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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작성자송장출|작성시간01:12|조회수89 목록 댓글 1

   작고한 아버지로 부터 어릴 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공부도 공부지만 '정직'과 '친구'에 관한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초등학교 성적표 맨 하단부 가정통신란에

깐깐한 담임 선생님께서 '정직한 어린이'라고 쓰셨을까?

쓴 웃음을 짓게 하는 아름다운 추억인지? 이제는 아니다.

"친구도 좋은 친구, 나쁜 친구 가리지 말고 많이 사귀는 것이

장차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하셨기에 그 영향으로

범생이, 깡패, 사기꾼, 백수 등 다양하게 친구들을 사귀었다.

 

   어제 동년배인 화성시 병점, 한 문인의 빈소에 방문해서 

방명록을 적는데 고인의 뜻에 따라 부의금은 사양한다는 것이다.

생전에 그 문인의 뜻이었을 것이고, 그 문인 가족의 뜻이었겠지만

죽는 날까지 민폐를 주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가 대단했다.

 

   지난 일이지만 나는 관혼상제를 친척 외에는 알리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 사망도, 귀여운 아들의 결혼식도 알리지 않은 것은

생업에 바쁜 많은 사람들에게 금쪽같은 시간을 뺏지 않기 위해서,

그나마 알음 알음으로 방문한 지인들의 부의금마저 사양했으며

부모님은 용인천주교 공원묘지에 합장한 것으로 예의를 갖췄다.


   그 문인과는 평소에 가까이 지낸 사이는 아니었고,

모임자리에서 마주친 것도 불과 몇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전날 늦은 밤 지인과의 전화로 부고를 듣게 되었는데

그 문인은 항상 마음이 뜨거운 사람이라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문상을 하고 귀가해 잠자리에 들어서도 쉽게 잠들 수 없었던 것은

심장마비로 간 그 문인과 가깝게 지나지 않았으면서도 충격이 큰 것은

아마 그 문인이 동년배이고, 축구와 막걸리, 문학과 같은 취미를 가졌다는 것,

그 문인의 지인들도 하나같이 너무 열심히 살아서 일찍 갔다며 마음 아파했다.

100년을 살아도 다 못할 사랑을 그이는 그 60년 동안에 다 써버린 것일까?

   어쩌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부고란을 읽는

하릴없는 나이 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등장한다.

소식이 끊긴 옛 친구의 부고를 듣고 옛날을 회상하기도 하고,

저명 인사들의 부고는 가끔 신문의 광고면까지 나기도 하지만

대개 그 신문의 정해진 부고란에 오르는 사람은 고인보다

대부분은 그 고인의 자식이나 사위가 이름 있는 경우가 많다.

부고란을 보면 유가족의 사회적 지위는 물론이고 그 가족간의

세력 판도까지 읽히곤 해서 꽤 흥미로울 때가 많았다.

 

   보통사람들은 대부분 부고를 친지나 지인들을 통해 듣는다.

마치 잘 짜인 비상 연락망처럼, 친구나 친척, 또는 직장 동료

동네 사람 한두 사람에게 연락하면 어김없이 연락이 된다.

결혼식처럼 청첩장을 돌릴 필요도 없지만 좋은 잔치에는 못 가도

힘들고 아픈 자리에는 참석해야 한다는 정서가 남아 있는 탓인지도 모른다.

장례식은 우리 삶의 마지막 통과의례지만 그 주인공은 이미 이승에 없다. 

 

   사람은 언제 어느 순간에나 자기가 주인공이다.

먼저 간 그이의 그 혼신을 다한 뜨거운 삶을 생각하면서

단 한번이라도 무엇에 목숨 건 적이 있나? 흔히 몰빵을 한 적이 있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타오른 적이 있나, 남에게 날 통째로 내어준 적이 있나?
내 주검자리에 올 지인이 누구일까? 그들이 나를 어떻게 추억할까?

먼저 간 그 문인은 죽어서까지 내게 반성의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나이 들면서 결혼식보다는 장례식에 갈 일이 많았다.

죽음에 차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길든 짧든 누구나 죽는다.

살다보면 죽음이 두려운 것만은 아니고, 축복이 될수 있다고 느낀다. 

오갈데 없는 노숙자에 가까운 지인들의 고독사에 소주 한잔 따르고

침묵할 때 1970년대 가수 이장희가 부른 '한잔의 추억' 가사가 떠 오른다.

아직은 진행형인 내 삶이지만, 다시 한번 다독이며 살아가고 싶다.

내 몫의 시간이 끝나는 그날까지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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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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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시골바다 | 작성시간 1시간 13분 전 new 태어날땐 순서가 있지만
    죽음은 순서가 없는것
    살아 있을 때 행복을 만끽해야죠
    글이 아주 좋으네요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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