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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소나기

작성자송장출|작성시간24.10.11|조회수28 목록 댓글 1

 

   과도한 빚 보증으로 살던 집마저 압류당해

우리 가족은 세군데로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다.

가난으로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 될뻔하다가

외할머니, 외삼촌 등 친척 집을 몇달씩 전전하며

중,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으니 고행이었다.

 

   그러던 중1 때 여름, 소나기가 오자 이웃집 여고생의

우산을 같이 쓰며 귀가했는데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그 당시 여고생 누나는 동네에서 보기 드문 미인이며

설령 생존했다 하더라도 70대 초반의 할머니일 것이다.

 

   중3 국어 교과서에 실린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대표작

‘소나기’를 읽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판단된다.

교과서에 게재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아마 없을 듯하다.

몇년 전 아내와 오붓하게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에 있는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마을’을 다녀오면서 달밤에 운길산을 넘어

월문리.덕소, 도농리, 서울 외곽도로, 송파, 동탄, 병점으로 귀가했다.

특히 달밤에 본 월문리는 지금도 깡촌이기에 중2 때 같은 반 친구

석문이가 기억나고 이효석의 '메밀 꽃 필 무렵'이 연상되는 그날 밤

왕숙천 식당에서 메밀 국수를 먹으며 소설 속의 소년이 된 기분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한 소년의 애틋하고 아름다운 첫사랑 이야기가

여름 농촌을 배경으로 이뤄져 있어 개울가, 물장난, 조약돌, 징검다리,

텃논, 가을걷이, 허수아비, 새끼줄, 참새, 원두막, 참외, 수박, 들국화,

도라지꽃, 산마루, 송아지, 먹장구름, 원두막, 소나기, 초가집, 비안개 . . . .

   어린 시절을 서울 변두리 지역이었지만 남양주시의

개울과 논이 있고 과수원과 원두막이 있는 곳에서 보냈다.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처럼 논밭에서 소나기를 맞기도 했다.

그때는 우산이 없어 소나기를 흠뻑 맞았다. 차가운 빗줄기에 온몸이 

시원하고 즐거웠던 것은 놀이 정도로 여긴 동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등학생이 돼도 우산을 들고 다니는 일이 거의 없었다.

특히 비 오는 축구장에서 수중전의 승부로 화끈해서 좋았다. 

요즘은 병점에서 길을 가다가 소나기를 만나는 일이 거의 없다.

걷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고 소나기를 만났다 하더라도 얼른 피한다. 


   비가 오지 않는 하늘은 없다.

비가 오지 않으면 무지개는 뜨지 않는다.

소나기가 내려야 그나마 무지개가 뜬다.

무지개가 뜨지 않으면 하늘은 아름답지 않다.

소나기가 지나간 뒤에 해는 더 빛나기에

무지개는 소나기의 다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무지개만 보고 소나기는 보지 못한다.

소나기가 왔기 때문에 무지개가 떴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왜 내 인생에 불행의 소나기, 고통의 소나기가 퍼붓느냐고 원망한다.

   소나기는 온다 하더라도 하루 종일 오는 것은 아니다.

느닷 없이 쏟아오다가 반드시 그치기 때문에 소나기다.

소나기가 하루 종일 오면 그것은 이미 소나기가 아니다.

소나기가 며칠 계속되면 그건 이미 장마다.

또 소나기는 그쳤다고 해서 다시 오지 않는 게 아니다. 

   인생의 소나기, 고통의 소나기라 할지라도

피할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는 게 좋다.

삶에는 생로병사의 문제가 반드시 일어나게 돼 있어서

고통이 찾아오지 않기를 원해도 살아 있는 한 피할 수 없다.

오히려 일시적인 고통이 찾아오기 때문에 살아 있다.

만일 고통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이미 죽은 존재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고통이 찾아오지 않기를 바랄 게 아니라

소나기처럼 자연적인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릴 때 소나기 속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던 것처럼

비록 고통의 소나기가 퍼붓는다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승화시킬 수 있는 슬기가 필요하다.

래야 고통은 활력을 주는 소중한 영양소가 될 수 있다.

나는 인생 6학년 노털이지만 인생의 소나기를 맞고 싶다.

소나기가 내려야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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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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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시골바다 | 작성시간 24.10.11 new 글을 잘쓰시네요
    소나기책을 많은 분들이 읽고 공감하셨죠
    저도 책 속에서 좋아했던 여자아이를 상상했고요
    하늘에서 내리는 소나기도
    우리들의 소나기도 우리들에겐 필요하지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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