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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가 있는 주막

콘스탄티노플함락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

작성자비온뒤|작성시간23.02.17|조회수700 목록 댓글 25

마호매트2세가 이끄는 1453년 오스만터어키의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 함락은 세계사적으로 엄청난 의미를

지닌 대사건이다. 이 사건의 여파로 신대륙발견과 새로운 동방항로의 개척이 이뤄졌다.

 

또 전쟁판의 양상이 이후 창칼에서 대포와 소총을 들고 싸우는 판으로 바뀌게 된다. 특히 이 싸움으로 그리이스

로마의 정통학문을 이어온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최고의 기술자들이 대거 이태리등 유럽으로 옮겨감으로써 유

럽은 본격적인 르네상스(문예부흥)시대를 맞게 된다.

 

그결과는 스페인 포르투칼, 네델란드 영국으로 이어지는 헤양을 통한 유럽의 세계제패로 이어지게 했다. 지정

학적으로는 오스만터어키가 향후 500년가까이 유럽과 쌍벽을 이루며 발칸반도와 중동지역및 지중해남부연안

인 북아프리카의 패자로 군림하는 계기가 됐다.

 

<신대륙 발견및 동방항로 개척>

콘스탄티노플과 동로마제국은 로마시대이래로 1천년이상 인도 중국등 동방과의 교역중심이었다. 베니스의

상인으로 유명한 베네치아가 크게 번성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동뱡교역을 거의 독점하다시피했기때문이

다.

 

그런데 오스만터어키가 이 지역을 차지하고 동방교역로를 폐쇄함에따라 유럽각국,특히 상인들은 향신료를

비롯한 물자의 수급을 위해 직접 인도등으로 가는 해상로를 개척하는데 온 힘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많은 희생과 시행착오끝에 1498년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가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의 캘리컷에 도착했다.

그는 인도에서 값비싼 후추를 가득 싣고 금의환향해 많은 이익을 남겼다.

 

이에 앞서 이탈리아 모험가 콜럼버스는 에스파냐 여왕 이사벨라(1451~1504)의 후원을 받아 1492년 70일간

의 항해끝에 지금의 아이티섬과 쿠바를 발견하고 돌아온다.그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의해 남미와 북미는 가

혹한 식민통치를 받게된다.

 

식민지로부터의 엄청난 은과 금의 유입으로 막대한 부가 쌓이고 들어와 때 아닌 인플레이션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신대륙발견과 동방항로 개척은 결과적으로 스페인 포르투갈 네델란드 영국으로 이어지는 해상패권의

시발점이 됐다.

 

<창칼에서 화약으로>

마호매트가 이끄는 오스만터어키군은 콘스탄티노플공략을 위해 대형 대포를 공성전에 사용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유럽에선 화약을 대수롭게 생각지 않아 전쟁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스만군은 이 대포를 쏘며 공성전을 벌여 방어군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길이 8m에 무게 19톤에 이르

는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하게 큰 괴물대포는 헝가리인 기술자 우르반이 만들었다. 

 

포탄무게만 500kg에 달해 한번도 무너지지 않았넌 콘스탄티노플의 테오도시우스성벽중 일부를  무너트렸다.

유럽은 오스만제국의 이 대포를 보고 깜짝 놀라 화약을 사용하는 대포와 총포에대한 연구를 거듭해 전쟁에 본

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사계급의 몰락>

총은 원거리 공격무기이나 활에 비해 관통력이 뛰어나다. 이전까지 전쟁은 기병과 창병,궁병과 중장갑병,으로

대오를 갖춘뒤 정면돌파나 측면돌파전략을 주로 써왔다.

 

개전초 활로 원거리 공격을 한뒤 기병이 측면이나 후면을 공격하고 중장갑병이 정면을 공격한다.적의 기병이

공격해오면 창병으로 방어하는 것이 대부분의 전투형태였다. 여기서 기병과 중장갑병을 이끄는 기사는 사슬갑

옷과 판금갑옷을 입고 전면에 나서 싸우는 살인병기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린치핀이었다.

 

그러나 총과 대포가 사용되면서  판금갑옷이 총포에 뚫리며 무용지물이 됐다.기사 무용론이 대두된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봉건제의 붕괴와 함께 기사계급의 몰락을 가져온 여러요인중 하나가 됐다.

 

몰락기사의 얘기를 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태는 바로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문학사상 영국의 세익스피

어에 버금가는 거장으로 평가되는 세르반테스의 등장은 콘스탄티노플 함락이 불러온 나비효과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중세의 종말과 르네상스시대의 본격 개막>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1500년을 넘게 이어온 로마시대의 종언을 의마한다. 이로써 사실상 기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중세시대가 마감되고 르네상스시대가 열리게 됐다고 많은 사가들은 보고있다.

 

콘스탄티노플은 당대 최고의 선진문화도시였다..서기 330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아시아와 유럽대륙

교통 요지인 비잔티온으로 제국의 수도를 천도할때 그리스에서 로마로 이어지는 문화유산과 학자,기술자들도

모두 옮겨왔기 때문이다.

 

동로마제국 멸망이후 많은 학자와 예술가, 뛰어난 기술자들이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유럽 각국으로 망명 이주하면

서 르네상스가 일어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신대륙과 동방항로의 개척으로 상인들과 자유도시의 경제력이 급

격히 커지면서 건축과 이를 장식할 그림및 조각품들의 수요가 폭발했다.

 

또한 그리스,로마의 자유로운 사상과 경험주의로 인해 과학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기반

이 마련될 수 있었다.유럽은 르네상스시대의 본격화로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을 선도하며 21세기까지 그 번영을 구

가하고 있다.

 

<오스만터어키의 이슬람권 지배>

오스만터어키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할때까지만 해도 대제국은 아니었다. 한때는 동로마제국의 용병집단으로 활

동하기도 했다. 셀주크 터어키가 망하고 동로마제국이 쇠퇴하면서 힘을키워 동로마가 망하기 직전까지 발칸반도의

상당한 지역과 현재의 터어키가 자리잡고 있는 아나톨리아 지역을 다스리는 새로운 강자로 발돋움한 정도였다.

 

아나톨리아와 발칸반도는 오랜동안 동로마를 섬겨왔던 제후국과 비슷한 처지로 기회만 되면 동로마와 손잡고 분란

일으켜왔다. 그러나 명목상이나마 종주국이며 구심점이었던 동로마가 멸망하면서 오스만 터어키에 그대로 복속하

않을 수 없게 됐다.

 

지정학적으로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오스만 터어키가 발칸의 지배권과 함께 욱일 승천하는 유럽세에 맞서 이슬람권의

국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북으로는 발칸반도를 넘어  당대의 강국 오스트리아.헝가리와 국경

을 맞대었다.남으로는 아라비아반도를 손에 넣으면서 이집트를 포함한 지중해 남부연안인 북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지배권을 확고히 다지게 된다. 제국은 500년가까이 지속되다 1차대전의 패전으로 현재의 터어키의 영토만 남고 해체

됐다.

Sylvie Vartan(실비바르땅)은 1944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8세때 부모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한 프랑스 샹송가수다.

60년대 영화 "우상을 찿아라"의 주제곡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며 70-8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그녀는 전통적인 샹송

가수와 달리 록큰롤을 가미한 경쾌한 멜로디로 당시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었다.대표곡으론  La Maritza(마리짜강변

의 추억), La Reine De Saba(시바의 여왕)등이 있다.

Les Hommes(무명용사)는 1947년 알제리 전투와 63년도 베트남전에서 희생당한 외인부대의 무명용사들을 애도하

는 내용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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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수 수 | 작성시간 23.02.18
    솔직이

    처음에 한번 읽고,
    어제밤 두번 읽고

    도저히 댓글을 쓸 수 없어서
    미루어만 두었습니다.

    터키 역사에 대한 이야기인데
    머리속에 정리가 되질 않네요.
    이제야
    겨우 씁니다.
  • 답댓글 작성자비온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2.18 그냥 일별하시면 되는데...
    수수선배님이 댓글 달아주셔서 영광입니다.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 작성자정 아 | 작성시간 23.02.19
    주중 바쁘게 종종이느라
    차분히 읽지 못하다
    습관처럼 주말도 같은시간 기상이라 읽었습니다
    세계 역사한편을 글한편에 폭 담아낸 박식함 대단하세요
    이슬람 술탄 오스만 콘스탄티노플 등
    터키여행하면서 가이드한테 참 많이들었던 단어들을
    정립해봅니다
    근데 금새 까묵이 문제여라 ㅎ
  • 답댓글 작성자정 아 | 작성시간 23.02.19 아~~신무기를
    누가 먼저 개발 사용하냐에
    힘의 이동이네요
    모두가 신기술 신형만이
    평화유지 힘인것을ㅠ

    지금 시대에 태어남도 감사하고 모든것이 감사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비온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2.19 여기저기서 읽은 것들이 생각나 한자 적은 것뿐입니다.
    박식은 즉 얕은 지식일 뿐입니다.
    아무래도 똑같은 무기들고 싸우면 쉽지않은게 사실입니다.
    자신이 여우있게 이기려면 싸움판을 바꿔라라는 말이 있듯이
    신무기사용도 싸움판을 바꿀 수 있는 것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정아님,좋은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요일 오후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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