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 게시판

깡통

작성자송장출|작성시간24.06.10|조회수35 목록 댓글 1

  어릴 때 동네 친구들과 재미있게 발로 깡통차기를 했고

주식한지 지난 37년 동안 깡통을 숱하게 찬 쓰라린 경험으로

진절머리를 내면서도 짭짤한 손익에 현재까지 손을 떼지 못한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깡통’이란 의미는 그리 좋게 쓰이지 않으며

속이 텅텅 '비어있다' 무늬만 화려하지 실속이 없다는 뜻이라

‘소식이 깡통이다’ 또는 ‘빈 깡통이 요란스럽다’는 표현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 이름 중 영희, 철수, 영철, 영자, 순자는 너무 흔하다.

산 중에서 같은 이름의 산 4위는 남산이 약 40개, 3위는 향로봉이 약 50개,

2위는 국사봉이 약 60개며 필자가 특전사 근무 시 Cㅡ130 수송기를 타고

야간에 낙하산으로 공중 침투했던 곳이 포천의 국사봉이란 추억이 있다.

4위부터 2위까지도 많은데 1위는 약 2만 3천개의 부동산, 복덕방이다.

억지 춘향식 아재 개그를 했지만 ‘깡통’은 부동산, 금융시장에서 쓰인다.

깡통전세가 대표적이며, 깡통주택, 깡통대출, 깡통주식까지 다양한데

이 단어들은 큰 손해를 보거나 위험한 상황일 때 주로 쓰이기도 한다.

 

   가끔 지인들의 초청에 의해 가정을 방문하면 한 잔하게 된다.

걸죽한 막걸리 한 잔하면서 "이 집에서 중요한 보물은?" 질문한다.

대답은 다양한데 대부분의 지인들은 아파트가 몇 평, 땅이 몇 평,

하다 못해 A씨 쪽파 몇대 손, B씨 대파 몇대 손임을 밝히는데

"가장 중요한 보물은 우리 자녀"라고 대답하는 분은 극히 드물다.

 

   그런가 하면 수시로 독서한 탓인지 손때 묻은 책을 소유한 분도 있고

땀 흘려 일해서 재산형성한 것보다 부동산으로 돈 벌었다고 자랑한다.

필자도 신혼 초 매월 급여 20만원 일때 70만원 전세로 시작하여

직업군인의 특성상 인사명령에 의해 조용히 이삿짐을 여러번 실었고

전역 후 서울 신도림동 살다가 학원운영차 병점에 정착하게 되었다.

 

   재산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지만 밤낮으로 재산을 모은들 시원찮은데

최근 부동산 시세는 하락세를 보이고, 동시에 전세가격 상승 영향으로

깡통전세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은 전국적인 추세라 판단된다.  

본인의 역량보다 남이 뭐한다 하면 힘들더라도 뱁새가 황새따라 가듯이

필자가 거주하는 곳 화성시 동탄, 병점은 영끌족들의 아파트가 대다수며

영끌족 ㅡ 부족한 돈은 영혼까지 빚으로 끌어와 집을 소유한 사람 ㅡ 들은

살얼음 위를 걷듯이 아슬 아슬한 곤경에 처해 안타까운 현실이 되었다.

 

   깡통 전세란 주택가격 대비 전세보증금이 과도하게 높은 것으로

집주인의 주택담보대출금과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합한 금액이

80% 이상의 경우 사람들은 통상 깡통전세라 하는데 꺼림찍할 것이다.

불안해서 관할 동사무소에 확정일자 등록, 또는 전세권 설정을 하지만 

그것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사고나면 당한 사람만 처량한 신세가 된다.

깡통전세는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금전적, 정신적 고통을 준다.

깡통대출은 건설, 부동산업뿐 아니라 은행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깡통’ 문제는 전국적으로 요란스럽게 파급되고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시골바다 | 작성시간 24.06.10 유익한글 감사합니다
    편안한 월요일 되십시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