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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모교 나들이 — 연천군 청산면 '궁평초등학교'

작성자부천이선생|작성시간24.08.02|조회수113 목록 댓글 10

나 혼자 모교 나들이

— 연천군 청산면 '궁평초등학교'

 

 

 

2024년 7월 31일 수요일

초등학교 동창들이 갑자기 번개 모임을 갖는단다.

마침 시간이 되어 참석하기로 했다.

 

잘 뚫린 자동차전용 도로를 달리면 금방이다.

의정부 - 동두천을 지나 일반 국도로 내려와 초성리를 지나다가

청창로에 들어서며 눈에 들어오는 나무.

 

<황벽나무>

속 껍질이 노란색이어 '황벽(黃蘗)' 나무라 부르는데

가로수로 식재하는 것은 물론 목재는 여러 공예의 재료로 쓰여 유용한 나무이다.

열매 생김새 때문에 눈에 익었다.

 

낮 12시에 모이기로 했는데

동두천을 벗어나면서는 쉬엄 쉬엄 왔는데도

너무 일찍 나서다 보니 시간에 여유가 많았다.

차를 세우고 니코친도 보충하며 연천의 공기를 마신다.

 

모임 장소로 가는 길, 모교 입구를 지나게 된다.

넉넉한 시간, 오랜만에 모교 구경이나 하고 간다.

 

나는 연천군(당시에는 포천군) 청산면 궁평리에 있는

궁평초등학교를 입학하여 졸업 때까지 다녔다.

당시 삼거리(백의2리)에서 약 3km를 걸어다녔는데,

요즘 아이들에게 그 거리를 걸어 통학하라 하면 다닐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나만 그랬을까.

당시 어떤 동급생은 5km를 걸어다니기도 했으니까.

 

예전에 동창회를 할 때에 학교의 허락을 받아 대부분 모교 식당에서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교에서 하기 힘들어졌다.

학생 수가 줄어들며 식당이 좁아졌고

학생들을 위한 이러저러한 법령에 따라 외부인의 학교 출입에 여러 제약이 있었다.

졸업생들임에도 학교 시설을 이용하는 데에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점차 모교가 아닌 외부 음식점이나 카페를 이용하게 되었는데

자연스레 모교 방문이 줄어들었다.

 

실로 얼마만에 와 보는 모교인지.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궁평로45번길 52>

나의 모교 궁평초등학교의 주소이다.

 

여름방학 중이라도 교문은 활짝 열려 있다.

주차장에 차들이 몇 대 있는 것으로 보아 선생님들도 와 있는 모양.

교문 입구에 차를 세우고는 운동장에 들어섰다.

 

 

운동장 교문쪽에서 한바퀴 돌며 바라본 모교의 풍경이다.

 

5학년 때던가.

수업시간에 공부는 안하고 운동장에 나와 자갈 고르는 일이 전부였다.

몇 날 몇 일을 운동장 고르기 작업을 했던지.

요즘 학생들을 동원하여 운동장 공사를 한다면?

학교장은 파면당할 각오를 해야 할 게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그랬다.

 

12월에야 찍은 1학년 학급사진

 

<합심하여 이룬 혁명 단결하여 완수하자>

5.16 직후 학교 현판에 붙은 구호이다.

그런 시절에 학교를 다녔다.

 

학교를 배경으로 손수찍기로 찰칵.

 

멀리 화단에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산수국>

 

예전에 우물이 있던 곳에도 꽃들이 만발했다.

 

<미국수국>

 

우리 꽃 <무궁화>

 

<범부채>

 

<수국>

 

 

<자주달개비>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어디 쯤에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본관 옆 출입구에 다다르니 안에서 누가 물을 열고 묻는다.

<어떻게 오셨어요?>

말투가 좀 이상하다.

교육기관에서도 연변 사람을 쓰는구나.

<선생님이세요?> 물으니 아니란다.

청소부 복장으로 밀대를 들고 있다.

 

<지나가다 학교 구경하고 있는데, 화장실 좀 써도 될까요?>

어서 들어오란다.

복도가 너무 깨끗하여 신발을 벗어야 하나, 망설이는데

신발 신은 채로 들어오란다.

 

얼른 들어가 교무실 앞에 있는 화장실에 가 볼 일을 보고.

다시 복도를 걷는데 교실에서 선생님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온다.

또 묻는다.

<어떻게 오셨어요?>

지나가다 학교 구경 좀 하다가 화장실을 좀 썼다고 하니,

대뜸,

<학생들 수업 중이라 이렇게 막 들어오시면 안되요.>

예,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지가 여기 8회 졸업생이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세요?

아니란다.

아, 방학을 맞아 특별활동 지도하는 강사 분이구나.

 

8회 졸업생으로, 모교가 그리워 구경 좀 했다고 설명하니 경계를 푼다.

아닌 게 아니라 교실마다 피아노 소리, 노래 소리, 여러 율동과 그림 그리기 등

예술 활동이 한창이다.

여름방학 맞이 특별활동 지도를 하고 있던 것이겠지.

 

전교생이 42명이라던데, 방학임에도 모두 나온 것 같다.

교사들은 방학이고 강사들이 나와 수고를 한다.

 

나 인증샷 좀 찍어줄래요?

 

화장실에 다녀오며 모교 복도에서 신발 신은 채로 내가 잘 추는 춤, 엉거주춤.

특별활동을 지도하던 강사가 찍어줬다.

 

학생 보호를 위해 외부인을 경계하는 것 - 결코 나무랄 수 없다.

하긴 내 나이 대에 이렇게 학교 안에 들어와 구경하겠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가 너무 감성이 풍부해서 때로는 탈이다.

그런데 감성이 풍부해서가 아니다.

 

2002년에 한국소설가협회 주관의 행사로 모교를 찾았었다

 

졸업생이기도 하지만, 모교의 초청을 받아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문학 강연도 했다.

그런 추억이 담긴 곳이다.

더구나 평생 교사, 강사, 교수 소리를 듣다 보니 어느 학교든 교사들과의 대화에 거리낌이 없다.

현실 속에서는 죽을 때까지 '이 선생'일 테니까.

 

수고하라 인사하고 나왔다.

<안녕히 가세요.>

연변 말투의 처녀가 아주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학교 다닐 때 소사 아저씨가 살던 집을 보니 집이 참 깨끗하다.

그 옆 동산에는 꽃이 만발했다.

 

멀리서도 한 눈에 알 수 있는 꽃.

 

<미국부용>이다.

 

<칸나>도 피었고.

 

<멜람포디움>은 밭을 이루고 있다.

 

 

그 사이사이 <봉숭아>가 한창이다.

 

천수국, 만수국, 채송화, 백일홍, 과꽃~~~

자주 보던 꽃들은 손전화에 담지 않았지만

어린이들을 위해 조경에 애쓴 흔적이 고스란히 보인다.

내가 학교 다닐 때에도 이런 꽃들이 있었을까.

기억에 전혀 없다.

그만큼 잘 살고 있다는 걸까.

 

차로 향하며 아쉬움에 다시 한 번 손수찍기로 찰칵.

 

그런데 오마낫, 운전하고 교문 밖으로 나오는데 곧바로 보이는 꽃밭.

차를 세웠다.

 

<천일홍>이 그야말로 밭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그 보다는 교문 양쪽의 나무.

 

요건 <은행나무>고

 

이건 뭔 나무일까.

 

아, 그래 이 나무들.

4학년 때던가 5학년 때던가.

학교로 들어오는 입구 길 양쪽에 나무를 심었다.

수종이 뭔지도 모르면서 여러 어린 묘목을 길 양쪽으로

학급 번호 순으로 심고 자신의 이름표를 달았다.

등교하면 매일 물을 주며 잘 자라라고 빌었다.

내가 심은 나무가 죽으면 선생님께 혼나게 될 테니까.

 

내가 심은 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어느 것이 내가 심은 나무인지 기억하지도 못하는데,

기억을 하고말고 할 것 없이 대부분이 뽑혀 나갔다.

왜 뽑아버렸는지, 아니면 베어버렸는지는 모른다.

가끔 동창회 때 와 보면 몇 그루 흔적이 남은 것을 봤다.

 

그것을 오늘 또 확인한 것이다.

 

운전하여 나오다가 잠시 멈추고 내려 학교 쪽을 바라보며 손전화에 담았다.

 

저 나무들.

수령이 60년이다.

우리가 60년 전에 묘목을 심었으니까.

 

다시 운전하며 나오다가 보니 또 있다.

 

차를 멈추고 다시 찰칵.

 

수령 60년의 나무 세 그루가 줄을 지어 섰다.

졸업생이 159명이었는데, 150 그루는 간 곳이 없다.

뭔 사연이 있겠지만, 남아 있는 저 몇 그루만으로도 반갑다.

 

이름표가 아직 남아 있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내가 앞 번호여서 학교로 들어오는 입구와 가까왔는데

거기에는 한 그루도 남아 있는 게 없으니 내가 심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 우리 반 어느 동무가 심었을 나무.

그래서 반가왔다.

 

동창회 때 와서 보고 이야기 나누기도 했는데

오늘 보니 새삼스러웠다.

그래, 저 나무를 60년 전에 우리가 심었어.

 

이렇게 또 다른 추억이 깃든 모교이다.

그래서 그렇게 그리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그림움은 언제나 아름답지 않은가.

 

그 그리움을 안고 모임 약속장소로 향했다.

 

— 7월 31일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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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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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부천이선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8.02 60년 된 나무들.
    보기만 해도 좋더군요.
    ^(^
  • 작성자그산 | 작성시간 24.08.02 연천군 청산면에 있는 궁평초등학교를 나오셨군요
    부모님 묘소가 포천군 관인에 있기에 갈때마다 청산면에 가는 이정표를 봅니다
    저는 서울 효창국민학교에 64년에 입학했는데
    양초로 교실 마루바닥을 밀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졸업후 몇년 있다가 폐교되어 학교는 헐리고
    숙명여대가 인수하여 모교가 없어졌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부천이선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8.02 저런~~
    초등학교들이 점점 사라집니다.
    아이들이 없으니까요.
    ^(^
  • 작성자박경수 | 작성시간 24.08.02 같은 년도에 학교는 다르지만 초등학교 입학하였습니다 저도 고향에 갈때 가끔 지나갑니다 뒷산에 올라 벤도 까먹던 것
    울창한 벚꽃 나무 추억이 서린 곳이죠
  • 답댓글 작성자부천이선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8.02 오호.
    청산을 아시는군요.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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