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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 꽃을 뿌리며ㅡ 옷자락을 나부끼며 ㅡ하늘로 날아 오르는 천녀

작성자한반도땅|작성시간26.06.17|조회수32 목록 댓글 0

신라 7세기 중엽부터 통일신라 8세기 후반 사이에 조성됐을 것으로 보이는 탑곡 마애존상

 

옥룡암 바로 윗쪽에 있는 큰 바위, 7세기 중엽에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학자 오사카가 이 부근에서 신인사(神印寺)란 명문이 있는 기와를

 

  발견했다 한다. 이를 근거로 부처바위는 신인종에 속한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

 

북면

 

왼쪽에 9층탑이 있고  오른쪽에는  7층탑이다.

 

탑 중간에 석가여래가 좌상하고 계신다. 머리쪽에 천개를 두르고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천개이다. 전각이 만들어져있다.

 

황룡사 9층 목탑을 보고 이 암석에 새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재 황룡사 구층목탑의 형식이

 

 몽고 침입불타 소실된 후, 이 암벽의 조각을 보고 그 실상을 유추하고 있는 상태이다.

 

 7층 탑은 조각의 기법은 9층 탑과 동일해 보인다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

 

부처바위는 높이가 약 9m 되고 둘레가 약 30m 되는 큰 바위다.

 

탑곡 마애조상군은 남산의 축소판’으로 하나의 바위에 동서남북 사방으로

 

승려·탑·부처·비천상·사자상 등 30여 점의 조각으로  새겨 사방 사불정토를

 

나타내었으므로 부처바위라 부르고 있다

두 탑 사이에 높이 떠있는 넓은 연꽃 위에 석가여래 부처가 앉아 있다

 

 양 옆에는 목조탑이 웅장하게 솟아 있고 그 위로 비천이 날고 있다.

 

 북면은 석가여래 부처가 여러 보살과 나한들에게 설법하고 있는 영산 정토를 거대하게 나타내었다.

 

부처의 머리 위에는 천개(天蓋)가 새겨져 있다.   

 
천개는 인도와 같은 더운 나라에서 높은 사람에게 햇빛을 가려주기 위한 시설로 양산 같은 것인데,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햇빛을 가리기보다 높은 신분을 상징하므로

 

절 법당이나 대궐의 옥좌 위에 반드시 천개를 만들어 얹는다.  천개위로 천녀가 날고 있는데

 

 아름다운 천녀들이 하늘을 날면서 음악을 연주하거나 꽃을 뿌리는 것은 부처님의 정토를

 

찬양하는 것이다. 부처바위 북면에는 이렇게 화려장엄한 석가부처님의 영산세계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9층 목탑에 관한 일화는 이 형태가 황룡사 구층탑의 모형이라 한다

 

 동탑은 땅에서 부터 2m 높이에 너비 2m 되는 이중 기단을 새기고 그 위에 9층 기와집으로 된 목탑을

 

새겨 놓았다.첫 층은 비교적 높고 다음 층부터는 낮은 옥신(기둥과 벽)들이며 추녀의 넓이는

 

올라갈수록 조금씩 축소되어 9층 지붕이 삼각으로 끝을 맺는다.

 

 9층 지붕 위의 노반,복발,앙화 위에 수많은 풍경이 달린 다섯 겹의 보륜,수연,용차,보주가 정연하게

 

동개져  있는 상륜부가 1.8m의 높이로 새겨져 있다.

 

 지붕의 귀마다 풍경이 달려 있고 .옥신마다 두 개씩 창문이 열려 있는데,열린 쪽을 더 깊게

 

새겼으므로 단순한 조각에 입체감을 돋보이게 한것도 재치있는 수법이라 하겠다

 

서탑은 층수가 다를 뿐 모양이나 조각 수법은 동탑과 동일하다.

탑 앞에 새겨 놓은 두 마리의 사자는 불국 정토를 지키는 성스러운 짐승이다.

 

동쪽것은 입을 벌리고 목에 털이 없어 암사자로 보이고 오른쪽 발은 힘차게 땅을 딛고 왼발을 들어

 

올렸는데, 꼬리가 깃발처럼 세갈래로 날리고 있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의 말꼬리와 비슷한

 

솜씨로 되어 있어 주목된다

서쪽 사자는 입을 다물고 목에 긴털이 많아 숫사자같고 오른발을 들고 있는데 꼬리는 더욱 복잡하다.

 

 입을 벌린 사자를 '아사자'라 하고 입을 다문사자는 '훔사자'라 하는데, 닫힌 세계와 열린 세계,

 

즉 음과 양을 합친 온 누리를 지키고 있다는 뜻이다

<참조사진>

 

서면

부처바위 서면(西面)전경

 

  약사여래불과 비천상이 양쪽 위쪽에 새겨져있다.

 

 오른쪽에는 '사라수'라 불리는 버드나무가 늘어져 있다.

 

왼쪽에는 대나무가 여래상 뒷편에 뻗어있다.

                                             

약사여래불이 연화좌 위에 앉아  있다.

 손은 선정인 같은데 옷자락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머리 뒤에는 보주형으로 된 두광을 새겼다. 가운데 둥글게 연꽃을 새기고

 

그 가장자리에 구슬을 늘이고 그 밖으로 불길을 새긴 두광이 있다

부처의 머리 위로 피리를 불면서 비천이 날아간다. 이 암벽면은 동방 유리광 세계이고

 

이 부처는  약사여래라 생각된다

비천상

부처바위 동면(東面) 전경

중앙에는 극락정토의 주불인 아미타여래 삼존이 새겨져 있다.

 

삼존불 둘레와 머리 위에는 하늘에서 날아오는 여섯 비천이 새겨져 있다.

 

혹은 꽃을 뿌리며 혹은 꽃 접시를 들고 혹은 합장하고 부처를 향하여 찬미하는 모습들인데

 

그 옷자락들이 하늘 위로 길게 나부끼고 있어  날아 오르는 천녀들의 모양을 실감케 하고 있다.

.삼존불의 대좌 밑에는 옷자락이 포장처럼 드리워져 있는데, 그것이 마치 구름처럼 느껴지며

 

 삼존상이 구름 위에 조용히 내려오는 듯 보이는 것도 아름답다

본존 여래의 왼쪽에 있는 보살은 본존보다 작은 체구로 작은 연꽃에 앉아 있다

 

머리에는 보관을 썼고 양 어깨에는 천의가 덮여져 있는데,그 모양이 국보 78호 금동미륵반가상의

 

 천의와 비슷하다. 두 손을 들어 가슴 앞에 합장하고 얼굴은 본존 여래 쪽으로 돌리고 있다.

 

연꽃을 새긴 두광이 머리 뒤에 배치되었고 왼쪽 무릎 아래 꽃접시 같은 것이 놓여 있다.

 

오른 쪽 보살은 마멸이 심하여 그 모습은 전혀 알 수 없으나 연화대좌의 한 부분과 천의 자락

 

 한 부분이 남아 있어 협시 보살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다

비천상

비천의 얼굴

비천상

삼존불 둘레와 머리 위에는 하늘에서 날아오는 여섯 비천이 새겨져 있다.

 

혹은 꽃을 뿌리며 혹은 꽃 접시를 들고 혹은 합장하고 부처를 향하여 찬미하는 모습들인데

 

그 옷자락들이 하늘 위로 길게 나부끼고 있어  날아 오르는 천녀들의 모양을 실감케 하고 있다

 네모난 방석에 앉은 스님이 향로를 받들고 열심으로 염불하는 모습도 있다

부처바위 남면(南面)과 3층석탑

 

오른쪽 바위에는 삼존불과 보리수(반야나무)가 있고  왼쪽 바위에는 작은 감실 안에 승상이 있으며,

 

 삼존불앞 바위에 수하승상(樹下僧像-인도의 반야나무.망고나무)이 반쯤 묻혀 있고, 입불상과

 

 삼층석탑이 있다. 그리고 옛 출입구로 여겨지는 곳의 바위 옆면에는 절을 지키는 신장상이  있다.

남쪽면의 삼존불과 입불상

 

삼존불은 바위를 깎아 내어 감실을 설치하고 그 안에 저부조로 조각한 삼존불을 안치하였는데 

 

왼쪽 보살은 몸을 거의 본존에 기대려는 모습이고.  삼존불을 모실 때 본존불이 앉으면 두 협시보살은

 

서는 것이 보통인데 이 곳에서는 삼존이 모두 앉아 있다. 양 협시보살은 모두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하는 자세인데 이것처럼 바위에 새겨진 마애삼존불 중에서 합장을 하고 있는 상은 이곳이 유일하다

수도승상

 

이 5m 너비 4m인 둘째 면에는 보리수와 사리수로 보이는 두 그루의 나무 아래에 결가부좌로

 

앉아 명상에 잠겨 있는 스님상이 새겨져 있다

감실을 파고  좌상이 새겨져  있다.이 상에는 두광도 없고 연화대좌도 없으므로 선정에 든

 

스님상으로 ,머리 위에 작은 육계가 있는 듯하여 상의 성격을 알기 어렵다.

남면 삼존불

 

가운데 본존상은 큰 연꽃 위에 앉아 있는데 . 가운데 붉은 색조는 산화철에 의한 자연색조이다

 

좌우협시보살은 머리와 몸을 본존불쪽으로 향하고, 본존과 같은 형태의 연화대좌 위에 앉아 합장의

 

수인을 취하고 있다 광배는 두광으로 원형 광배에 연꽃과 방사선으로 장식된 원형의 두광을 갖추고,

 

상현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는데 두 손은 소매 자락 안으로 넣어 정확한 수인을 알 수 없다.


상현좌 아래에 다시 앙련의 연화좌를 갖춘 특이한 형태이다

탑곡 마애조상군의 조성연대에 대해서는, 둥근 얼굴에 미소를 띤 표정이나, 조각기법이 치졸하고

 

 평면적인 점,  방사선으로 장식된 원형의 두광, 목탑 양식을 충실하게 나타낸 것 등은 고식의 전통을

 

 반영하고 있어 신라 말기인 7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추정하는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자유분방한 구도와 선각 표현이 많이 구사되고 회화적 성격이 강한 구성은

 

 삼국시대 조각에서는 보기 힘든 특징임을 고려하여  9세기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얼굴과 두광은 많이 파괴되었으나 목에는 세 겹으로 삼도가 새겨졌고

 

통견으로 입은 가사주름이 배 앞에서 세 줄로 가로 그어져 복부의 형태를 꾸며 주고 자연스럽게

 

두 다리로 흘러내려 허벅 다리와 무릎의 형태를 암시하고 있다. 두 팔에 새겨진 옷주름들도

 

 근육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 부처의 모양은 좌상에만 나타나는 항마촉지인상을 입상에 표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데, 왼손을 배에 대고 있기 때문에 오래동안 안산불(安産佛)로 신앙되어 왔다

삼층석탑

 

단층기단 위에 서 있는 삼층석탑은 옥개 받침도 삼단으로 되어 있고 새긴 솜씨도 둔박하여

 

 신라말기의 것으로 보인다. 낙수면 모서리에 추녀 마루가 새겨져 있고 그 끝머리에 구멍이

 

뚫어져 있다. 그 구멍에는 금속으로 어떤 장식을 힌 것 같은데,신라 탑으로서는 특수한 양식이다.

          

탑의 상륜부는 노반만 있는 상태다. 이 탑은 현재 높이가 4.5m밖에 안되는 작은 탑이지만

 

높은 언덕 위에 솟아 있으므로  사람들은 이 계곡을 탑골이라 불러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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