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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작성자송장출|작성시간24.06.23|조회수29 목록 댓글 1

 

   함남 북청이 고향인 선친께서 일제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어  

태평양 전쟁 시 전선에 투입 대신 일본 명치대학교에 유학갔을 때

하숙집 같은 방 룸메이트가 해방 후 국회의원의 둘째 아들이라

그 인연으로 신영욱 국회의원 비서가 되고 신영욱 국회의원이

일제시대에 사용했던 사연 많은 앉은뱅이 목재 책상을

필자가 1960년대 초등학교 4학년 때 선물 받았다.

 

   물러 받은 그 책상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밤 늦게까지 열심히 공부했던 것은 그 당시 입시제도가

평준화 이전이라, 학업에 전념하여 세칭 일류 고등학교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오직 공부 외에 다른 방법이 없던

중3시절 졸려울 때 라디오에 양희은의 노래가 들려온다.

 

  경기 여고를 졸업, 당시 대학생 가수로 목소리도 좋은데

어찌 되었든 듣을수록 듣고 싶었던 양희은의 아침이슬은

한 때 남한, 북한에서 모두 금지된 곡으로 찬밥이 되었지만

애국가 다음으로 많이 알려졌고 이 음치도 아침이슬을 열창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의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노력한 결과, 비록 경기고등학교는 가지 못했지만 

인생의 새벽에 새마을 운동 등 한국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필자는 양희은의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을 즐겨 듣었고

푸른 전투복을 입으면서 인생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나이는 숫자,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는 과정을 거쳐

살다보니까  '차후 북망산으로 가겠지' 라는 사색의 강에 빠졌다.

이제는 라디오 대신에 TV를 시청하고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그 당시 신비스런 라디오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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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시골바다 | 작성시간 24.06.23 아침이슬~
    키타 배울때부터 시인 처럼 불르던 노래였지요
    리디오의 추억이 저도 남 다릅니다
    감사드립니다
    좋은글보 며 지난 날의 저를 찾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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