게 고하다니, 이는 과인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초문왕이 군대를 일으켜 정나라를 정벌하려 하자, 정여공은 사죄하고 화평을 청하였다. 초문왕은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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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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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추일슬풍 | 작성시간 23.02.20 제나라는 지금의 산동성에 위치한 제후국인데,
    산물이 풍부한 나라다,강대국으로 발전할 여건을 갖췄으나,
    너무 자만한 나머지,후에 저 서쪽 오랑케땅에 가까운
    진나라 영정(진시황)에게 망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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