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취업, 닥치고 당선, 닥치고 한잔
닥치고 로또당첨이 그 언젠가 한 때 유행어였다.
말 많은 세상에 얼마나 다급했으면 '닥치고'가 키 워드였을까?
세계적으로 인구밀도가 많은 한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
눈만 뜨면 사람과 접촉하면서 말을 하는 세상에 말이 너무 많다.
더군다나 주택이 밀집된 지역에 사람이 촘촘히 모여 살다 보면
소음 문제, 주차 문제, 쓰레기 문제 등으로 마찰이 있기 마련이다.
몇년 전, 인기리에 상영된 '달마야 서울가자'라는
영화에서 압권은 '묵언수행'이었는데 한마디로 '말'이었다.
요즘 말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조용히 살고 싶은데 . . . .
말이 많아서 다변, 말이 적어서 과묵, 말을 잘해서 달변. 말을 못해서 눌변,
나는 우리 집을 대표해 이웃과의 갈등을 해결할 가장인데
문제는 갈등 상황에서도 하지 말아야 할 말, 해야 될 말,
말을 고르고 고르느라 제때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아파트 한복판인 우리 집 근처에서
맞고 싶어서 누군가 한밤중 큰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미친년 널뛰기 하듯이 그의 목소리에는 취기가 가득했다.
잠들은 심야라 하지만 각 세대 방안에는 사람들이 있고
목소리는 깔때기처럼 남의 집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나직하게 말을 해도 토씨 하나까지 또렷이 들려 놀라울 지경이다.
취객이 말린 혀로 욕을 해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닌
"개새끼들아"가 아니라 "개대끼들아" 언성을 높이고
중간중간 오바이트 할듯이 술 취한 한숨을 토하며
했던 말을 또하고 거듭하는 것을 듣고 있었는데,
헌집 벽 털듯이 먼지나도록 패줄까? 말까? 화가 치밀었다.
잠을 자고 싶어도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병점 파출소에 '쌍방울 출동' 전화때리기도 그렇고
화가 치밀어 한마디로 화끈하게 주의를 주고 싶었는데 . . . .
어떻게 표현해야 서로 분쟁 없이 해결이 될까?
그렇게 숱한 말을 입안에서 굴리는 동안
용기 있는 어느 한 이웃이 이렇게 소리쳤다. ‘조용’
까만 밤에 로켓처럼 발사된 짧고 강력한 외침이었다.
그 단 두 글자에 취객은 놀랍도록 신속하게 사라졌다.
다양한 글을 쓰며 말을 고르고 고르는 것,
단어를 살피고 살피는 것이 직업이자 생활이 됐다.
하지만 때로는 생각한다. 내가 말을 궁리하고 벼르느라
시간을 보내는 사이 누군가는 단호한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한다.
권력이 뭔지? 죄명이 뭔지? 성여리 뭔지? 준스타가 뭔지?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니들의 말(言)로, 말로(末路)가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