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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라서 더 좋은 시인 정우영 ― 제21회 이육사 시문학상 시상식에서

작성자부천이선생|작성시간24.07.28|조회수83 목록 댓글 6

친구라서 더 좋은 시인 정우영

― 제21회 이육사 시문학상 시상식에서

 

 

대학교를 같이 다녔으니 동문이라고 해야할까

문단 데뷔를 내가 먼저 했으니 후배라고 해야 할까

아니 그보다는 나이를 떠나 그냥 '친구' 같은 사람

그가 바로 시인 정우영이다.

 

그와는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81학번, 동기동창이다.

나야 78년에 월간 <소설문예> 신인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하였고

그는 89년에 시인이 되었다.

그런 문단 선후배 관계를 떠나

고교 졸업 후 7년 군생활을 마치고 입학한 55년생 나와

재수 끝에 입학한 61년생 그는

흔히 말하는 '예비역'들이었기에 자연스레 가까와졌다.

 

흔히 영호남의 지역색을 말하지만

영남 쪽인 나와 호남 쪽인 그 사이에 지역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

그는 나의 문학과 학문을 응원해주었고

나는 그의 시적 재능을 인정했으니까.

 

대학 시절, 동기생들 중에 내 눈에 드는 시인이 둘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시인 박남희였고

다른 하나가 시인 정우영이다.

 

둘은 그 결이 달랐다.

흔히 말하는 캐릭터는 물론 시적 경향이 전혀 달랐다.

다르기에 둘을 다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면 이상한 걸까.

 

정우영의 이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잘 아는 사실이지만

대학시절 과대표를 맡아 리더로서의 역할을 했던 그는 대학 졸업 후,

시 창작만이 아니라 문단조직의 행정까지 맡아 훌륭한 성과를 냈다.

 

첫 시집을 냈을 때,

그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시집을 냈을 때

그의 시를 읽으며 나는 참 행복했다.

내가 아는 정우영 답다는 시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 몇 편이 내 블로그 <내가 읽은 시>에 소개되어 있는 것은

그의 시를 내가 좋아한다는 뜻이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체질적으로 그는 술을 못한다.

(건강상의 이유로 술을 끊은 지금의 나하고는 그것도 통한다.)

그러면서도 동기생들의 술자리에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뒷처리는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술 한 모금 마시지 않으면서도 술자리의 뒤에는 그가 늘 지키고 있었으니까.

 

2016년 7월

마로니에 시낭송회에서 반갑게 만나 이렇게 사진을 박기도 했다.

 

한때 투병 중이란 소식을 들었지만

텃밭을 가꾸는 그의 모습을 페북을 통해 전해 듣고 보면서

언젠가는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라 믿었다.

 

그런 그에게 아주 기쁜 소식이 들렸다.

 

정우영 시인이 이육사시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단다.

 

아,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마치 내 일처럼 기뻤다.

 

사실 시단에서 그의 시편들은 이미 주목을 받고 있었다.

원로 혹은 중견 시인들은 물론 동년배들로부터도

시적 셩향은 물론 인간미까지 인정받는 인물이다.

 

친구가 상을 받는다는데 당연히 축하 난 화분이라든가

아니면 축전이라도 보내야 하리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보다는 직접 시상식에 가서 축하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7월 27일, 하필이면 이날일까.

구순을 훌쩍 넘긴 어머니의 생신이다.

당연히 형제자매들이 모이기로 했다.

다른 때와 다른 것은, 예전에 비해 어머니의 기력이 많이 약해졌다는 것.

어쩌면 생전 마지막 생일 모임일수도 있다는 걱정이었다.

 

그럼에도 틈을 내어 이육사문학관에 잠깐 들르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시상식이란 의식에 맞게 옷을 갖추어 입었다.

 

안동으로 가며 혹 못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미리 축하 인사를 전했다.

솔직한 내 마음 - 시상식에 가지 못하더라도

안동이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 다운 답 - 고맙다는 말에 이어 내 어머니 걱정을 한다.

이러니 '친구'가 아닌가.

 

어머니는 내 걱정과 달리 멀쩡하셨다.

한 가지 확인된 것 - 예전에 비해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잘 모르고

아침에 먹은 것도 점심이면 잊어버린다는 것.

기력 또한 많이 약해지셨다.

 

함께 점심을 먹었고,

중간중간 어머니의 특이 행동이 눈에 보였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아흔을 훌쩍 넘긴 연세를 생각하면 걱정도 팔자란 소리 들을 일.

그러나 자식된 입장에서는 안타까울 수밖에.

 

시상식 이야기를 했더니 어머니께서 가보라고 응원을 하신다.

마침 주말이라 쉬고 있던 동생이 태워다 준다고도 했다.

 

동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도산면 이육사문학관으로.

행사 끝나고 연락하면 5분 내로 올 수 있는 곳에 있겠다는 동생.

내가 이렇게 복이 많은 놈이다.

 

입구로 들어서는데 안내하는 직원이 아름을 묻는다.

내빈 참석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리라.

내 차림을 보고 뭐 그럴 듯한 사람으로 생각했을 테니까.

그냥 친구 상 받는 것 축하하려고 왔다우.

 

문학관에 들어서서 둘러보는데 사무실 쪽에서 정 시인이 나온다.

반갑게 인사하고.

정말 오랜만에 부인과 딸까지 만났다.

익히 알고 있던 부인이지만 길에서 마주치면 몰라볼 뻔했다.

딸이야 아장아장 걸을 때 보고 처음이니 전혀 모를 수밖에.

<내가 좀 늙어보여도 아버지하고 내가 대학 동기동창이거든.>

반가운 마음에 부러 큰소리로 딸에게 말했다.

 

이럴 게 아니라 기념 사진부터 찍자.

시상식 후에는 수상자는 모델 노릇하기 바쁠 테니까.

 

시상식을 알리는 입간판 앞에서 정우영 시인과 찰칵.

 

수상자이니 바쁠 시간.

그를 놓아주고 나는 홀로 문학관을 둘러본다.

 

흉상은 그대로인데 많이 달라졌다.

에전보다 깔끔해졌다고 할까.

 

10년도 넘은 문학기행을 기억해내며 많이 좋아진 문학관을 훑다가 밖으로 나왔다.

 

곧바로 눈에 꽂히는 꽃.

 

<배롱나무>이다.

 

동생 차를 타고 오며 길거리에 핀 이 꽃나무를 보며 좀 의아했다.

안동에 <배롱나무>가 이렇게 많았나.

과장되게 말하면 외곽에는 가로수가 모두 <배롱나무>이다.

 

게다가 이상한 것 - 분명 안동이 아랫지방인데.

부천에는 끝물인 <배롱나무> 꽃이 안동에는 한창이다.

나중에 동생한테 들은 말 - 부천보다 안동이 더 춥단다.

 

호피무늬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꽃, <범부채>

 

<벌개미취>도 피었다.

 

흡연하는 동지(?)를 만나 구석진 자리에 가 니코틴도 보충하고.

 

시작할 시간이 되어 행사장으로 올라갔다.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

국민의례에 이어 여러 내빈들의 인삿말과 축사.

 

집에 오니 벌써 뉴스에도 나왔다.

 

수상자와 내빈들이 기념 사진을 찍는데

무대에서 올라오라는 손짓.

내가 뭔 내빈이라고.

됐다고 손짓 보내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작가들과의 기념사진을 찍을 차례.

 

우선 부리나케 '할배' 이위발 시인과 함께 수상자에게 다가가 찰칵.

그런데 내가 왜 중앙에 서 있는 게야?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위발 시인과는 전에 인사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내게 할아버지 뻘이란 사실을 알았다.

 

시상식을 시작하기 전,

인사를 나누다 명함을 건넸더니 어디 이 씨냐고 묻는다.

재령 이 가라 했더니 곧바로 온 답

<내가 현(鉉) 자 항렬인데~~>

듣자마자 내 입에서 나온 말

<할배아니시니껴.>

왜 자연스레 안동 사투리가 나오지?

 

'뱃속에 든 형님은 없어도 뱃속에 든 할아버지는 있다'는 말이 있다.

지금 이위발 시인과 나의 관계가 바로 그렇다.

한 가문의 종손은 맏아들의 맏아들의 맏아들의 맏아들~~~로 이어가기에 항렬이 무척 낮다.

맏아들의 맏아들이 장가들 때 막내아들의 막내아들은 이제 태어나니까.

나 역시 종가에 가면 동년배의 경우 대개 손자 아니면 조카뻘이다.

그렇다면 이 시인은 막내아들의 막내아들의 막내아들의~~~얼마나 오랜 막내아들의 아들일까.

나이 어린 할아버지와 나이 많은 손자의 상봉.

가문을 따지는 안동 지역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에

그를 '할배'라 부르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같은 문인이기 전에 이미 한 집안이라는 굴레를 벗을 수 없는 관계

친해질 수밖에 없다.

 

기념 사진 찍는다고 작가들 올라오라고 했는데,

 

처음에 이렇게 섰다가, 점점 늘어나더니

 

나중에는 이렇게 되었다.

나는 심사위원장 이하석 시인, 전 문체부 장관 도종환 시인과 함께

늘어나는 인원에 따라 자리가 재배치될 때에도 꿋꿋하게(?) 수상자 옆에 붙어 있었다.

 

문학인 중에 도종환 시인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문인들의 행사 때에 종종 얼굴을 보는 갑장.

그런데 그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지 점점 젊어진다.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했는데 그는 호탕하게 웃는다.

내게 도종환 시인은 그런 사람이다.

 

이육사 시인의 따님, 오랜 만에 뵈어 <건강하시죠> 인사했더니

활짝 웃으며 내 손을 잡아주는 이옥비 여사의 손이 참 따뜻했다.

 

얼굴을 아는 선배 문인에게는 다가가 인사드리고

나를 아는 후배 문인들이 다가와 인사받고

문학상 시상식은 문인들이 모이는 자리

그렇게 선후배를 알아보고 인사하고 인사 받으며 친목을 다진다.

수상자를 축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식후 축하공연이 있다는데

서울로 올라갈 일을 생각하며 일어섰다.

'할배' 이위발 시인은 문자로 내게 뒷풀이 시간과 장소를 알려왔는데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시 정우영 시인에게 다가가 인사하고,

몇몇 후배들의 배웅까지 받으며 문학관을 나왔다.

 

문학관 입구.

 

동생에게 연락을 하고는 그저 시비를 바라보다가

 

이육사 시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슬그머니 그의 옆에 앉았다.

배웅 나온 후배가 찍어줬다.

 

훌륭한 시인의 시를 읽으며

친구가 상을 받는 데에 직접 찾아와 축하하고

후배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가는 나

그러고 보니 나는 참 행복한 놈이 아닌가.

 

대학 동문을 넘어 내 '친구'라 말 할 수 있는 정우영 시인.

소설가 혹은 문학박사라는 내 이름 앞에 붙은 관형어를 빼고도

나를 응원해 주는 정우영 시인,

그가 친구여서 더 좋은 오늘이다.

 

― 7월 27일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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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부천이선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8.02 응원 고맙습니다.
    ^(^
  • 작성자시골바다 | 작성시간 24.07.28 이육사 시문학상 받으신 정우영 시인님 축하드립니다.
    이박사님의 좋은 글 사진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밤 이루십시오~~
  • 답댓글 작성자부천이선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8.02 고맙습니다.
    ^(^
  • 작성자홀리 | 작성시간 24.08.01 선생님. 처음 뵙겠습니다.

    글을 주욱 읽어 내리면서 저 역시도 참 행복한 사람이다 생각이 듭니다.

    수필 한편을 읽은듯 해요.

    어쩜이리도 잔잔하게 글을 조용히 쓰시는지요.

    이육사 시인님은 저 역시도 좋아하는데요.

    정우영 시인님은 제가 게을러서 그런지 책을 못 읽었습니다.

    선생님. 자주 뵈었음 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부천이선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8.02 언제 얼굴 마주할 날도 있겠지요.
    늘 평안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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