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8월 5일 / 송장출16
매일 쓰는 글이지만 오늘은 추억의 여행이랄까?
유행가 평행선처럼 우리는 평행선, 독자가 읽든 말든, 말든 읽든
어느 날 글 쓰고 싶으면 쓰는 기질이라 누가 말려 주는 것도 아니고
즉 "누가 나 좀 말려 주세요" 호소한들, 남들이 말려서 될 일인가?
무조건 한국이 최고, '이 세상에 내가 최고'라는 엉성한 환상과
고집으로, '가진 것이 시간밖에 없는 애송이'였던 1977년 8월 5일
그 날은 부모님 품을 떠나 육군3사관학교에 입교한 역사적인 날이며
필자의 생일이다. 부모님 없이 혼자 생일을 맞이한 것은 난생 처음이다.
그것만 그런가? 생도생활에 필요한 각종 비품을 지급 완료한 훈육대장은
뜬금 없이 "장교는 국제신사, 생도는 장교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이라며
훈시 중, 흘러 간 조선의 선비는 국제신사가 되지 못한 사례까지 열거하는데
1977년 8월 5일 뜨거운 한낮의 훈시는 덥기도 했지만 평생 영향을 줬다.
왜 신사가 되지 못한 것일까? 솔선수범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라 판단된다.
그래서 평소에 언행일치, 수신제가, 솔선수범, 청렴결백을 지키려 노력했다.
수십 년이 흐른 요즘 경기도 용인 천주교 공원 묘지에
필자의 생일 3~4일 앞뒤로 영면하신 부모님, 기억을 더듬어 보니
가족 중 최초로 교내 성당에 간 것은 1970년대 후반 3사 생도 때였으며
아들이 성당가자, 부모님도 1980년대 전반부터 천주교회 미사에 참석한 것이다.
그 무섭던 선친이 금주했고 아들 위한 기도할 때 그 감동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영면하시는 그날까지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어찌 하늘이 감동하지 않을까 . . .
그 은혜로 하늘아래 화성시 병점 땅에서 숨쉬는 필자가 복받은 사람이다.
그 후 변화무쌍한 산전수전 세파에 많은 경험을 했다.
뭐가 잘못되면 습관적으로 '누구 때문이야'를 주장하던 새파란 청년기
그후 '누구 때문'과 '나 때문'이 섞인 50대까지 흥미진진했던 인생 전투였다.
1970년대 인기 드라마 '전우'가 암시하듯이 피 끓는 인생 전선으로 가다 보니
인생 6학년이 된 요즘은 무슨 잘못이나 시행착오를 '나 때문'으로 성찰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제 탓이요,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를 반복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고졸 여 직원이 주식 상장업체의 임원이 된다는 것은 기적이라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여성 승진의 어려움을 다룬 기사에 처음 등장한 용어가
'유리 천장'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이라는 표현이다.
투명한 천장이라 직접 부딪치기 전까지는 있는 줄 모른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깬 사람이 삼성전자 이사를 했던 21대 국회의원 양향자라는 분이다.
소속 당론으로 확정된 검수완박을 팍팍 차 버리면서 반대를 선택한 소신의 국회의원
더 이상 나가면 그 분과 피가 섞인 것으로 오인될 것같아 이쯤에서 대략 글을 멈춘다.
중국에서는 ‘대나무 천장’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이따금 열정적인 한국인들이
글로벌 무대에 깜짝 등장하지만 대부분 반짝하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만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도 글로벌 주류사회에 끼지 못하고 국내로 쫓겨 들어온다.
일본인, 중국인, 인도인들은 이 천장을 뚫고 올라가는데 한국인들은 왜 못 해낼까?
불행히도 국제사회에서 당하는 한국인들은 이 유리천장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부딪치고 나서도 그저 인종차별이겠거니 하고 쉽게 체념해 버린다.
글로벌 매너가 부족한 우리는 국제 사교무대에서 입지가 좁다.
세계의 모든 운동선수들에게 올림픽 금메달은 삶의 목표일 수 있다.
그런데 그 다음은?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이 없다. 꿈에 부풀어 환상에 젖는다.
2014 소치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데 어리석게도
한국빙상연맹은 판정에 불만을 품고 제소를 했었다. 당연히 기각이다.
제소 이유에 소트니코바가 경기 시연 직후 심판석에 달려가 러시아 심판과
포옹을 한 것까지 지적했다가 “그건 매너일 뿐”이라는 단호한 핀잔까지 받았다.
노벨상이 문(文)의 축제라면 올림픽은 무(武)의 제전이다.
노벨상위원회가 지성의 사교클럽이라면 IOC는 야성의 사교클럽이다.
스포츠를 핑계로 한 세계 최상급 사교클럽 중의 하나다.
박사학위나 금메달 순으로 집행위원이 되는 것이 아니다.
대중의 인기가 아니라 글로벌 매너와 품격으로 승부하는 곳이다.
LPGA에서도 공주여고 박세리 이후 한국인들끼리 우승을 다툰 지도 오래되었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미국 상류층 인사들과 라운딩 제의를 받거나 그들의 파티에
초청받아 본 적이 없다. 그나마 몇 푼의 우승상금과 후원비에 흡족해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외모가 받쳐 주면) 국내 광고모델료 얼마 더 챙길 수 있다.
미국 중상류층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 선수들은 그저 골프 벌레 내지는
로봇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미국 골프 시장이 점점 죽어 가고 있다.
이름도 한 몫을 한다. 예를 들자면 박세리보다는 '팍팍 쎄려'가 좋을 것이다.
국내 골프는 골이 빈 족속들이 푸른 잔디를 밟으며 공기를 마시는 것에 비해
필자는 어린 새싹들을 대상으로 푸른 칠판에 벡묵가루를 마시며 열강한다.
또 '기생충' 등 심심찮게 한국 영화가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입상하지만
그 중 유럽의 극장에서 상영되어 호응을 얻은 작품은 아직 하나도 없다.
작품성과 연기는 입상감이지만 감독이나 배우들의 매너는 바닥이기 때문이다.
한류의 주역인 드라마 역시 후진국들에서는 인기지만 선진국 안방에서는
방영할 수가 없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들의 기준에서 보면 모조리 짝퉁들이다.
차라리 '저 하늘의 슬픔이'나 '영자의 전성시대' 또는 '별들의 고향'이 솔직한 영화라 본다.
출장, 관광, 연수 등으로 수많은 한국인들이 줄지어 폼생폼사로 해외 나간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크고 작은 분탕질을 쳐 놓는, 질이 낮은 사람들 때문에
다음에 그곳으로 여행 가는 한국인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기 일쑤다.
입구에 한국인들 받지 않겠다고 써 붙이는 호텔이나 식당이 있는가 하면
어떤 도시엔 한글로 음주운전을 경고하는 팻말을 달아 놓은 거리도 있고,
한국인 출입을 금하는 박물관도 생겨났다. 돈을 쓰고도 사람 대접 못 받는 것이다.
기껏 간다는 것이 바다 건너면서, 별나라 갔다 온 것처럼 카페를 도배한다.
흔히들 함께하기 싫은 사람을 두고 ‘밥맛 없다’란 표현을 쓴다.
그런 사람과는 친구로 사귀기는 커녕 같이 일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한데 한국은 이미 선진국 초입에 들어,원하든 원치 않든 세계인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이에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한국인의 밥맛 없는 매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 세계의 각국 지도자들이
우리나라 윤석열 대통령을 ‘밥맛없는 사람’으로 여긴다면?
중국 방문 시 무려 8~9끼를 혼밥 신세로 전락시킨다면?
한국의 대통령을 연변이나 흑룡강 도지사 정도로 가볍게 본다면?
국무총리, 장관, 대사를 매너 없는 유학생 정도로 여긴다면?
위급 시에 걸려 오는 전화를 성의 있게 받아 줄 수 있을까?
도와주는 척하면서 그들 나라의 이익을 한껏 챙기고,
이참에 혼 좀 나 봐라고 딴전 피우며 한 바퀴 돌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고, 그 피해는 당연히 한국민들의 몫일 것이다.
인류사에 그 유례가 없는 ‘문화혁명’을 통해 중국은
수천년 동안의 전통을 일시에 파괴하고 구시대와 단절했다.
끔찍한 문화파괴였지만 의외의 후유증도 없지 않았다.
바로 전통적인 된장통, 된장녀 가치관, 라이프 스타일, 예절, 관습,
사고방식을 일시에 내다버리고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는 점이다.
비록 일시적인 암흑기를 거쳤지만 덕분에 절대후진국 중국은
‘모든 인민은 동등하다’는 철학을 공유해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창조하는 데 옛것의 걸림이 없는 개혁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그 문화혁명의 쓴 맛을 보고 재기한 사람이 등소평, 시진핑이다.
한국의 지도자라면 그 상황에서 '쪽스럽다'고 뛰어 자살했을 것이다.
지금 중국은 그 관성으로 빠르게 글로벌화하고 있으며,
옛날 로마 공화정과 흡사한 정치형태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만약 문화혁명이 없었다면 오늘의 중국이 과연 그 질긴 된장통,
된장녀 질곡을 떨어낼 수 있었을까?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보다 앞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관습을 버리고 근대화했다.
88올림픽 이후 한국은 본격적으로 대중소비 시대를 열었고,
내친 김에 1996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에까지 가입했다.
우방국에서는 한국이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며 충고해 줬지만,
6.25동란으로 세계 최빈국이던 우리나라가 갑자기 잘 살게 되니
저들이 배가 아파서 하는 소리이겠거니 하며 들은 척도 안 했다.
만인의 홍어인 우리도 이제 선진국 문턱에 한 발을 올려놓았으니
웬만한 선진국들을 뒤로 밀어내는 건 시간문제라고 자신했었다.
갑자기 홍어는 왜 나오냐고 하겠지만 홍어 대신에 붕어라 하자
재물이든 권력이든 복지든 그것을 담을 그릇이 되는 사람에겐
당연한 행운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에겐 재앙이 될 수밖에 없는 일.
갑자기 로또에 당첨되었거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거나 일확천금의
수익을 잡은 이들 중 많은 이가 오히려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있다.
급격하게 소득 수준에 비례해서 한국 사회가 타락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현재 우리사회는 살인, 성추행, 자살, 쩐질, 갑질, 완장질로 아수라장이다.
갑자기 주인 노릇을 하게 되자, 억눌렸던 천민근성이 터져 나온 것이겠다.
재판을 하는 것인지? 개판을 치는 것인지? 뻑하면 집행유예나 때리니 족 같다.
교통사고 외에 살인자는 1년 이내에 사형시키면 2~3년 내 흉악 살인범은 사라진다.
그래야 국가 기강이 잡히고 범죄없는 사회, 남국 없는 국회, 조국 없는 대학이 된다.
말로만 민주니 가면을 쓰고 종북질, ‘인간존엄’ ‘자기존엄’에 대한 각성도 못하고,
그걸 확보하기 위한 훈련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든 갑의 위치에 오르면 진상떠는 더 끔찍한 일이다.
세계 10위 무역대국이면서 왜 소득은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왜 행복하지 못한지? 왜 희망의 지표가 보이지 않는지? 왜 꼴값을 떠는지?
왜 가진 자들이 더 타락하는지? 기술 일등을 하고서도 왜 일류가 못 되는지?
석, 박사 학위를 받고도 써 먹지 않고 양로원에서 "나 무슨 학교 출신이네"
출신이 밥 먹여 주면, 필자는 벌써 굶어 죽어 북망산 초입에 묻혔을 것이다.
외부적인 장애나 위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급한 표현으로 ‘혼돈’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만큼 한국 사회 스스로 타락하고 붕괴해 가고 있다.
은근과 끈기의 민족이라지만 우리 한국인들이 인내는 강할지 몰라도
절제가 많이 부족하다. 인내와 절제는 다른 성질. 절제는 매너를 통해
길러지고 품격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현재 수준의 매너에서 조금 더 나대면
한국인들은 더욱 타락할 것이라는 게, 선진국 사람들의 선험적 충고다.
그 어느 때보다 선진사회로 들어갈 체질개선 작업, 즉 품격운동이 절박하다.
인성은 절대 바뀌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절제하고
남을 배려하면 결국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매너교육’이어야 한다.
매너 또한 기술이다. 아무렴, 옛것에 집착해서 새것을 못 받아들이면
굴욕을 피할 수 없음이 역사의 대명제. 혁신 없는 전통은 박제일 뿐,
혁신 그 자체를 전통으로 삼아야 글로벌 시대를 선도해 나갈 수 있다.
군사력, 경제력만이 경쟁력이 아니다. 매너가 진짜 자원이고 경쟁력이다.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건 지식이 아니라 매너다. 공부벌레, 운동벌레, 일벌레,
돈벌레는 날개가 없다. 어느 소설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라고 했던가.
잡털은 ‘유리천장’은 고사하고 ‘종이천장’도 찢고 날아오르지 못한다.
끝까지 애벌레로 기어오르다 정상에 이르면 굴러 떨어진다.
세상이 아무리 넓다 해도, 쩐이 많아도 매너를 모르면
병점역 계단에서 동냥하거나 동탄 아파트 ‘막노동'밖에 없다.
더 나가야 수원 광교산 걸뱅이나 동네 백수인 용인 동백의 건달이 된다.
옛날이나 요즘도 가나 마나한 대학 졸업장은 총알 없는 총에 불과하다.
미친 척, 머리 다친 척, 막연한 용기와 막연한 도전만으로는 힘들다.
요즘에 대학 나오지 않은 젊은이가 있나? 있다면 가기 싫어서 안 간 것이다.
매너가 진짜 공부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진짜 선물이다.
지난 일이지만 1977년 8월 5일 필자가 3사 입교 당시 소령은 단 1명도 없었다
1기 선배님들도 모두 대위였고 그해 10월에 소령 진급이 시작되었으니 . . . . . .
그런데도 우리가 자기네 부모 때려 죽이거나 돈 떼어 먹은 철전지 원수인지?
묻지도 않았는데, 주변에서 "3사 출신은 기껏 해야 소령 계급되기도 힘들다며"
그러다 조금 시간이 흘러 요즘은 "대령이 가끔 보이지만, 장군은 아예 없다메"
애, 어른 구분 없이 만인들에게 그러한 더럽고 개무시 당하는 세월을 겪었지만
그러한 수모나 모욕에 지쳐, 오죽했으면 리어카를 끄는 한이 있어도 전역했겠나
필자도 노력해 가끔 1등을 했지만 비주류라 소리 없이 인내하며 설움을 견디었다.
전역한 이후 오늘까지 매일 전투하는 자세로 옷장 맨 앞에 걸린 전투복을 보면서
'쓰러지면 죽는다' 그것은 '인생이란 전투에서 필승하겠다'라는 자세로 출근한다.
현재 우리 3사 출신은 장군만 2백명이 넘고 별 4개, 사성장군도 5명이 나왔는데 . . . . .
숱한 밤을 지새우며 밤을 낮같이, 낮을 밤같이 '안되면 되게 하라' 정신으로
전력투구한 결과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들이 요즘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도 일천한 학력, 경력으로, 흙수저의 후손으로, 쩐이 쬐끔있는 개털로
초상집 개처럼 숱한 세월을 개무시 당할 때 피눈물 흘린 아픔이 한 두번 아니다.
그 어려운 세월을 낙동간 전선에서 북진하는 것처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섰다.
그래서 필자는 카드를 긁는 한이 있더라도 동문에게는 '순대국과 막걸리'를,
몹시 추운 겨울에 달달 떨어도 '동문의 택시비'를 드린 가슴 아픈 추억이 있었다.
비록 면바지에 T셔츠를 입더라도 가족에게 김창숙 부띠크, 유명 메이크를 입혔다.
낙선한 동문이 불꺼진 방에서 혼자 한숨 쉬는 것이 안 봐도 뻔할 것 같아서
용돈 몇푼 들고 위로차 포차에서 쓴 쐬주를 목구멍에 부어 넣을 때 쓰라린 상처
아픈만큼 성숙한다지만 아픈만큼 자구책으로 이를 악물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 결과 이제는 학력, 경력, 체력, 재력, 뚝심이 뒷받침 되었으니 상전벽해다.
어당팔(어린 게 당수가 8단)도 있지만 노때날(노털도 때가 되면 날라 다닌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