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가 빚은 참극
— 부천대학 교정의 꽃
꽃에 대한 관심으로 종종 부천대학 교정을 찾는다.
거기 내가 좋아하는 꽃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게시판에 올라온 <빈카> 꽃을 보고는
엇그제 봄이라고 하더니 벌써 <빈카>의 계절이…… 란 생각을 했다.
자연스레 <빈카> 꽃이 있는 부천대학 교정을 생각했다.
생각했으면 가 봐야지.
3월 30일 오후 부천대학으로 향했다.
계절마다 교정에는 꽃들이 바뀐다.
지금쯤이면 <빈카>만이 아니라 <돌단풍>, <개나리>, <목련>, <살구꽃>에 <산수유>도 한창일 것이다.
집을 나서서 부천대학로를 걷는데 늘어선 화분들이 내 눈길을 잡는다.
<분홍조팝나무>이다.
얘네들은 이렇게 막 피어날 때 정말 예쁘다.
활짝 피어버리면 흰색으로 일반 <조팝나무>와 별다를 게 없는데
막 피어날 무렵 분홍빛이 참 곱다.
몇 번을 손전화 사진기에 담았다.
부천대학 교정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흰꽃이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아니라,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으니 쳐다봤던 것일 뿐이다.
<돌단풍>이다.
이제 막 피어 올라 싱싱하다.
<돌단풍> 앞 바위에 걸터앉아 인증샷을 찍었다.
지나가던 학생이 친절하게 찍어줬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돌단풍>과 한데 어울려 피던 <빈카>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돌단풍>과 <빈카>가 잘 어울려 피었는데……
부천대학 교양과에 출강하던 2000년대 초.
정년 퇴임을 앞둔 어느 교수가 연구실 화분에 키우던 <빈카>를 이곳 화단에 심었다.
화분에서만 크던 녀석은 주변 환경에 잘 적응하여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꽤 넓직하게 자리를 잡았다.
어느 해인가 보니 많이 뽑혀나갔는데
<빈카>를 모르는 정원사가 가을에 마구 뽑아버렸던 것.
그때 만난 교직원에게 이 <빈카>의 유래를 알려주며 정원사에게 일러두라 했다.
내 말을 따랐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나마 몇몇이 살아남아 건재했고
매년 봄이면 섭섭하지 않게 꽃을 피워냈다.
2024년에도 이렇게 피었고,
2025년에도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예쁘게 얼굴을 내밀었다.
그런데 2026년 오늘.
<빈카> 덩굴은 이렇게 빈약했다.
넓게 자리잡았던 덩굴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꽃을 피울 엄두도 못내고 있던 것이리라.
매년 가을마다 화단 정비를 하는데
<빈카>의 존재 혹은 의미를 모르니, 잡초 덩굴로 오인되어 뽑혀나간게 분명했다.
풍성하던 <빈카>가 어느 해부턴가 점점 정리되어 초라해져 버렸지만
그래도 그 명맥만은 유지하여 매년 봄이면 얼굴을 내밀었는데.
올해에는 이런 모습이다.
<돌단풍> 앞에 앉아 사진을 찍었지만
<빈카>의 빈자리가 눈에 드니 가슴 한 켠이 아렸다.
학생들은 모른다, 교정을 지나다니는 일반인들도 잘 모를 것이니
별다는 느낌 없이 다른 꽃들을 보겠지만
(어쩌면 꽃이 핀 줄도 모르고 지나치겠지만)
내게는 무지가 빚은 참극이 아닐 수 없다.
이즈음의 대표적인 꽃 <살구> 꽃이 핀 곳으로 향했다.
한창 피어난 <살구>꽃.
가을이면 <살구>가 실하게 열려 동네 학생들이 따가곤 했다.
농약을 살포한 것이라 학생들에게 먹지 말라고 일렀지만
어린 학생들은 따는 재미 먹는 재미로 가을 내내 나무를 괴롭혔다.
바위 틈에서 <서울제비꽃>이 인사를 한다.
제비꽃 종류가 참 많은데, 부천대학 교정에는 오직 <서울제비꽃>이다.
서울 녀석들이 부천에 와서 지들 집인 양 터줏대감 노릇을 한다.
그런데 이 녀석들도 종종 잡초란 이름으로 뽑혀나가기 일쑤이다.
체육관 앞 뜨락에는 <회양목>이 꽃을 피웠고,
그 앞에는 <산당화(명자나무꽃)>가 이제 막 봉오리를 맺었다.
이 녀석들이 활짝 피어날 때쯤에는 <조팝나무> 흰색과 잘 어울릴 것이다.
<목련>은 너무 높이 있어 원거리로 사진에 담았다.
화단에 우뚝 선 <산수유>
이 <산수유>는 교정 곳곳에 있다.
작년에 맺은 열매를 아직까지 달고 있다.
울타리 옆에 있는 <산수유> 앞에서 손수찍기로 찰칵.
화단을 살피면 <꽃마리>, <꽃다지>, <민들레>, <냉이>, <씀바귀>~~~가 있을 테지만
왜그런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빈카>를 기대하고 왔던 것.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커서였을까.
다른 꽃들은 별로 눈에 차지 않았다.
교문을 나와 부일로를 거쳐 부천로로 향한다.
언재나 나를 반겨주는 어느 가정집 화단.
밖에 내어놓은 화분에 다양한 꽃들이 피어있지만
이맘 때면 늘 울타리에 걸쳐 있는 <앵도>가 나를 반긴다.
동네 한바퀴 경로이니 잘 알고 있는 가정집 화단이다.
갑자기 허기가 느껴지며 문득 짜장면이 땡긴다.
짜장면이 땡길 때 해결방법은?
중국집에 가서 먹으면 된다.
자주 가는 중국집으로 향하는데
부천로의 어느 브런치 카페 테라스에 내어놓은 화분이 눈길을 끈다.
<금귤>이다.
언제부터 내어놓았을까.
이곳을 지나다녔는데 처음 마주한다.
새로 화분을 들여놓았을 터 - 그러니 참 싱싱하다.
하얀 꽃보다 노란 열매가 참 귀엽다.
하긴 내가 워낙 노란색을 좋아하니~~~
중국집 '향만성'
나는 그냥 짜장면이라 말했는데,
사장은 알아서 곱배기를 내어준다.
고추가루 뿌려 맛있게 냠냠.
이집 짜장면은 참 맛이 좋다.
그러니 단골이다.
배는 부른데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좀 무겁다.
별 것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기대했던 <빈카>가 안보이는 게 영 속이 쓰렸다.
잘리고 뽑혀나갔을 <빈카> 덩굴들은 얼마나 아팠을까.
20여년 전 화분을 옮겨 심던 노 교수의 얼굴이 생각난다.
교수님이 남겨놓은 <빈카>가 한창 번창하다가
어느 해부터인가 자꾸만 뽑혀나가 이제 별로 남은 게 없는데
교수님은 살아계실까.
그런 생각에 더 마음이 아려왔다.
어쩌면 이것도 내 병이리라.
— 3월 30일 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