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사 사적 제236호.
홍살문은 정2품 이상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만 세울 수 있다. 문의 기능보다 붉은색은 악귀를 물리치고
화살 또는 삼지창은 악귀를 공격한다는 의미가 있어 신성시되는 장소를 보호한다는 상징성이 있다
통영은 명실상부 ‘이순신의 도시’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에게 쫓긴 왜군이 수없이 수장된 곳이다 충렬사는 세계적인
해전인 한산도대첩을 비롯해 백척간두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1606년에 지은 국가 사당이다.
후대에 동재와 서재를 짓고 묘비를 세웠다. 정조는 ‘충무공전서’를 발간하고 어제제문을 하사하는 등 유서 깊은 사당이다
충렬사는 충무공 이순신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임진왜란이 끝난 8년 후인 선조 1606년 제7대 수군통제사 이운룡이
이순신 장군의 충절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어명을 받아 건립한 사당이다.. 원래 이순신의 사당은 장군의 순국충절의 정신을
기리고 선양하기 위하여 남해와 통영 두 곳에 건립되었다 충렬사(忠烈祠) 현판은 현종 임금이 1663년에 내린 사액 현판이다
『강한루』
조선 현종1840년에는 이충무공의 8대손 이승권 제172대 수군통제사가 강한루와 영모문을 세웠다.
* 강한루의 이름 유래
강한(江漢)은 중국 호북성의 성도 무한에 있는 지명이다.
무한을 가로질러 흐르는 장강과 지류인 한수가 합류하는 지역으로 장강에서「강(江)」,한수(漢水)「한(漢)」,이두자(李)를 취하여
강한(江漢)이라 부르며 예로부터 열국이 각축하던 삼국지의 무대이며 이름난 경승지이다. 이 강한의 대안에는 이백의 시에
등장하는 황학루와 항주의 서호와 비견되는 동호가 있다. 또 고대 주나라 때 이곳 강한변에서 소호가 적의 항복을 받아 나라의
우환을 씻었다는 고사가 있다. 1840년 제172대 통제사 이승권이 여기에 누대를 지을 때 시인 강위가 경승지 통제영과
이충무공의 위업을 이 강한의 고사에 연관지어 강한루(江漢樓)라 이름하였다고 전해진다.
외삼문(外三門)
외삼문은 좌·우의 비각과 잘 어울려
조선건축의 조형미가 빼어난 건축물로 손꼽히며 광복 후에 대한민국 우표의 도안으로 사용되었다.
보통우표 통영 충렬사 1953년 4월5일
외삼문 양쪽에 제1호비각 충렬묘비명, 제2호비각 가선대부 삼도수군통제사 이언상 사적비, 제3호비각 직계후손 통제사 5위의
기념비, 제4호비각 삼도수군통제사 최 숙 사적비, 제5호비각 삼도수군통제사 이 운 룡 기실비, 제6호비각 삼도수군통제사
유 형 유애비가 있다. 제1호비각 충렬묘비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3호로 외삼문동쪽 첫째 비각에 모셔져 있다.
이 비는 충무공 이순신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충렬묘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3호)
충렬묘비는1681년에는 제60대 수군통제사 민섬이 충렬묘비를 세웠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의 무훈과 충절에 관한 내용을 담은 비로 충무공이 순국한지 16년 후인 광해군 6년에
좌의정 이항복이 왕명을 받아 비문을 짓고 그로부터 67년 후인 숙종 7년 송시열이 그간의 경위를 비문말미에 첨언
김수항이 비머리에 <통제사충무이공충렬묘비명>이라 전서한 당대 최고의 문인둘이 참여하여 세운 비이다
내삼문(內三門)
정당의 출입문으로 삼문 중 가장 안쪽의 문이다. 단아하면서도 정교한 건축양식으로 조선중기 삼문조형의 백미이다.
통용문인 양쪽 협문을 낮게 만든 것은 몸을 낮추고 삼가는 몸가짐으로 출입하기 위함이다.
충렬사는 충무공을 비롯한 휘하 장병의 위령을 위해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中丁日)에 제사를 드리고 있다.
충무공 탄신일인 4월 28일에는 탄신기념제, 그리고 한산대첩축제, 고유제를 전통 제례의식으로 봉행한다
정당은 ,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령에 제사올리고 공의 정신과 위훈을 만대에 기리기 위하여 제7대 통제사 이운룡이
선조의 명을 받아1606년애 세웠다.. 1895년 통제영이 폐영되어 관급이 끊어지고, 일제강점기에는 왜경이 장군의 위패를
칼로 부수고, 삼문의 태극문양에 덧칠하여 일장기로 바꾸고 또 제사를 올리지 못하도록 정당에 못질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1945년 광복을 맞아 이승만 대통령,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선생을 필두로 송진우, 여운형, 신익희 등 많은
광복지사들이 환국 참배하여 건국의 결의를 다진 유서깊은 사당이며 노산 이은상 선생이 국역편찬한 '이충무공전서'의
산실이기도 하다
충렬사 팔사품병풍
철종 1861년 제187대 통제사 신관호가 채색화 8폭 병풍 2벌에 15첨의 팔사품을 그렸으며 가각의 그림과 함께
물품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엿고 마지막 한 폭에는 병풍을 그려 사당에 설치한 사유를 기록하고 있다
전시관
전시품 안내
어제사제문 : 정조대왕이 하사(1795).
충렬사팔사품 : 명나라 황제가 보냄. (보물440호)
이충무공전서 : 통제영수군 파총. 정효현의 그림.
통제영수조도 : 통제영수군 파총. 정효현의 그림.
통제영지도 : 삼도수군통제영의 모항(19세기).
총 통 : 지자총통·현자총통
약수 돌거북
전적류 : 충의고적. 명정서당기. 유영사례
우표 : 외삼문 전경.
현자총통 (玄字銃筒)
당시 세계최강 영국해군의 함포는 연철(鉛鐵)로 총구를 만들어 적중률이 떨어졌으나
조선총통은 주물로 부어 만들어 정확도가 우수하였다
충렬사팔사품(忠烈祠八賜品) : 총8품15점(보물 제 440호)
명의 수군도독 천린 장군이 이순신 장군의 전공을 명황제에 보고하자 명의 신종이 그 전공을 치하하여 보내준 의장물이다.
통제영에 보관되어 오다가 1895년 통제영이ㅡ폐영된 후부터 충렬사에ㅡ 보존하고 있다
.1865년. 1867년 두 번에 걸친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이순신 사당 가운데 유일하게 존속된 유서 깊은 서원이다
팔사품도 병풍
명나라 신종황제가 조선과 중국을 구한 이충무공의 공적을 찬양하여 보낸 15점의 하사품을
신관호 제 187대 통제사가 그려서 (1861) 정침에 비치한 것이다
수조도병풍 (19세기 통제영 파총(종4품) 정효천작
거북선을 포함 대,소 전선들이 전법 훈련하는 모습을 12폭의 병풍에 그린 수군조련도 그림 상단의 부두기에는 당시
각 진영에서 동원도니 전선 병력 군량미와 본영과의 거리가 적혀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충무공전서
정조 1795년 에 발간된 충무공 이순신의 유고전집 정조의 명에 따라 충무공의 행적 및 유고를 모아 규장각에서 편찬
교서관에서 발간하여 충렬사에 어제치제문과 함께 하사하였다
어제사제문(忠烈祠 御賜祭文)
조선 22대 정조 왕이 1795년 충무공의 우국충절과 훈공을 만백성이 알게 하기 위하여 국가사업으로 임진왜란 사료를
정리하여 충무공전서를 편찬, 발간하여 통제사 이득제(제174대)에게 한질을 내려보내면서 통영충렬사에 한질을 봉안하고
엄숙히 법도를 갖추어 충무공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자세히 지시한 제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