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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동포의 짝사랑

작성자마스리|작성시간24.07.01|조회수47 목록 댓글 4


위대한 동포의 짝사랑

임대 전전하던 '최빈국' 대사관의 '한(恨)'을 푼 것은 재일동포들의 피와 땀이었다. 무시받던 일본에서 교포 기부로 도쿄, 오사카에 번듯한 공관을 마련할 수 있었던 과거를 돌아본다.

6·25전쟁이 한참이던 1952년 5월의 어느 날, 일본 도쿄, 대한민국 공사가 오사카의 한 기업인을 찾아와 읍소한다. 도쿄 공사관이 작은 빌딩 한 층에 월세로 들어가 있는데 쫓겨나게 생겼다는 것이었다. 임차료를 못 내니 건물주가 나가라고 독촉하지만 갈 곳이 없어 버텼는데, 전기 공급을 중단하고 엘리베이터를 꺼버렸다고 하소연했다.

아무리 전쟁 중이지만 한 국가의 외교부 대표로서는 참담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기업인에게 어쩌란 말인가?

며칠 후 그 기업인은 공사를 대동하고 부촌으로 유명한 다케야초의 한 건물을 방문한다. 7934㎡(약 2400평)의 대지에 유럽식 2층 건물인 덴마크 공사관 관저였다.

이 정도면 어떠냐고 물었다. 입이 딱 벌어진 공사는 뭐라고 평가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 기업인은 당시 돈으로 4200만 엔을 주고 그 건물을 매입했고 공사관은 바로 이사했다. 월세는 어떻게 하면 되냐는 공사의 말에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라’는 대답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10년을 무상으로 사용하다가 1962년 8월 15일, 광복절 선물로 한국 정부에 기증한 그 건물이 현재 일본의 "대한민국 대사관"이다.

서갑호... 그는 먹고 살기 힘들어 14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에서 시작해 온갖 거친 일을 거쳐 방직사업으로 크게 성공했다. 한때 서일본에서 소득세 1위까지 올랐던 분이다.

정주영 회장이 태어났던 1915년에 경남 울주군에서 태어났는데 신격호 회장의 옆 동네였고 ‘도쿄의 신격호, 오사카의 서갑호’ 로 불리며 의형제로 지냈다. 아무리 궁리해봐도 그 동네는 뭔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던 오사카의 공사관도 동포들의 성금으로 운영비를 내다가, 1963년에 와서 사달이 났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공사관을 옮겨야 하는데 보증금 2700만엔을 마련할 방도가 없었다.

또 그가 나섰다. 현재 가치로 300억 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서갑호, 한록춘, 안재호 등 오사카의 다섯 동포가 부담했다. 그래 놓고도 월세 신세가 안타까왔는지 7년 뒤에는 아예 땅을 사고 건물을 지어 공사관을 옮기자는 결의를 한다. 그러자 그래도 염치는 있었는지 외교부는 굳이 비싼 곳에 지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동포들은 "그건 우리가 쪽팔려서 안된다."고 말하며 도심 한복 판인 신사이바시의 대지를 매입키로 했다. 그런데 땅 주인이 구매자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팔지 않겠다고 몽니를 부렸다. 결국 한록춘 씨의 일본인 부인 명의로 매입해야 했다.

1974년 지상 9층, 지하 2층 건물을 완공했고 그 즉시 한국 정부에 소유권을 이전했다. 교포들이 설계, 부지 매입, 공사 비용으로 당시 돈 8억엔을 전액 기부한 최초의 사례다.

벌써 감동이 오는가? 아직 멀었다. 지금 일본에 존재하는 외교공관 10개 중 9개가 재일동포들이 땅을 사고 건물을 지어 조국에 기증한 것이다. 그 부동산은 현재 가치로 2조원을 훌쩍 넘는다고 하니 세상에 이런 동포들이 또 존재할까? 독하다는 유대인들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결정되자 그들은 다시 나선다. 그때 돈으로 100억엔의 성금을 모아서 기증했으며 올림픽공원에 있는 경기장, 올림픽파크텔, 올림픽회관 신축 비용, 미사리 조정 경기장과 장충체육관의 보수 비용으로 성금을 집행됐다. 서울의 66㎡(약 20평) 아파트가 2000만원 하던 시절에 541억원이었다. 당시에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의 동포들이 모은 성금이 총 6억원이었으니 재일교포 성금의 엄청난 규모가 비교된다.

지독한 차별 아래 힘들게 살던 자신들이 쪽팔리는 건 견딜 수 있어도 "조국이 국제무대에서 부끄러운 존재로 남는 것은 못견디겠다."는 결기였다. 서갑호는 망해가던 방림방적을 인수해 한국의 방직산업을 선진화했다. 구미에 대규모 공장을 추가 완공했는데 원인을 모르는 불의의 화재로 전소됐다. 그때 1차 오일쇼크의 불운이 겹치고 또 하필 그 순간에 일본 은행들이 대출금을 일시에 회수하면서 그는 부도로 무너지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지만, 고국의 정부는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점에 모국으로 유학을 온 재일동포 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 조작하며 공안정국을 조성했고 국민들이 재일동포들을 백안시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이젠 그 누구도 서갑호를 기억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도쿄 대사관 지하의 작은 기념관 만이 그가 그곳에 존재했고, 조국을 너무나도 짝사랑 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전영민(롯데벤쳐스 대표)

당시 재일교포들의 헌신에 관련된 미담은 도저히 눈물 없이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 분들의 처절했던 조국에 대한 헌신은 향후 언젠가 낫낫히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뜨거웠던 조국에 대한 짝사랑은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에 의해 이어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이 글을 대하며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은 재일동포의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이순신 장군의 경우와 너무 닮았다는 사실입니다. 알아주는 사람도 인정해주는 사람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핍박을 받아가며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짝사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가 조국의 체면을 세우고 위상을 올려놓고 자신들은 아무런 대가없이, 오히려 많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잠잠히 잊혀졌다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감동 자체입니다.

"조국이 부끄러우면 안된다."는 서갑호 등의 기부를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대한민국을 사랑한 수없이 많은 해외교포들을 축복하며 사랑합니다. 또한 아스팔트 위에서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안위와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조롱과 모멸을 무릅쓰고 외롭게 투쟁해온 많은 시니어 애국동지 여러분들도 너무너무 사랑하고 가열차게 존경합니다.

님들의 투철한 애국애족 정신과 뜨거운 열정, 끈질긴 인내심과 고귀한 사명감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관통해온 "위대한 짝사랑"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기쁘고 행복한 월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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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밝은빛 | 작성시간 24.07.01 재외동포 화이딩..ㅎ 좋은글 감사 늘 건강하세요..
  • 답댓글 작성자마스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7.01 예 좋은 시간 되세요
  • 작성자리디아 | 작성시간 24.07.01 그랬군요
    몰랐던 사실이에요.

    울컥~
    눈물이 나려합니다.
    진정한 애국자이십니다.
  • 답댓글 작성자마스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7.01 예 좋은 시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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