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것처럼 유난히 추웠던 얼어 죽을 겨울이 가고
봄이 시작되는 입춘에 이어 개구리가 겨울 잠에서 깨어나는 경칩
우수를 지나 개자추를 기리며 찬밥 먹는 한식, 농사 준비하는 청명
본격적인 농사가 전개되는 소만, 망종도 지나 연일 폭염에 시달리는
요즘 여름을 맞고 있다. 유행과 시간의 흐름을 익히 알고 있다는 듯
화성시 병점 주변의 앞산, 옆산, 뒷산, 말 많은 구봉공원의 낮은 산도
어느덧 푸름의 옷으로 치장하고 있으니 세월이 유수와 같이 빠르다.
현재 우리나라는 어느 산을 가든지 숲이 우거져 있지만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나무가 없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산의 가치와 중요성에 관한 공감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 시점에서 인구 100만을 초과하는 화성시 병점 출장소와
통탄 출장소, 수원시청 앞에 가면 수십 대의 묻지마 산행버스가
매주 토, 일요일마다 진을 치고 패션쑈를 하는지 명품 등산복도
족히 2백, 3백만원 넘는데 걷는 폼이 등산과 거리가 먼 개꼴이다.
“왜 산에 올라가는가?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등산가는 물론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에게 유명한 이 문구는
1924년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다 실종되어 75년 후 1997년
국제탐색대에 발견된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맬러리가 남긴 말이다.
하필 이름도 익살스러운 '조지' 그래도 지미 카터보다는 낫다.
'조지'나 '지미'까지는 아니지만 필자의 이름도 만만치 않은 송장출,
'시체가 나간다'고 수십년 놀림 당하지만 그것을 인내로 견딘다.
조지 맬러리처럼 산을 정복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푸른 숲과 자연이 없다면, 과연 ‘산이 거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산을 오르겠는가? “네 영혼이 고독하거든
산으로 가라”고 한 어느 푼수 듣보잡놈의 말이 와닿는다.
지친 심신에 새로운 활력소와 생명력을 충전하기에
푸른 숲과 자연은 더없이 좋은 곳이기에 산을 찾는다.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맛있는 막걸리와 김밥을
꼭 산에서 먹어야 되고 그나마 안주가 없으면 산행 내내
남을 씹으며 오르 내리니 같이 걷기가 상당히 부담된다.
성인 남녀 10명 중 반은 한 달에 한 번 이상 산을 찾는다.
어떤 이에게 산행은 상호 교류, 스트레스 해소의 공간이며
어떤 이에게는 치유의 공간이자, 모험과 체험 공간으로
숲을 이용하는 이야기는 그 단체의 목적상 서로 다르다.
그러나 숲이 지속 가능해야 인류의 삶도 지속 가능해진다는
공통된 이야기는 분명하지만 가능하면 험담을 입에 담지 말자.
특히 산행의 끝 무렵에 뒷풀이로 유방산 오르는 것은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