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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

작성자송장출|작성시간24.09.27|조회수27 목록 댓글 0

 

  프랑스 조각가 로댕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을 감상한다.

홀딱 벗은 근육질의 남자가 오른 손등으로 턱을 괴고

뭔가 고뇌하는 표정을 짓는다. 왜 그런 표정을 지을까?

 

   고돌이를 치다가 피박을 써서 그랬을까?

아니면 떠나간 애인을 잊지 못해 우거지 상인가?

파산 당해 더 이상 털릴 것이 없어 포기한 표정일까?

죽음에 임박해 억울한 사연을 잊지 못해서 안달일까?

'생각하는 사람'의 표정 자체가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우리 사회가 볼 것 못 볼 것 가리지 않고

어느날부터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국회 청문회에 나앉은 공인들의 삶이 꾼들에 의해 

먼지 털 듯 드러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구차스럽고,

그냥 쓴웃음 한번 지으며 넘어갈 수 있는 일인데도

인터넷 댓글이 줄줄이 달리는 것을 보는 일도 안쓰럽다.

대깨문, 개딸, 양아들, 방탄복 등 구역질나는 용어가 많다.

언제, 어디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까발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조용한 곳으로 숨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진로문제로 갈팡지팡 고민이 많았던 20대 초반에

생각하는 사람처럼 사색에 빠진 채, 침묵의 시간이 많았다.

그렇다고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그러한 차원은 아니고 인생과 전투하기 전 구상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세상의 눈총이 땡볕처럼 내리쬐는 세상 속에서도

해야 할 일이 있고, 짜증을 견디며 하는 일은 신명이 나지 않는다.

세상은 돌아가는데 누가 세상의 핸들을 잡고 있는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김빠진 경우가 다반사다.

그 옛날 '맨발의 청춘'이란 영화에 심취한 기억이 난다.

있다가도 없는 그까짓 돈이 뭐길래? 사람 자체보다는 재력을 보고

박봉에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직업군인 신분으로 한방 차였다.

그것도 결혼문제로, 비오는 밤거리를 우산 없이 걷던 비참함 . . . . 

 

   며칠 전, 병점의 밤 거리를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생각하는 사람의 표정으로 걸어보니 그런대로 걸을만 하다.

언젠가 드라이브 중 가을바람이 부는 평택의 푸른 벌판이 

너무 멋있어, 걷다가 철창에서 막 나온 초로의 신사를 만나

세상사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철창과 세상의 차이는

담장 하나로 엄연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듣는 시간이 되었다. 

그의 표정은 '친구의 싸움을 말리다 홧김에 한방 날린 것이

'즉사'됨에 5년간 철창에 있다가 석방되어 경부선 기차를 타고

무거운 침묵으로 귀향하는 동년배 청년의 표정'과 흡사하다. 

필자는 25살 되던 해, 달리는 경부선 기차안에서 그를 만났다.

그리고 60대의 노털이 되어 초로의 그 신사를 만나니 우연의 일치다.

 

   찌그러진 개밥그릇처럼 버리긴 아깝고 쓰자니 그렇고

이른바 삼국지에 등장하는 '계륵'처럼 한 해가 다 가기도 전에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생활인가?현명한 것인가?"사색에 잠긴다.

그 언젠가 지구를 떠나겠지만 그것을 모르기에 이런 식으로

우리의 노털들은 가끔 무기력증에 떨어진다.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과

의욕은 사그라들고 노출된 상태로 세상의 짐을 무겁게 끌고 가는 것이다.

이것이 60대 노털들이 안고 있는 병폐 중의 병폐라는 것을 알지만

생각이 많은 이밤에 오늘은 여기까지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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