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떻게 하든 자기를 어필하는 시대다.
내 생각을 빨리 이야기해서 남에게 인정받아야지,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봐 주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나 자기 이야기만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병원 진료실 앞 수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저 많은 사람들을 짧게 짧게 진료를 해야 하니 의사도 결코 좋은 직업이 아니구나 생각한 적이 있는데 가만히 보면 정신과 의사야말로 한 사람을 상대로 길게 들어야 하는 굉장히 어려운 직업이란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 나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 주면 내가 중요한 사람이며 이런 일을 겪는 내가 결코 이상한 사람이 아님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해 주지 못하더라도 그저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면 내 이야기를 쭉 풀어놓으며 스스로 문제를 정리하고 해법을 찾아간다. 비록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더라도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바로 이런 문제를 다루는 소설이다.
같은 보육원 출신 3명은 고등학교 졸업 후 각자 취직을 하여 열심히 살아 왔으나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갑자기 해고를 당하고 실직을 하게 된다. 그들은 전에 소매치기, 날치기, 자판기 털이 경험이 있던 터라 누구 먼저랄 것도 없이 빈집 털이 나섰다가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들게 된다.
그런데 원래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인 할아버지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알고 보니 그 가게는 고민을 상담하고 해결해 주어 인기를 끌던 곳이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없는데 좀도둑 세 명이 ‘달 토끼’라는 사람으로부터 상담을 요청하는 편지를 본다. 도와주자는 사람과 ‘우리 처지에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나’라고 세 명은 논쟁을 한다.
작가 히가시노의 표현을 따르자면 좀도둑들은 “타인의 고민 따위에는 무관심하고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일이라고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다만 그들은 정말로 열심히 이야기를 들어 주었을 따름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연을 보낸 사람들은 그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자신의 문제를 풀어 나갔다.
“No comment is better than any comment”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 그 어떤 말을 해 주는 것보다도 더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참견 없이 듣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좀도둑은 이야기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오늘 밤 처음으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는 실감이 들었어. 나 같은 게, 나 같은 바보가.”
듣는다는 것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